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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05건 중 26~50
1553/01/01 칼빈, [요한복음 주석] 출판.
-세베르투스는 비엔나에서 가명을 쓰면서 의사개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기독교의 복구](Christianismi Restitutio)라는 책을 출판하고 그 안에서 재차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오류(誤謬)라고 주장하였다. 이 책이 칼빈에게 기증되었다.
1555/08/01 칼빈, [공관복음서주석] 주석 출판.
1557/07/22 칼빈, [시편주석] 출판.
-서문에서 그는 시편을 "사람의 심령의 모든 부분의 해부학"이라고 표현.
1557/09/19 칼빈, [호세아서 주석] 출판.
1559/04/23 와트슨 출생. 영국 로마가톨릭 사제로서 그는 제임스 1세에 대한 [바이음모사건]관여로 처형당했다.
1559/08/01 칼빈, [기독교강요]제7판 출판.
1559/12/25 칼빈, [이사야서 주석]재판, [소 예언서 주석] 출판.
이 때에 비로서 제네바시의 시민권이 칼빈에게 부여 되었다. 이제부터 제네바시의 정식 시민이 되었다.
1560/08/19 칼빈, [다니엘서 주석] 출판.
1561/06/24 하펜레퍼 출생. 루터교도. 그의 저서들을 [가장 사랑하는 스승]하펜레퍼에게 보내는 습관이 있었다.
1562/11/17 칼빈, [프랑스교회신앙고백] 출판.
1563/07/23 칼빈, [예레미야주석] 출판.
1575/02/04 베뢸 출생. 파리의 추기경이자 정치가.[프랑스 오라토리오]회를 설립하였다. 영적사상의 [프랑스학파]의 지도자로서 17세기에 가톨릭교가 부흥에 큰역할
1575/12/04 알버 사망. [스바비아의 루터]로 불린다. 1562년 말에 블라우보이렌에 있는 개혁된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으로 임명됨.
1586/12/14 칼릭스투스 출생. 17세기에 가장 영향력을 행사한 멜란히톤 신학의 계승자이며 그 당시 독일의 소위 [혼합주의]의 대변자.
1591/08/12 마리약 출생. 교육과 의료사업에 몸을 바친 평신도 여인들의 모임인 [생 뱅상 드 폴의 인애회]설립한 인물.
1592/05/02

1592년(선조 25) 5월 2일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18일 만에 일본군이 서울을 점령했다.

같은 해 4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일본군 선봉대가 4개의 부대로 나뉘어 조선 침략을 개시했다. 선조는 김성일을 경상우도초유사로, 김륵을 좌도안집사로 삼아 민심 수습과 항전을 독려했다.

1594/06/03 에일머 사망. 런던 주교일때 영국 교구 내에서 [기도방식 통일 법령](1559)을 엄격히 실시한 것 때문에 유명하였다.
1619/01/31 라로크 사망.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그의 저서인 [성만찬의 역사]는 그 당시까지는 전례의식을 가장 잘 설명한 책이었다.
1624/03/21 세그네리 출생. 이탈리아 예수회원. 그는 이탈리아의 예수회원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설교자였으며, [이탈리아어 웅변의 재건자]로 불렀다.
1644/04/10 브루스터 사망.[필그림 파아더즈]의 지도자.그는 홀랜드 주재 대사였으며 후에 내무상이 된 윌리엄 데이비슨을 받들어 일했다.
1644/07/29 우르바누스 8세 사망. 본명은 마페오 바르베리니. 1623-44년의 22년간 교황직에 있던 인물. [30년 전쟁]의 결정적 시기(1618-48)에 해당됨.
1644/09/08 퀄즈 사망. 영어로 된 우의시화집 중 가장 유명한[Emblemes and Hieroglyphikes]로 기억되고 있는 종교시인.
1653/08/16 1653년(효종 4) 네덜란드동인도회사의 선원인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했다. 일행은 타이완[臺灣]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던 도중 폭풍우를 만났으며 제주도에 상륙한 후 서울로 압송되었다. 조선은 이들의 표류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훈련도감의 포수로 임명해 살도록 했다. 앞서 표류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한국 이름은 박연)가 이들의 대장이 되었다. 1655년 청나라 사신의 행렬에 뛰어들어 구원을 요청했으나 실패했으며, 이 일로 일행은 서울에서 추방되어 전라도 병영으로 이속되었다. 이들은 군사훈련을 받고 병영의 막일에 시달렸으며, 흉년에는 구걸을 하거나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살기도 했다. 1666년(현종 7) 9월 생존자 16명 중 8명이 배를 구해 일본으로 탈출했으며, 2년 뒤 네덜란드의 요청으로 남은 일행도 일본으로 송환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조선에서 겪은 일들을 <하멜 표류기>(1668)로 엮어 암스테르담에서 출판했다. 하멜 일행은 서양세계를 조선의 민간에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했으며, <하멜 표류기>는 한국을 서방에 소개한 최초의 책으로 유럽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1661/02/02 안톤 출생. 루터교 성직자. 프랑케의[Collegia biblica]설립되도록 도와주었다.
1673/01/27 메이휴 출생. 인디언 선교사. 그는 3대에 걸친 인디언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1709년 뉴잉글랜드에 있는 [복음전도협회]를 위해 시편, 요한복음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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