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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2-09
 제목  신약시대의 유대교 분파
 주제어  [유대 종파] [유대교] 바리새인 사두개인 엣세네파 열심당
 자료출처  백진음반기획  성경본문  
 내용

바리새인(Pharisees)

주전 2세기에서 주후 1세기까지의 유대교의 세 종파 중의 하나로 다른 두 파는 사두개파와 엣세네파이다. 사두개는 자유주의요 엣세네는 숙명론인데 바 리새는 그 중간을 걷는다.예수 때 바리새파는 약 6,000명의 회원을 가지고 이웃이란 단체를 조직했다. 사후에 의인은 새 몸을 입 으나 악인은 음부에 가는 것(행 23:6), 천사의 존재(행 23:7-9), 율법의 권위있는 해석 '탈무드'등을 믿었다(마 23:1-39 막 7:5-8). 바리새파율법에 대한 열심으로 일반의 존경을 받았으며 사두개인이 성전인데 반하여 바리새인은 회당이었고 이상적 메시야 대망도 바리새주의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두려워 했다(갈 2:3-5, 5:1, 6:13).
 
원문을 터득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업무 등, 구약의 지도자 에스라가 했던 일은  서기관으로 알려진 사람들에 의하여 계속되었다. 서기관들의 더 넓은 범주의 지지자들은 '하나님의 충성스런 자들'이란 의미의 '하시딤'으로 알려졌다. 바리새파는 이러한 하시딤의 한 일파로 BC 2세기의 대다수의 정 치 종교적인 태도에서 분리된 자들이다. 그들은 알렉산드라 살로메에게서 정치적인 권력을 부여받았고(BC 76-67 년),  그 이후로 산헤드린 공회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신약에서  그들은  친로마주의자들이었다. AD 2세기경 그들은 분명히 유대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항상 소집단이었는데, 헤 롯 왕 시대에는 6,000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 대부분은 사회의 중류 계층이었으며, 엄격한 율법을 정확히 지키려 했다.


그들은 율법의 개인적인 수행을 강조했고(사두개파들이 성전 예배를 강조한 반면), 사두개인들이 부인하 던 부활을 믿었다. 율법은 상황에 따라 변해야만  한다고 보았는데, 바리새인들의 전체 결정에 따라 개정되기도 했다. 그 율법은 613개 조항으로 되어 있었다(248개는 긍정적이며, 365개는 부정적인 것이다). 이것에 다른 많은 보조적 명령들이 추가되었는데 이러한 원칙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었다. 예컨대 안식일에 집단에게 금지되어 있는 조항이 39 개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막 7:3)이 모세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다. 십일조를 대단히 강조하던 바리새인들이 윤리 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고결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그들이 예수님을 정죄한 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말미암은 것이었다.
  

사두개인(Sudducees)

사두개인에 관한 정보는 신약을 비롯하여 보통 그들을 적대시하는  자료에만 남아 있다. 이 이름은 솔로몬 시대의 사람이거나(참고. 겔 44:15,16) 그 당파의 가설적인 초기 지도자인 사독에게서 말미암았을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기원에 대하여도 논 쟁이 많다. 정치 단체, 종교 단체, 시골의 귀족 계급, 나라의 관료 모두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은 동료들에게도 이방인 들을 대하듯이 무례하게 행하며 자신들의 교사들과 논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 했다. 많은 사두개인들이 제사장이었으며, 거의 모든 제사장들이 사두개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헤롯과 로마인들의 통치 아래 그들은 산헤드린을 점유했지만 AD 70년 성전이 무너진 이후로는 사라졌다. 그들의 종교는 보수적이어서 모세 오경율법에 기록된 것들만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부활, 천사, 마귀에 대한 교리를 부인했으며, 성공과 역경은 인간의 행동의 결과라 고 믿었다.

[명]<기>유대교 당파 중의 하나이며 지도적 계급에 속하였다.사두개라는 명칭은 다윗, 솔로몬 때 유명했던 제사장 사독의 이름에서 시작된 듯하 다(삼하 8:17, 15:24). 주전 2세기 경부터 그 세력이 왕성해졌다. 종교적으로 보수적 사상을 주장하였고 왕조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바리새파와 대립되었다. 그들은 부활, 천사,영생, 영혼 등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막 12:18, 마 22:23), 행 23:8).


엣세네파

마카비전쟁 약50년전 제사장 제도가 속화되기 시작한 때 헬레니즘에 반대하고 유대 정통주의를  표방한 집단이 나타났다. 이들은 처음에는 작은 공 동단체에 머물렀으나, B.C. 1세기말에는 사해 엔게디에서 큰 집안을 이루었다. 경전으로는 모세율법을 기본으로 다른 종교 서 적을 심도있게 연구하였다. 이들의 교리는


1. 율법의 각종 정결 예식을 철저히 지켰다.
2. 성전 제사에는 불참했으나 예물을 드렸다.
3. 경전 연구와 경전생활을 강조하였다.
4. 맹세를 중히 여기고 영생을 믿었다.

이들의 특징으로는  극단적인 종파주의자로 공동 생활을 하였다. 사유 재산을 부인하고 검약한 생활을 하였으며 노예제도를 부인하고 결혼을 꺼려 하였다. 또 숙명적인 경향이 있었다.


열심당

주후 6년 로마 총독 구레뇨가 국세조사를 실시했을 때에 이에 반대하여 갈릴리의 유다가 조직한 국수주의적 집단이다(행5:37). 이스라엘을 통치하 는 외국의 권력을 철저히 부정하고 배척했다. 그들의 활동무대는  갈릴리 지방이며 예루살렘 멸망직전인 주후 70년까지 계속 되었다. 시몬 베드로도 열심당원이었다(눅6:15, 행1:13).

 


 

>> 목차고리 : 세계 > 중동 > 이스라엘 >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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