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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성경지명  작성일  2006-12-29
 제목  갈릴리(Galilee)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수 20:7,삿 1:30,대상 6:26
 내용 => 갈릴리 바다 참고.


뜻 : 둥글다

 

1) 구약 시대에는 요단강 서쪽 팔레스틴의 북부를 보통 갈릴리라 하였다(수 20:7,왕상9:11, 왕하15:29,대상 6:26).

2)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스불론(수 19:10-16)아셀 (수19:32-39)자손들이 제비를 뽑아 차지 하였으며 여러번 혈투를 하였지 만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하엿다(삿 1:30-33,4,).

3) 예수님이 12제자중 11제자를 이곳에서 택하였다.

* 신약 시대에 팔레스틴을 3도로 나누어 갈릴리의 경게는 동은 요단강과 갈릴리해, 서는 지중해 남은 사라리아도, 서는 지중해 남은 사마리아도 서북은 베니게로서 남북이 50마일,동서가 25마일 내지 35마일로 북방은 산지가 많고 남쪽은 평원이다. 토지가 비옥하고 경치가 아름다우며 404개의 중소도시 및 촌락이 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복음 선교 활동의 중심지 였다. 제자들도 대부분 이곳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베드로가 살던 집도 이곳 갈릴리 해변의 가버나움 마을이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던 들판도 바로 갈릴리 호수의 북쪽 연안이었으며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도 이곳 언덕 위에서 였다. 믿음이 부족했던 베드로가 풍랑 속에 빠진 것도 이 갈릴리 호수에서 였다. 해면보다 그 수면이 200m 나 낮은 갈릴리 호수. 평상시에는 잔잔하고 맑으나 때때로 큰 폭풍으로 성난 파도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 호수 연안은 중요한 교통의 요지 이면서 아름다운 경치와 기름진 옥토를 갖고 있어서 주변 인구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은 바나나, 목화, 오렌지, 올리브 등 갖가지 농산물이 풍부하게 재배되고 있으며 갈릴리 호수의 물은 전 이스라엘 땅의 음료수는 물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까지 대부분 충당하는 생명선이 되고 있다. 심지어 남쪽으로 360Km나 떨어져 있는 네게브 사막의 세데보케(Ssede Boque)까지 물을 공급해 준다. 호수에서 처음 시작되는 송수관은 큰 자동차가 드나들 정도로 크지만 점차 가늘어 지면서 흡사 사람 몸의 혈관처럼 이리 저리 연결되어 전 국토를 적셔 주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갈릴리 호수, 바다의 수면보다 700피트 아래에 위치하며 이스라엘 북부 납달리 지파의 땅에 속한 이 담수호수는, 하프의 모양같이 생겼기에 히브리어로 키노르라 불리었고 이는 게네사렛의 어원이 되었다. 지난 25년 동안이나 주후 1세기의 갈릴리를 연구한 고고학자는, 최근에 와서 예수님 당시에 사용하던 배와 배를 고정시키기 위한 돌들과 파도를 막기 위해 항구에 쌓은 방파제(눅 8:23)들을 갈릴리에서 발견함으로써, 과거 초대교회의 역사를 고스란히 21세기의 문턱에 올려 놓았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는 수산업이 크게 번창한 곳으로서, 남방 출신인 가롯유다를 제외한 예수님의 제자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했던 것만 보아도 이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최근 고고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주후 1세기경의 갈릴리 호수내의 항구는 최소 15개나 되는데 그 중에 가버나움, 게네사렛, 막달라, 디베랴, 거라사 등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 모두가 항구에 속한 도시로 밝혀지게 됐다. 당시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여러개 항구들을 통해 많은 여행객들과 상인들이 배를 이용하여 동서편을 왕래하곤 했던 것이다. 로마시대 때에는 오늘날보다 갈릴리 호수의 수면이 약 4피트 정도가 더 낮았다고 전한다. 특히, 베드로안드레가 고기 잡던 곳으로서 가버나움 항과 막달라항 사이에 위치한 타브가 항구는 초대교회의 사적지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이 타브가에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소명을 주셨고(막 1:17), 또 부활 후 이른 새벽에 이 항구에 나타나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유명하다. 타브가란 헬라어로 '일곱개의 샘물'이란 뜻으로 이곳에 따뜻한 미네랄 온천이 솟아올랐기에 전통적으로 가버나움 출신의 어부들은 겨울철에 꼭 이곳에 와서 어업을 했다고 전한다. 따라서 이 타브가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만난 곳이고 부활 후에도 마지막으로 이곳에 와서 제자들과 조반을 먹었던 장소로 확증된다(눅 5:1-7; 요 21:1-8).

갈릴리의 예수님의 발자취

갈릴리 바다 주변은 온통 예수님의 발자취로 가득하다 . 예수님은 특별히 갈릴리 사람들에게 애착심을 가지셨다. '이방의 갈길리에 먼저 복음이 전해질 것을 암시한 이사야의 예언 (이사야 9:1)을 생각지 않는다고하더라도 공생애 이전의 삼십여 년의 세월을 보내신 갈릴리에 대한 예수님의 애착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 갈릴리를 답사하는 우리는 발걸음 하나마다 예수님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고 , 숨 한번 들이쉴 때마다 같은 공기를 숨쉬셨을 주님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갈릴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그 때까지 세상에 존재하던 모든 복의 개념을 뒤집어 엎으시고 , 새로운 복의 나라를 선언하신 팔복산이다 . 이 곳은 산이라기 보다는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구릉이다 . 예수님은 여기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셨다 . 구릉 위에는 팔각형으로 된 교회가 있다 . 그리고 교회당 꼭대기에는 작은탑이 서있는데 , 이 교회를 설계한 이탈리아 건축가는 그 탑을 통하여 아홉 번째 복을암시하고자 했다고 한다 . 그가 생각한 아홉 번째 복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라는 말씀이었다고 한다 . 그렇게 생각해 보면 팔복의 내용 전체가 아홉 번째 복에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내용 모두가 고난에 귀결되지 않는가 ?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야 말로 모든 복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작은탑이 교회 맨 꼭대기를 장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다 . 그리고 그 고난의 십자가는 하늘을 향해 온 몸을 뻗치고 있는 것이다 . 오늘 우리 신앙의 마지막 표현은 바로 그 아홉 번째 복을 통해 드러난 그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팔복 교회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경을 뒤로 한 우리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오병이어 교회였다 . 1930 년대 초에 독일 고고학 발굴팀은 갈릴리 바다의 북서쪽에 있는 다브가 (Tabgha)란 곳에서 매우 소중한 유적을 발굴했다 . 그것은 약 400 년경에 건축된 교회의 유적이었는데 , 그 교회는 아랍인에 의해 파괴되어 1000 년이 넘는 세월을 땅속에 묻혀 있었다 . 특이 이 유적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교회 바닥에서 모자이크로된 오병이어 모자이크였다 . 그림은 두 마리의 물고기 사이에 둥근 떡들이 그려진 모습 이었다 . 독일 캐톨릭 교회는 발굴된 모자이크를 기념하고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교회를 지었는데 , 이것이 오병이어 교회인것이다 . 교회당 안에서 우리 마음속에는2천년 전 어느날 예수님 앞에 둘러앉아 있었을 군중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 어린아이가 음식을 내놓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던 이기적인 사람들 , 그리고 떡과 고기를 받아먹은 후 배신하여 예수님을 떠난사람들,이런 식으로 우리는 그들을 비난해왔지만 , 그 보다 먼저 은총의 떡을 먹은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더 먼저 드는 것은 왜일까 ? 그들은 그래도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어두워질 때까지 말씀을 들었다. 그 사모함과 인내심만으로도 떡과 고기를 먹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오늘날 예수님께로 잘 가지도 않고, 사모하지도 않으며, 짧은 한 시간 예배도 인내치 못하는 우리들에 비하면 충분히 자격이 있다. '주여 저희에게도 생명의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후, 내려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에 들러 모자이크가 그대로 새겨진 잔 두 개를 샀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 잔을 깨지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오병이어 교회 근처에 우리를 붙들고 놓아 주지 않는 한 자그마한 교회가 있었다 . 검은색 돌로 지어진 이 작은 예배당은 베드로교회였다 . 교회 안에는 바닥에 넓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안내인은 그 바위 위에서부활하신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가 있었다고 한다. 에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라기 보다는 예수님과 시몬의 대화였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지만, 시몬은 아직 제자답지 못한 불완전한 자연인의 모습을 암시하고, 베드로는 성숙한 예수님의 제자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날 바위 위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던 사람은 스승을 부인한 부끄러운 시몬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는 베드로라고 불리울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부족한 죄인 시몬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시몬은 오고 오는 모든 시몬들의 대표이다. 그와 예수님의 대화는 우리 모두와 예수님의 대화이다. 시몬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는 곧 우리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이다. 예수님은 영원한 질문을 던지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질문 앞에서 숙연해진다. 사랑하지 않으시고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먼저 사랑하신 후 던지신 질문이기에 그 누가 이 질문 앞에 숙연하지 않겠는가? 우리 일행은 그 바위 앞에서 모두 2천년 전으로 돌아간 듯 숨죽인 채 깊은 묵상속으로 들어갔다, 과연 나는 그 질문에 진실된 사랑의 고백을 드릴 수 있는지? 그러나 예배당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우리 마음이 어둡지 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랑을 묻기 전에 제자들을 숯불가의 만찬으로 초청하셔서 사랑의 떡을 먹이셨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김운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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