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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품에 안겨서 감사 기도 드릴 때..."로 시작되 노래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바이에른 왕과 오스트리아 황제 사이의 협정(1816)으로 강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분리되자 인근의 주민들은 가슴아파하다가 1818.12.24에 한 교회로 모이게 되었다. 교회의 오르간이 낡아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신도 두 사람이 기타를 들고 나와 자작곡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 다음 해 봄, 오르간을 고치러 온 사람이 그 악보를 갖고 가 독일 여러곳을 오가며 퍼트리게 되었다. 이 곡이 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02/04 입춘, 24절기의 첫번째. 大寒과 雨水 사이에 있다. 
봄이 시작되는 계절로 태양의 황경이 315도일 때. 음력으로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후여서 여러 행사가 열린다.
1026/11/27 아달볼드 사망. 유트레히트의 주교. 그는 작가이기도 하다.
1367/08/23 알보르노스 사망. [에히디오]로 불리우기도 함. 교황령 아래 있는 국가들을 통치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함.
1533/06/26 호프마이스터 사망. 종교개혁 초기에 가장 뛰어난 논쟁자였던 스위스종교개혁자. 오이코노무스라고 불리우기도 함.
1553/10/27 세베루투스는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이 낼리줄 아록 있다가 화형의 선고가 내리자 실신할 정도로 낙망, 그는 파렐을 통하여 칼빈과의 단독 면담을 요구하고 그자리에서 칼빈에게 사과하였으나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27일 낮에 시청 앞마당에 나아와 선고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실신, 파렐의 부축을 받아 일어 섰으나 그는 그 자리에서도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고 오히려 자신을 단죄한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그날 화형에 처하였으나 끝까지 예수의 영원성을 부인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글휼을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죽음. 이사건에 대해서 그 당시에는 대체로 칼빈이 정당하다고 했으며, 멜랑톤 조차도 칼빈에게 '정당한 처사'라고 써 보냈다. 이 일후에 제네바에서의 반칼빈파의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1556/03/21 1556년 3월 21일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크랜머가 이단죄로 화형당했다. 잉글랜드 왕 헨리 8세와 에드워드 6세의 고문을 지낸 크랜머는 1533년 대주교가 되었다. 1540년 헨리 8세가 4번째 아내와 이혼하는 일을 돕기도 했다. 영어성서 사용 의무화에 힘쓰는 등 종교개혁에 앞장선 그는 1545년 잉글랜드 개혁교회를 위해 호칭기도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에드워드 6세가 죽고 메리 1세가 즉위하면서 잉글랜드종교개혁은 난관에 부딪혔다. 추기경 레지널드 폴이 캔터베리 대주교로 부임해 이단 처형을 지휘했고, 결국 크랜머는 대주교 및 사제직을 박탈당했다. 크랜머는 교황청 당국의 회유로 신앙경력을 철회하기도 했으나 화형장 앞에서는 끝내 믿음을 지켰다.
1576/05/02 카르란사 출생. 바르톨로메드 미란다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그는 신성로마제국 카알 5세의 사절로서 트렌트공의회에 참가하여 중요한 역할을 함.
1593/04/06 배로우 사망. 변호사요 회중교회 교인이며 그는 분리된 독립교회의 형성을 지지하면서 국교인 성공회에 도전하다가 순교한 인물이기도 하다.
1594/06/03 에일머 사망. 런던 주교일때 영국 교구 내에서 [기도방식 통일 법령](1559)을 엄격히 실시한 것 때문에 유명하였다.
1598/12/07 베르니니 출생. 17세기의 가장 위대한 조각가이자 걸출한 건축가 중 하나며, 동시에 극작가,무대장식가,화가,궁정신하이기도 하다.
1630/03/24 아기르레 출생. 스페인의 주교. 그는 스페인 종교재판소의 고문이기도 하였고,베네딕투스수도회의 총책임자가 되었다.
1653/08/16 1653년(효종 4) 네덜란드인도회사의 선원인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했다. 일행은 타이완[臺灣]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던 도중 폭풍우를 만났으며 제주도에 상륙한 후 서울로 압송되었다. 조선은 이들의 표류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훈련도감의 포수로 임명해 살도록 했다. 앞서 표류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한국 이름은 박연)가 이들의 대장이 되었다. 1655년 청나라 사신의 행렬에 뛰어들어 구원을 요청했으나 실패했으며, 이 일로 일행은 서울에서 추방되어 전라도 병영으로 이속되었다. 이들은 군사훈련을 받고 병영의 막일에 시달렸으며, 흉년에는 구걸을 하거나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살기도 했다. 1666년(현종 7) 9월 생존자 16명 중 8명이 배를 구해 일본으로 탈출했으며, 2년 뒤 네덜란드의 요청으로 남은 일행도 일본으로 송환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조선에서 겪은 일들을 <하멜 표류기>(1668)로 엮어 암스테르담에서 출판했다. 하멜 일행은 서양세계를 조선의 민간에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했으며, <하멜 표류기>는 한국을 서방에 소개한 최초의 책으로 유럽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1680/11/04

글랜빌(Glanville Joseph) 사망.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는 비판하고, 데카르트의 철학을 ‘최고의 철학’이라 하였다. 자칭 회의론자이기도 하다.

1706/01/17

미국 정치가-과학자-저술인 벤자민 프랭클린 출생, 미국 건국의 아버지 라고 불림. 워싱턴을 도와 미국독립전쟁 때 큰 일을 하고 건국에도 공을 세웠던 프랭클린은 과학자이기도 했는데, 연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번개가 전기의 방전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1732/03/16 브라이트하우프트 사망. 할레에서의 최초의 신학교수. 그는 신앙이 깊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다.
1747/09/09 코크 출생. 미국 감리교회 초대 감독이자 감리교 선교단체들의 창설자.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의 친구이기도 함.
1780/06/24 (조선 정조 4)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지음.
박지원은 당시 형식적인 예절과 도덕만을 중요시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학문은 실생활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실학을 깊이 연구했다. 그는 <열하일기>를 통해 청 나라의 문물제도와 생활 풍습을 소개하고, 조선의 문물과 제도를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또 벼슬아치와 양반들의 생활을 폭로하고 풍자한 한문소설을 지어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1783/05/14 리 출생. 영국의 동양학 학자. 1838-52년에는 허트퍼드셔주 발리지방 주임사제이기도 하였다.
1783/04/21 밀즈 출생. 해외선교의 주창자. 대학시절 이방 땅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기도할 동료학생들을 모아 건초가리 밑에서 열린것이 선교시작.
1783/04/21 헤벨 출생. 캘커타의 영국국교회 주교.그의 시에 대한 최초의 완전한 전집이 1841년 런던에서 출판됨.60개에 달하는 찬송가의 작가이기도 함.
1785/07/31 크로크말 출생. 레나크로 알려져 있기도 함. 그의 작품인[More nevukhe ha-zman]은 유대종교, 문학 특히 역사분야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기여를 함.
1798/04/25 들라크로아 출생. 프랑스의 화가. 그는 19세기의 가장 유명한 프랑스 미술가들 중의 하나였으며,그러한 명성에는 그의 편지와 일기도 한몫을 담당함.
1801/01/01 콘 출생. 선교사. 미국 선교위원회를 위해 파타고니아에서 수개월 동안 그 지방을 조사하였다. 그는 하와이 화산활동에 대한 권위자이기도 하였다.
1802/03/08 해리스 출생. 회중파와 복음주의교파의 간행물에 글을 실은 고정기고자,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많이 배포된 가치있는 수많은 저서들의 저자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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