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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품에 안겨서 감사 기도 드릴 때..."로 시작되 노래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바이에른 왕과 오스트리아 황제 사이의 협정(1816)으로 강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분리되자 인근의 주민들은 가슴아파하다가 1818.12.24에 한 교회로 모이게 되었다. 교회의 오르간이 낡아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신도 두 사람이 기타를 들고 나와 자작곡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 다음 해 봄, 오르간을 고치러 온 사람이 그 악보를 갖고 가 독일 여러곳을 오가며 퍼트리게 되었다. 이 곡이 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1553/10/27 세베루투스는 자기에게 유리한 판결이 낼리줄 아록 있다가 화형의 선고가 내리자 실신할 정도로 낙망, 그는 파렐을 통하여 칼빈과의 단독 면담을 요구하고 그자리에서 칼빈에게 사과하였으나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27일 낮에 시청 앞마당에 나아와 선고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실신, 파렐의 부축을 받아 일어 섰으나 그는 그 자리에서도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고 오히려 자신을 단죄한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그날 화형에 처하였으나 끝까지 예수의 영원성을 부인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글휼을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죽음. 이사건에 대해서 그 당시에는 대체로 칼빈이 정당하다고 했으며, 멜랑톤 조차도 칼빈에게 '정당한 처사'라고 써 보냈다. 이 일후에 제네바에서의 반칼빈파의 세력이 많이 약화되었다.
1885/05/05 마라발 내한. 파리외방전교회 신부. 한국명 서약술. 경기도 여주에서 신학교의 책임자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침.
1889/06/21 퀴틀리에 내한. 프랑스 출신의 가톨릭 선교사. 한국명 남일량. 경기도 이천에서 쿠데르크 신부와 전교활동 시작. 1935년 6월 6일 매화동에서 별세.
1894/01/15 한규철 출생. 감리교 목사. 1939년 중부연회 경기도 신계남구역 8교회를 담임함.
1896/11/21 독립문 정초식, 이날 거행된 행사는 기독교적 방식으로 진행되어 평신도 운동의 일환으로 봄. 배재학당 합창단의 조선가(朝鮮歌)와 진보가(進步歌)를 비롯하여 아펜젤러 목사의 기도, 서재필 고문의 축사 등으로 진행됨.
1900/02/23 주기도문 표준역 공동사용을 선교사회에서 결의.
1901/04/01 합일학교 설립.경기도 강화읍 신문리 감리교학교.미감리회 선교사 존스와 강화읍교회(현강화중앙교회) 전도사 박능일 협력하여 잠두의식 이름 설립.
1906/04/15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목사 새벽기도회 시작.
1906/10/00 송도학교 설립. 경기도 개성시 고려동에 소재한 감리교 학교. 남감리회 후원으로 윤치호가 설립한 초등및 중등교육기관.
1908/11/18 톰스 내한.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목사. 한국명 도서원. 부인과 내한. 경기도 고양, 파주, 용인, 안성, 진위, 광주 등지에서 교회돌봄.
1910/11/01 해주구세병원 설립. 해주읍에 설립된 기독교병원. 노튼기념병원으로 불리기도함. 1910년 노튼이 시약소를 차림으로 시작.
1911/09/03 일제에 의해 평북 선천 신성중학교에서 아침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는 교사 7명, 학생 20명을 포승과 수갑을 채워 서울로 압송한 것을 필두로 서울 평양 연변 등지에서 윤치호, 이승훈, 양기탁, 유동렬, 안태국 등을 체포 구금함. 후에 체포원인을 압록강 철교 준공식에 참석하는 데라 우치 동독 이하 요인들을 암살하려는 모의를 했다는 것으로, 선천역과 신의주역 환영식에서 거사를 결행하고자 했으나 저들의 삼엄한 경계와 위세에 눌려 감히 총을 쏘지 못했다고 혐의를 날조함. 이를 계기로 총 7백명을 검거해 1백 5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림. 후에 '105인 사건'으로 칭함. 기소자 1백23명중 기독교인이 94명으로 전체의 76%에 이르렀고, 당시 한국인구가 1천4백만에 조금 못 미쳤으며, 기독교인이 18만 남짓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구의 1%도 안 되는 기독교가 민족운동의 첨병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던 사건으로 기록됨.
1915/10/27 팔영산기도원 창설. 1965년 교주 전병도에 의해 창설된 기독교계 사이비 신흥종교. 교주는 1915,10,27, 전북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에서 출생.
1922/11/05 광주YWCA 창설. 김필례 지도하에 창설됨. 양응도(김창국 목사부인). 김함라(남궁현 목사부인) 임자혜(김강 장로부인)등 4명이 기도로 설립.
1925/06/06 서기창 서품.천주교 신부,순교자,세례명 프란치스코.경기도 인천에서 출생.황해도 송화 본당에서 봉직하다 공산당에 의해 순교함.
1926/05/03 긔도의 향기 발행.저작겸 발행인 최치가 기독교조선감리회 총리원 교육국 발행.4.6판 한글세로쓰기 90면 초판.시 형식의 기도문이 실려있는 기도서다.
1933/08/06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천안교회 창립.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복음의 불모지인 천안 원근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여 영원한 생명과 자유를 주시려고, 조선예수교성결교회에서 파송 받은 김창환 전도사를 보내셔서 천안에 기도소를 세우고 청주교회 장원초 목사를 초청하여 대전도집회를 열어 50여 명의 결신자를 얻었으며, 김창환 전도사는 복음의 열정에 붙잡힌 성도들과 함께 천안읍사무소 앞뜰 누에고치 판매소 광장에 나아가 복치고 나팔 불며 성신이 충만 한 개척전도를 전개하였고, 이어서 서리말(지금의 사직동) 박제덕(朴齊德)씨의 한옥 집을 세 얻어 이집에 모두 모여 천안에 성결교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193386일(주일) 개척예배를 엄숙히 드리게 되었다. 이렇게 한 가정에서 시작된 교회는 년 부 년 부흥 성장하여 오늘의 천안교회가 있게 된 것이다.

1940/12/08 감리교신학교삐라사건; 용문산 기도원 설립; 삼각산 기도원 시작; 외국선교사 추방시작.
1941/02/28 세계평화기도문사건(미.영 부인선교사등 15명구속).세계기도일을 맞아 기도회를 주관한 주한미국선교사들을 기도문구의 문제성제기.일제가 체포추방
1946/04/21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창설.가톨릭여자수도단체.경기도 개성에서 방유룡 신부에 의해 창설됨.
1950/06/04 선린마을 창립.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길리 산78번지(현 강동구 길동)에 조성된 기독교인 공동마을.
1950/08/13 북한 전역에서 전승기도회 개최
1952/06/10 워로 출생.미국 침례회 선교사.한국명 한월호.경기도 수원 경기신학교 영어성서교,영락교회 영어성서 교사.한양대학교회 부목사.
1952/07/00 한국복음선교회 창립.1957,4월에 재단법인 설립.교회와 기도처의 설치운영,성경학교,유치원 및 보육원의 설치운영,교육사업의 지원육성을 목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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