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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1-01-27
 제목  슐라이엘마허의 내재신학
 주제어  [해석학] [내재신학]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9세기 신학은 슐라이어막허(F. Schleirmacher, 1768-1834)에 의해 시작되고 결정되었다. 그는 모라비안 경건주의 영향을 받은 개혁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학생 시절 칸트철학과 계몽주의에 심취되었고, 1790년 목사 안수 받은 후 당시 새로운 운동인 낭만주의에 매료되었었다. 당시 낭만주의는 인간의 감정, 상상력, 직관 등을 강조하였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이후에 신학 하였기에 전통적 신학방식에서 180도 회전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신학을 하는 것에서 완전히 돌이켜 인간의 종교경험에서 모든 신학을 시작하고 종교경험으로 신학의 기준을 삼았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 수 없다.”고 칸트가 설정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물자체’가 되어 경험의 대상이 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영역이 종교경험에서 출발하였다.

  그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신학의 핵심인 “감정” 의 의미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는 종교의 핵심이란 바로 ‘절대 의존의 감정(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이라고 주장한다. 기존의 정통 신학을 ‘위로부터’ 신학이라 한다면 당시 계몽주의적 신학은 ‘아래로부터’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정통주의 신학은 인간적 권위로 포장되었고 인간의 창조력과 자유를 질식시키고 교회의 교리를 하나님과 혼동 시켰다고 믿었다. 이런 것에 대항한 계몽주의는 옳았지만 그 대안으로 나온 “‘자연신론(Deism)’은 오히려 메마른 자연주의적 신앙으로 인도하여 일종의 종교철학이나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전통과는 다르게 그는 “신학이란 하나님에 대한 인간 경험의 인간적 성찰이라.”고 정의하며 새로운 신학의 길을 개척했다. 즉, 교리가 아닌 종교적 경험이 신학의 진정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신학을 ‘감정’이라는 경험적 개념을 이용하여 ‘위-아래 연결’ 신학을 이루어 보고자 했다. 그가 말하는 ‘감정’이란 단순히 인간이 감성적으로 느끼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고 심오한 의식(conscious ness)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떤 사고나 감정 이전(以前) 혹은 그 밑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종교의 핵심은 모든 유한한 것들이 무한한 것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존재하며, 모든 일시적인 것들이 영원한 것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보편적으로 존재함을 ‘직접적으로 의식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 감정은 모든 인간 안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이성이나 양심과는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이성은 과학을 낳고, 양심은 도덕을 낳고, 감정은 종교를 낳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신학의 출발점을 하나님에게서 인간에게로, 하나님의 말씀하심에서 인간의 종교경험에로 옮겨왔다. 이렇게 신학의 출발점과 표준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간에게로 인간 내부에로 옮겨온 신학을 “내재신학”이라고 한다. 슐라이어막허가 이처럼 신학을 내재화하여 인간에게서 출발하고 인간의 종교경험을 표준으로 삼게 되어 “내재신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흔히들 그를 “현대신학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러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았는가?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적 의미와 신앙적 의미로 나누어 본다. 먼저 역사적 예수는 남 다른 종교적 ‘감정‘을 가졌었다고 한다. 또한 비록 십자가상의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은 성경의 교리에 중요하기는 해도 그리스도의 인격을 아는 데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런 것을 알지 못해도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속이란 그러한 역사적, 외형적 사건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그리스도는 단지 모델일 뿐 아니라 사람이 필수적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모습의 원형이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인간 안에 내재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인간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그리스도는 죄가 없다고 하는데, 역사적 결론으로 그리스도가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관한 종교적 감정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죄가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신학의 두 가지 큰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나타나는 감정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범신론적 개념인 것이다. 신 혹은 하나님이란 인간이 체험하는 실재 (reality)와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그의 강한 주관주의이다. 어떤 객관적, 역사적 사건은 자신에게 체험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구원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나오는 것이 된다. 자신과 관계되지 않으면 하나님도 구원도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자신과 관계되어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칸트의 현상적/본체적 세계의 이원론에 기인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듯이 슐라이어막허의 신학은 그 자신이 기존 정통 신학을 믿지 못함을 인해 감정과 같은 여러 허구적 개념들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만들어낸 것이다. 창조주로서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은 신학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다 배제된다. 인간의 경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표준이 된다. 이 슐라이어막허의 내재신학이 19세기 말엽 릿츌(Albrecht Ritschl, 1822-89)에 의해서 완전히 내재화되고 종말론도 다 배제되었다. 있는 것은 예수의 모범을 따라 사랑하며 사는 사람의 공동체만 남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은 ‘위’와 ‘아래’를 연결하기는커녕 아래에서 인간 자율성을 중심으로 빙빙 도는 소용돌이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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