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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9-04
 제목  슐라이엘마허(Friedrich Schlerermacher, 1768-1834)
 주제어  감정의 신학 [신학자] [목사] [슐라이엘마허]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슐라이엘마허는 신학자요, 교육자요, 설교가요, 목사요, 정치가이며 애국지사였다. 그는 1768년 11월 21일 브레스라우에서 개혁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사망하였고, 그는 곱사등으로 태어났다. 1783년 모라비안 학교에 입학하여 경건의 훈련을 받았다. 1785년 모라비안 형제단의 바르비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철학에 열중한 나머지 교수들의 충고를 받고 마침내는 퇴학을 당하였다. 그는 곧 할레에 가서 칸트를 연구하였다. 그는 거기서 그리스 철학의 광범위한 지식의 기초를 세우고 1793년 베를린으로 옮겨갔다. 그는 베를린에서 낭만주의에 깊이 심취하게 되었다. 그는 1804년 할레 대학의 교수가 되어 강의를 시작했고 1807년에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 거기서 성삼위일체 교회 담임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1810년 베를린 대학을 세우는데 공헌을 했으며 그 대학에 교수가 되었다.  그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의 결혼식에 주례를 섰으며 그녀의 남편이 죽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후에 그 여인과 결혼하였다.

 

     ○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관한 소고

     ○ 슐라이엘마허의 내재신학

     ○ 슐라이엘마허의 해석학적 신학

     ○ 슐라이엘마허의 신앙론

     ○ 슐라이엘마허 종교적 감정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

     ○ 슐라이엘마허 주관주의 신학 방법론
     ○ 신학의 형성과 방법론 - 슐라이엘마허와 바르트 중심

 


 <슐라이엘마허의 사상>


 

 <종교관> 칸트는 종교의 영역을 실천이성 즉 도덕의 영역에 두었고 헤겔은 역사 이성 즉 이성의 영역에 두었다. 그러나 슐라이엘마허에게 있어서 종교는 곧 경험이었다(낭만주의 적 경험). "그대는 교리 신조와 종교의 온갖 전제들을 배격한다. 매우 훌륭하다. 그런 것들을 배격해 버리라. 그것들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종교자체의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종교는 그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종교적 감정 또는 애정의 내용에 대한 인간적 반영이 만들어 낸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대는 기적, 계시, 영감 등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는가? 그대의 말이 옳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도깨비 이야기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런 따위를 믿는 신앙을 버리라. 나도 그리하였다. 그리하면 나는 그대에게 매우 다른 종류의 기적과 계시영감을 보여주리다. 내게 있어서는 무한, 우주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모든 것이 곧 기적이다. 이런 관계를 가진 온갖 유한한 것들은 그안에 무한의 표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계시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우주의 온갖 새로운 근원적인 교통이 그것이다. 그리고 온갖 본질적인 감정이 내게 있어서는 곧 영감이다. 내가 그대에게 인도하려는 종교는 그대에게 맹목적인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다. 물리학이나 심리학을 버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종교는 온전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주의 직접적인 산물이라는 의미에서 또한 온전히 은혜인 것이다."(맥킨토쉬, 현대 신학의 선구자들, 49) 지금까지의 종교에 대한 견해는 잘못된 것이었다고 그는 열렬하게 외쳤다. 종교는 과학이 아니다. 종교는 도덕이 아니다. 종교의 앉을 자리는 이성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양심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의지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종교가 신적인 것에 대한 인간 영혼의 직접적인 접촉일진대 그의 자리는 감정 안에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종교적 기능은 지식이나 의식 안에 있는 것이 아니요 지식과 행동의 동역자이고 근원인 감정(경험론의 감각 기관은 지식의 근원이 된다), 곧 직접적인 자기 의식 안에 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제한성에 눈뜨게 되는 데서 성립된다. 종교는 이러한 개체들이 항구적인 성질(낭만파의 자연) 안에 살려는 것을 의미한다. 각 사람, 또 모든 사람 안에 주어진 그 처소를 고요한 외경의 마음으로 지각하여 신성케 하려는 것이 종교이다. 그것은 주어진 처소에서 영원을 맛보며, 우주의 가슴에 안겨 그 한계 없는 생명과 창조적인 능력이 자신 안에 맥박쳐 들어옴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마셔 들이는 것이며 그의 정신에 흠뻑 젖어들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전체'를 그 온갖 표현과 행동에서 열심히 엿듣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하시는 일의 놀라움을 묵상하며 그 감화에 휩쓰리는 것이다. 우주 전체에 스며들어 퍼지고 있는 그 '정신'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관>: 슐라이엘마허 신학에서 성경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가 전적으로 성경에서 도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든 교리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인의 종교적 '자아-의식' 즉, 그리스도인들의 내적 경험으로부터 추출되어야 한다"고 썼다. 성경이 특별한 것은 그것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종교적 경험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약성경은 뒤에 올 세대들을 위하여 예수의 완전한 '하나님-의식'과 그것이 초기 그리스도인 들에게 미친 영향이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는 절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특정의 역사적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해석하는 모든 시도들에 대한 모범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슐라이엘마허는 성경이 초자연적으로 영감 되었거나 무오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또한 성경이 절대로 독특한 것으로 볼 수도 없고 그렇게 보아서도 안 된다고 믿었다. 그 쓰여진 것 속에 성령의 영향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곳에 나타난 성령의 영향과 비교해 볼 때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본질에서는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따르면 성경은 그것이 그리스도 자신의 '하나님-의식'을 순전히 반영하는 한에서, 그리고 어디에서든 성경을 통하여 그러한 '하나님-의식'의 순수한 모델이 나타날 때마다, 기독교 신학을 위한 하나의 상대적 권위를 가진다. 그러나 신학을 위한 진리의 궁극적 기준이 되는 것은 성경 자체가 아니라, 후자 곧 그리스도인들의 자의식 안에 재현된 '하나님-의식'이다.


 

 <하나님>: 슐라이엘마허가 재구성한 신론은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한 하나님-의식, 곧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절대 의존 감정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슐라이엘마허에 따르면, 하나님의 속성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묘사한다'함은 제한하고 분리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무한성을 감소시킬 수 있고 그 결과 하나님이 이 세계에 의존하고 있음을 암시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돌리는 그이 모든 속성들이 하나님 안에서만 특별하게 있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절대 의존 감정이 하나님과 관련되는 방식에 있어서 특별한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한 진술은 하나님-그 자체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는 어떤 방식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 경험의 함의들을 이끌어 내면서 그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실재이며, 선과 악을 포함한 모든 것의 궁극적 원인이고, 행동의 주체이나 객체일 수 없는 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악을 하나님의 원인으로 돌리면서 하나님이 죄와 악의 창시자라는 시실은 피조물의 의존성에 의한 필연적 귀결이라고 말한다. 만일 그 문제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리자의 몫으로 돌리게 되면, 그의 전능성이 제한을 받게 될 것이다. 죄는 하나님이 구속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정하셨다고 말한다.
 또한 슐라이엘마허는 기적의 현실성을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기적을 믿는 것은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며 그 원인자이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절대 의존 감정은 자연의 모든 것, 그것이 부분적이든 전체적이든, 하나님이 의도하시고 정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그 원인이 되고 있는 것임을 전제한다. 자연의 질서를 폐기하는 특별한 행동이라는 뜻에서 볼 때, 지적은 이러한 사실과 상반된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기적이다.)


 같은 이유에서 그는 중보 기도의 효과를 부정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이다. 기도가 어떤 일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이 기도하고 또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본래 계획의 일부일 뿐이고,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생각을 결국 완전히 무의미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적 경건은 하나님이 모든 유한한 것들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절대적인 무한적 힘이나, 그 자체는 절대적으로 비의존적 존재라고 감지한다. 슐라이엘마허는 초자연적이라는 범주를 제거함으로 과학 시대의 기독교가 당면하는 해결책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기적의 문제를 놓고 불 때, 과학 그것도 특히 자연 과학의 일반적인 관심과 종교의 관심은 동일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 같다. 즉 우리는 절대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의 실례를 하나도 우리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러한 것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Christian Faith, 183). 과학과 기독교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과학은 대략의 원인을 다루고 있는 반면에 후자는 궁극적인 원인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그는 삼위일체교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종교적 의식에 관한 언급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그는 그러한 점에서 사벨리우스적 양태론에 빠져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범신론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만유내재신론적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슐라이엘마허는 하나님을 이 세상으로부터, 혹은 세상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기를 거절했다. 하나님이 인격적이라고 하지만, 신인동형론적인 그런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멀리서 이 세계를 다스리는 어떤 위대한 존재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어떤 객체처럼 취급하는 것도 거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제한하고 정형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에게 하나님은 절대적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며, 모든 것 안에 내재하는 초인격적 능력인데, 피조성이 그 존재에 부과하는 모든 차별성을 뛰어 넘는다.


 

 <기독론>: 슐라이엘마허는 전통적인 성육신 교리를 거부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식'이라는 경험에 기초한 기독론으로 그것을 대치했다. 그는 예수의 두 가지 본성(인성과 신성)에 대한 고전적 교리가 비논리적이라고 비판했다. 한 개인 안에 두 '본성'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에 슐라이엘마허는 예수의 이상성(ideality, Urbildlichkeit)과 그것을 다른 사람들 속에 재생시킬 수 있는 그의 능력(Vorbidlichkeit)이 있다는 뜻의 개념으로 대치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애초부터 절대적으로 막강한 하나님-의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 외에는 나머지 인간들과 완전히 같다. 그의 하나님-의식은 인간만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활동이 빚어낸 결과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인간적인 '하나님-의식'이다. 그는 태어난 이후로 계속 그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음을 충분히 의식하는 가운데 살았다. 슐라이엘마허에 따르면, "그러므로, 구속자는 인간 본성이라는 정체 때문에 모든 인간들과 같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식'의 일정한 힘 때문에 모든 인간들과 구분된다. 그것은 그 안에 계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존재이다."
 예수가 소유했던 이 이상적인 '하나님 의식'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신성'이라고 하는 것을 표현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것이 그의 이상성이다. 예수의 구속 사역은 그가 이러한 하나님-의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며 이것이 그의 재생산성(Vorbildichkeit)이다. "이 구속주는 신자들을 그의 '하나님-의식'적 능력 속으로 받아들이는데, 이것이 그의 구속적 활동이다."


 

 <인간론>: 낙관적 인간론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역시 계몽주의의 인간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죄를 통해서 은혜로 나아가며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최후 모델을 발견하였다.
 결론: 그는 낭만주의의 철학적 사고를 신학에 대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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