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1999-08-02
 제목  칸트(Immanuel Kant, 1724. 4.22~1804. 2.12)
 주제어  임마누엘 칸트 [독일] [철학자] 피혁공
 자료출처  한국컴퓨터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독일의 철학자. 피혁공의 4남으로 출생. 부모는 모두 경건주의적인 독실한 신자였고, 특히 칸트는 모친의 깊은 감화를 받고 자랐다. 1740년 쾌니히스 베르그대학에 입학하여 철학, 수학, 물리학, 신학을 배웠다. 1770년에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교수가 되었다. 1781년에 12년간의 사색 끝에 획기적인 저서인 ( 순수이성 비판 )을 1788년에 ( 실천 이성 비판 )을 발표했다. 칸트의 시대는 계몽사상의 주의였고 그것은 신적 이성에 반하여 근대사상의 표현이기도 했다. 인간의 자기 신뢰에 근거를 둔 근대사상은 칸트의 이성, 인간이성, 자아에 의하여 비로소 확립되었다. 칸트는 신비적인 경험이나 인간의 구원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 칸트의 종교철학과 기독교의 이해

     ○ 절대 의식과 유한 의식의 자기 이해와 자기 전개― 칸트와 헤겔 사유의 동일성과 차이성

     ○ 칸트사상 요약

     ○ 칸트 '실천이성비판' 책의 개관

     ○ 칸트 도덕 형이상학에 관한 소고

     ○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에 대한 칸트의 비판

     ○ 칸트 윤리학의 정언명법론

     ○ 임마누엘 칸트 도덕의 신학

 


1. 칸트의 생애

임마누엘 칸트는 1724년 4월 22일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궁핍한 마구 직공의 아들로서 태어나 평생을 거기에서만 살았다. 아버지는 마구 상인이었다. 어머니는 독일 여자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인품과 타고난 지성 때문에 유명했다. 부모 모두 루터교 경건파의 독실한 신자여서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8살 때 칸트는 어떤 현명하고 마음씨 좋은 목사의 눈에 띄어 그 목사가 운영하던 경건주의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라틴어를 가르치던 이 학교에서 8년 반 동안 배웠는데 일생에 걸쳐 라틴어 고전을 좋아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때의 학교 교육 탓이다.

 

16세 때인 174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신학생으로 입학했다. 신학 과정을 이수하면서 때때로 설교까지 했지만 주로 흥미를 느낀 것은 수학과 물리학이었다. 합리론 철학은 체계화한 볼프 철학을 배웠으며 동시에 어떤 젊은 교수의 도움으로 뉴턴의 저작도 읽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동안 그는 가정교사를 해야 할 만큼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서 학생활동이나 즐거운 오락거리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은 당구를 치는 것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열심히 쳤고 재주도 있어서 돈을 따는 경우도 많았다. 졸업 후, 학자의 길을 택하기로 마음먹었지만 1746년 부친이 별세하자 우선 먹고살 방도를 마련해야 했다. 그는 가정교사 일을 구해 9년 동안 이 일을 했다.

 

1755년 친구의 도움으로 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대학의 사강사 생활을 시작한다. 15년 동안의 사강사 기간은 강사와 저술가로서 점점 큰 명성을 얻는 시기이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과학에 대한 관심을 결코 잃지 않았다. 관심의 수준이 아마추어 이상이었다는 것은 이때부터 몇 해 동안 과학의 여러 분야와 관련된 글을 여럿 썼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강의도 수학과 물리학에서 시작하여 논리학, 형이상학, 도덕철학 같은 철학의 주요 분야는 물론이고 자연지리학에 이르기까지 주제의 범위가 넓었다. 강의 내용은 유머가 넘치고 박진감 있었으며 영국, 프랑스 문학은 물론이고 여행기와 지리학, 과학과 철학 등 광범위한 독서에서 얻은 풍부한 실례를 들었기 때문에 실감 있고 생기 있었다.

쾨니히스베르크에서 교수직을 얻는데 두 번이나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로 오라던 다른 대학들의 제안을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베를린 대학은 다른 곳에 비해 많은 특권을 주면서까지 시학 교수로 초빙했으나 이것도 거절했다. 그는 고향에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지내면서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완성해 가기를 더 원했다. 마침내 1770년 칸트는 15년간의 사강사 생활을 마감하고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철학 교수로 임명된다. 정교수가 되자 그는 11년 동안 거의 글을 발표하지 않으면서 연구에 전념한 끝에 1781년 『순수 이성 비판』을 발간하고, 그 뒤 9년 동안 위대하고 독창적인 저술들을 계속 내놓음으로써 짧은 기간에 철학의 혁명적인 방향 전환을 이루어 낸다.

 

『순수 이성 비판』은 10년 동안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여러 번 연기를 하면서 망설인 끝에 초판을 발간했다. 자기 이론이 참임을 확신하긴 했지만 설명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걱정을 맞아떨어졌고 그는 독자들의 비판이 많은 경우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불만스러워했다. 자신에 대한 잘못된 해석들을 바로잡기 위해 『순수 이성 비판』의 핵심을 요약한 『형이상학 서론 (프롤레고메나)』(1783)을 썼고, 1789년에는 『순수 이성 비판』 초판을 개정하여 재판을 발간했다. 『순수 이성 비판』의 진정한 의도를 철학을 올바르고 확실한 길에 올려놓으려는 것이었다. 그는 이 뜻을 마저 이루기 위해 1785년 『윤리 형이상학 정초』, 1788년 『실천 이성 비판』에서는 진정한 도덕의 체계를 제시하려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확립한 원리를 사회에 적용하여 1797년의 『윤리 형이상학』에서는 법과 정치와 같은 사회 철학적인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1790년에는 『판단력 비판』을 통해 미의 문제와 자연의 목적론을 다루면서 비판 철학의 체계를 완결시킨다.

이렇게 체계를 잡은 칸트의 비판 철학은 곧 독일 말을 쓰는 모든 중요한 대학에서 강의되었고 많은 젊은이들이 쾨니히스베르크를 새로운 철학의 성지로 여기고 몰려들었다. 그들은 칸트에게서 온갖 문제의 답을 얻으려고 했다. 이런 존경을 받으면서도 칸트는 자신의 규칙적인 습관을 어긴 적이 없는 엄격한 생활을 유지했다. 160cm도 채 되지 않는 키에 기형적인 가슴을 가진 칸트는 몸이 약했기 때문에 평생 엄격한 식생활을 통해 건강을 유지했다. 오늘날 '철학자의 산책로'라 불리는 거리를 규칙적으로 산책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산책을 기준으로 시간을 맞췄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노령으로 산책이 힘들어질 때까지, 루소의 『에밀』을 읽는 데 열중하느라 며칠 집에서 나오지 않은 때를 빼고는 한 번도 규칙적인 산책을 거른 적이 없다는 이 일화는 칸트가 엄격하게 자기를 관리한 프로철학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칸트는 두 번이나 대학 총장을 역임하였고, 1787년에는 자기 집을 소유할 만큼 가난에서 벗어나 안정된 생활을 얻었다. 그러나 이미 결혼하기 힘든 나이고 들어서다 보니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1793년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를 출간하면서 칸트는 프로이센 당국과 종교의 믿음을 표현할 권리를 둘러싼 논쟁에 휘말려 들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 지나치게 합리주의적인 태도로 종교에 접근한 것이 정통 종교에서 문제가 되어 종교적 주제에 대한 강의나 저술 활동을 한동안 금지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72세에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도, 학문에 대한 열정에 변함이 없었다. 만년에 시력과 기억력을 잃어 쓸쓸한 날을 보내다 80세에 서거하였다. 임종시 그는 "좋군(Es ist gut)"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그의 묘비에는 『실천 이성 비판』의 결론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 법칙"

 

칸트의 비판철학은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비판하여 오랫동안 계속된 근대철학의 논쟁과 대립을 종합함으로서 근대 자연과학의 기반의 철학적 기초를 밝히는 등 유럽 사상계는 칸트의 출현에 의해 일대 혁명기를 맞아 피히테, 쉘링, 헤겔에 이르는 독일관념론을 낳았고 이 후 신칸트학파를 거쳐 현대에 이르도록 철학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출처 : 박정하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 > 독일

                     신학 > 종교철학 > 철학자

                               윤리학

>> 연결고리 : 철학자, 칸트  

 



   


A-Z




  인기검색어
kcm  323022
설교  166395
교회  120368
아시아  95760
선교  92009
세계  81898
예수  79527
선교회  69973
사랑  66288
바울  65863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