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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명사전  작성일  2009-05-29
 제목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
 주제어  [제국] [오스만제국] [중동]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4세기 비잔틴 제국의 쇠퇴로부터 1922년 터키 공화국이 건설될 때까지 지속되었던 아나톨리아의 투르크족이 세운 제국. 오스만 가문을 왕가로 하여, 현재 터키의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수도로 정하여 서쪽의 모로코부터 동쪽의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러 북쪽의 우크라이나에서 남쪽의 예멘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지배했던 다민족 제국이다.

 

아나톨리아(소아시아)의 한구석에서 나온 소 군후국으로부터 발전한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왕조는 이윽고 동로마 제국 등 동유럽기독교 제국, 맘루크 왕조 등의 서아시아·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 제국을 정복하여 지중해 세계의 과반을 차지한 세계 제국인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하였으나, 18세기 이후 쇠퇴하여 그 영토는 다른 나라에 점령되거나 독립하여 20세기 초반에 마침내 마지막에 남은 영토 아나톨리아로부터 새롭게 건국되어 나온 국민 국가인 터키 공화국이 되었다.

 

13세기 말 이후 셀주크 투르크에 대신하여 소아시아(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투르크족의 이슬람 국가(1299∼1922)이다. 오스만 1세(재위 1299∼1326년)가 건국하였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터키 북서부의 부르사를 공략하여 소아시아 지방을 거의 통일하고(1326) 1362년까지 수도가 되었다.  아드리아노플(에디르네)을 점령하고(1362년), 코소보 전투에서 제 3대 술탄인 무라드 1세(재위 1360~89년)가  발칸 여러 나라의 동맹군을 무찔렀으며(1389), 나아가서 니코폴리스에서 유럽 여러 나라의 십자군을 격파(1396년), 발칸의 대부분을 병합하였다. 그러나 서진(西進)하여 온 티무르군에게 앙카라에서 패하였다(1402년). 즉 바야지트 1세가 티무르의 편을 든 소아시아의 제후국(諸侯國)을 압박하고 특히 시바스후국(侯國)을 공격하자, 티무르는 인도코끼리군을 포함한 20만 대군을 이끌고 소아시아로 침입하였고, 바야지트는 12만 병력으로 이에 맞섰다.

 

7월 20일 터키의 앙카라 북방 초원에서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전투는 벌어졌는데, 오스만투르크군 중에서 티무르군 쪽으로 달아나는 자가 속출하였다. 바야지트 자신도 도망치다가 말에서 떨어져 붙잡혀 우리에 갇혀 압송되었는데, 다음해 병사하였다. 그로인해 10년 동안 공위시대(空位時代)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7대 술탄 메메드 2세(재위 1451~1481년) 때에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공략에 성공함으로써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수도를 아드리아노플에서 이곳으로 이전하였다(1453).


  이후 냉혹자 셀림 1세(재위 1512∼1520년)는 이란(1514년) ·시리아 ·아라비아(1516년)를 제압하고 1517년  이집트를 정복하여, 마지막 아바스왕조의 칼리프인 알 무타와킬로부터 칼리프 칭호를 물려받아 이슬람교의 종주권을 장악함으로써, 술탄 칼리프제를 확립하였다(1517). 쉴레이만 1세 치하(治下)에 극성기에 달하여, 영토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3대륙에 걸쳤으며, 그 군대는 한때 빈(오스트리아)까지 육박하였다(1529). 또한 국내에서는 군사적 봉건제에 입각한 국가체제를 확립하고, 법률 ·학예 ·건축 ·공예 등 각 분야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으나, 17세기 이후로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중기에 전체주의적 개혁에 의하여 질서를 회복, 강경한 외교정책을 펴서 한때 부흥하였으나, 제2차 빈 포위공격에 실패(1683)하고부터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폴란드 등 열강의 진출이 활발하여 17세기 말에 헝가리의 대부분을 오스트리아에, 18세기 후반에는 흑해 북안을 러시아에 빼앗겼다. 19세기에 들어서자, 나폴레옹이집트 원정(1789∼1801)을 계기로 열강의 압력은 더욱 격화되어 그리스의 독립, 이집트의 이탈, 프랑스알제리 점령, 영국의 아덴 점령 등이 잇달아 일어났다. 아메드 2세(재위 1803∼39) 이후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의 ‘탄지마트’에는 근대화정책이 추진되어 신앙 ·출생의 구별없이 생명 ·재산을 보장하는 일, 과세의 공정화, 재판의 공개, 군제의 개혁 등이 공약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의 표면적인 모방에 그쳤기 때문에 효과는 거두지 못하였고, 그 후 러시아-투르크전쟁에 대패함으로써 유럽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하였다.

 

  이에 유럽 문명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은 전제군주 아브뒬 하미드 2세에게 강요하여 근대적 ·자유주의적 헌법을 발포하게 했다(1876). 그러나 술탄은 이듬해 이 헌법을 정지시키고 절대주의적 전제정치를 강행하게 되자, 1908년 이에 반대하는 청년 장교들이 청년투르크당(黨)을 결성하고, 군대의 압력으로 술탄에게 헌법 ·의회정치의 부활에 동의하게 했다. 이것이 청년투르크당의 혁명이다. 이후 청년투르크당 내각이 조직되었고, 그 정권하에서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 독일측에 서서 싸웠으나 패하였으며, 그 결과로 가혹한 세브르 조약에 조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1920). 그러나 이 조약은 오스만투르크의 독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 대국민의회를 소집하고, 1922년 11월 술탄 정부의 폐지를 선언함으로써 오스만투르크제국은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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