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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명사전  작성일  2007-07-20
 제목  이스탄불
 주제어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자료출처  한메 백과 사전  성경본문  
 내용

서아시아 보스포루스해협 서안에 있는 터키의 도시. 인구 약  733만(1993). 이스탄불주의 주도이며, 터키의 문화·교통·경제·학술·관광의 중심지이다. 이 도시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터키 최대의 도시이다. 유럽 쪽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이라 일컬어졌던 옛 시가(에미뇌뉘·파티프지구 등으로 나뉨) 외에 그 서쪽으로는 마르마라해 연안에 있는 제이틴부르느·바크르쾨이지구 및 골든혼을 사이에 두고 옛 시가지 북쪽에 있는 베이우르·베시크타슈·시슐리지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아시아 쪽은 위스퀴다르·카디쾨이지구 등으로 되어 있다. 이스탄불은 터키의 공업생산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주요 업종은 금속·기계·섬유·약품·식료품·의류·피혁·제지·전기기기 등이고, 전통적인 중소공장이 옛 시가지와 시슐리지구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 밖에 옛날에는 해운을 이용한 골든혼 연안이 훌륭한 공업지역이었으나, 최근에는 도로수송을 이용하여 아시아 쪽에서는 앙카라로 통하는 국도(國道), 유럽 쪽에서는 에디르네로 통하는 국도를 따라 근대적인 공장이 진출하고 있다. 또한, 예로부터 보스포루스해협은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서 현재도 에미뇌뉘지구와 카라쾨이 등을 거점으로 해상교통과 무역활동이 활발하다. 또한 보스포루스해협을 횡단하는 페리는 시민의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한편, 철도교통면에서는 에미뇌뉘지구에 오리엔트급행 역으로 유명한 시르케지역이 있으며, 아시아 쪽에서는 앙카라 등지로 통하는 하이다르파샤역이 있다. 1973년에는 길이 1074m의 보스포루스교(橋)가 가설되었으며, 유럽 고속도로 5호선이 개통된 뒤에는 시의 여러 지역에 설치된 인터체인지로 자동차의 교통조건이 좋아졌다. 또한 시가지 서쪽 22㎞ 지점에는 로에실쾨이국제공항이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스탄불에는 사적(史蹟)과 유서깊은 건축물이 많다. 특히 옛 시가지는 토프카피궁전(지금의 박물관), 하기아소피아(지금의 박물관), 술탄 아메트모스크(청색모스크), 술레이마니에모스크, 와렌스의 수도교(水道橋) 등이 있으며 옛 시가의 서쪽을 경계짓는 비잔틴시대의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또한 골든혼에 가설된 갈라타교(橋)·아타튀르크교(橋)와 통하는 북쪽의 신시가지에도 제노바인 거류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갈라타탑, 케말 파샤가 집무 중 사망한 곳으로 유명한 돌마바체궁전 등이 있다. 옛 시가지에 있는 전통적인 상업지구 그랜드바자르는 장대한 규모로 유명하지만 골든혼 북쪽의 신시가지에도 타쿠심광장과 이스티클라르거리 등 번화했던 상업지구가 있다. 옛 시가지에는 고고학박물관·고대오리엔트박물관·이슬람미술박물관·이스탄불대학 등이 있다.

 

〔역사〕

 시의 기원은 발칸반도에서 이주해 온 트라키아인의 취락에서 찾을 수 있는데, BC 7세기 중엽 그리스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비잔티움(Byzantium)이라 일컬어지는 어업과 해상무역의 기지로서 번영하였다. BC 201년에 로마의 동맹도시가 되었으나, 193∼196년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황제가 이곳을 점령하고 성벽·경마장·목욕장 등을 건설하였다. 330년부터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이곳을 로마제국 동방령(東方領)의 수도로 정한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Konstantinopolis;콘스탄티노플)라 불리었으며, 4세기에는 인구 20만이 넘는 대도시가 되었다. 413년 테오도시우스황제에 의하여 성벽이 확장되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주요 건축물은 로마를 모방해서 7개의 언덕에 건설되었다. 도시는 14개 지구로 나누어졌으며 400개가 넘는 교회·예배당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326년에 건립된 하기아소피아(아야소피아) 대성당은 동방그리스도교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395년에 동로마·서로마로 분열된 뒤에는 비잔틴제국의 수도로서 번영하였다.

 

11세기 무렵부터 베네치아인과 제노바인이 지중해무역에 진출하면서 비잔틴제국의 상업과 재정은 그들의 지배를 받아 도시의 번영은 끝났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점령으로 도시는 약탈당하였고 카이제국은 수도를 니케아로 옮겼다. 61년 십자군에 의해 라틴제국이 붕괴하자 비잔틴제국의 수도로 복귀했으나, 도시는 이미 옛 모습을 앓었고, 1453년 오스만제국에 의해 정복될 무렵의 인구는 3∼5만에 지나지 않았다. 오스만제국의 메메트 2세(재위 1451∼81)는 정복 후, 즉시 하기아소피아대성당을 비롯해서 많은 교회를 모스크로 바꿈과 동시에, 57년 이후, 이 도시를 오스만제국의 수도로 삼고 그 이름을 이스탄불이라 고쳤다. 그는 아나톨리아와 발칸 각지로부터 투르크인·그리스인·아르메니아인들을 이 도시에 강제로 이주시켜서 모스크·바자르(市場)·캐러밴사라이(隊商宿)·학교·병원 등 사회시설을 갖추었다. 15세기 말에는 에스파냐계 유대인을 많이 받아들였고,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와 서아시아 각지에서 상인·기능공·학자·문인의 이주가 잇따랐다.

 

그 결과 16세기 중엽에는 인구 50만 정도의 대도시로 부활하였다. 술레이만 1세(재위 1520∼66)의 제국융성기에는 흑해·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한 오스만함대의 본거지로서, 그리고 동서남북에 이르는 국제무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다. 16세기말 인구가 70만이 되자 식량난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되고 상비군단의 반란과 민중봉기가 자주 일어났다. 비잔틴제국시대부터 골든혼 오른쪽 연안의 갈라타지구는 이탈리아상인의 거류지였으나 17세기 이후, 영국·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가 앞다투어 이곳에 영사관을 설치했으며, 여러 그리스도교회도 건립되어 신시가지를 형성하였다.

 

1845년에 옛 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갈라타교가 골든혼에 가설되었다. 지난 역사를 통하여 가끔 화재·지진·해일 등의 피해를 입기도 했는데, 1774년 1월의 대화재로 2만 가구가 소실되었고, 1839년 1월에는 오스만제국의 정청(政廳;바브알리)이 모두 불탔다. 19세기 이후 제국의 근대화와 식민지화가 진행되자 이 도시는 서아시아·발칸 여러 민족의 반제국주의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자본과 오스만궁정에 의하여 각종 학교·도서관·전기·도시가스·수도 등의 공공시설이 건설되었다. 제1차세계대전 후 투르크인에 의한 반제국주의운동이 아나톨리아에서 일어나자,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1920년 3월 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23년 터키공화국이 성립되고 오스만제국이 멸망하자 수도를 앙카라로 옮겼다.

 

 

>> 연결고리 :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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