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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명사전  작성일  2007-07-20
 제목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주제어  터키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폴리스
 자료출처  위키사전  성경본문  
 내용

 터키의 도시 이스탄불의 옛 이름으로,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바꾸기 전의 원 이름은 비잔티움(Byzantium, 그리스어 Bυζαντιον)이었다.


 

[역사]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 메가라 출신의 비자스(Byzas)라는 사람이 창건했다고 하며, 최소한 기원전 600년경에는 작은 촌락들이 발달하고 있었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동방의 페스켄니우스 니게르로마 제국을 놓고 내전을 벌였을 때, 비잔티움은 니게르 편에 서서 세베루스군에 저항했다. 당시 비잔티움에는 천험의 지형과 많은 수의 함대와 프리스쿠스라는 이름의 기술자가 고안한 각종 기계 장치, 그리고 군사와 백성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무려 3년동안이나 농성했다. 때문에 도시가 함락된 후 세베루스 황제의 보복조치로 페린투스(Perinthus)시의 일부로 격하되었다. 이후 세베루스 황제에 의해 메세 가도가 놓여졌다.

 

비잔티움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퇴임 이후의 내전에서 처음에는 막시미누스 다이아 황제의 지배를 받았다. 막시미누스 다이아는 리키니우스 황제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만나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는 사이에 리키니우스의 영역으로 쳐들어갔으나 도리어 신속하게 돌아온 리키니우스의 반격을 받아 죽었다. 이때 리키니우스는 11일의 포위공격으로 비잔티움을 점령했다.

 

내전이 종결되어가는 가운데 서방의 콘스탄티누스와 동방의 리키니우스만 남게 되었다. 비잔티움은 로마 제국을 완전히 통일하려는 콘스탄티누스의 맹공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리키니우스군이 잘 버텼으나 콘스탄티누스의 맏아들 크리스푸스가 수군을 이끌고 헬레스폰토스 해협으로 돌진하여 2일간의 전투 끝에 130척의 배와 5천의 병사를 수장시킨 것이 급격히 전세를 반전시켰다. 바다의 장악으로 보급을 원활히 받게 된 콘스탄티누스는 마침내 비잔티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로마 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새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 결과 선정된 도시가 비잔티움이었다. 황제는 비잔티움 공략전을 통해서 비잔티움이 몹시 가치있는 군사적 요충지라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아시아와 유럽의 교차점으로 상업과 교역이 발달했으며 다뉴브 강과 흑해 너머의 이민족들, 또 동방에서 맹위를 떨치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공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에도 알맞았다. 당시의 제국은 동방에서 위협이 커지는 상황이기도 했다. 마침내 328년부터 330년에 걸친 대대적인 공사가 끝나고 황제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정해졌다. 이제 로마 제국의 수도는 이미 이전의 황제들이 외면하고 있었던 로마시에서 완전히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지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분열된 제국을 재통일하고 330년 5월 11일 월요일 이 도시의 이름을 "새로운 로마(Nova Roma)" 로 부르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선포한 이래, 이슬람화이전까지 기독교(동방정교회)문화의 꽃이 피어서 지금도 정교회 성 소피아 성당에는 화려한 성화(이콘)들이 남아 있다. 그 후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로 번성했는데 이슬람과 불가르족등 여러 야만족의 침입을 받았으나 천혜의 자연적 조건으로 난공불락인 이 도시는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침공때 베네치아 공화국을 비롯한 서유럽의 라틴인들에게 함락되었다가 57년 만인 1261년 미카엘 8세에 의해 탈환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참조) 이 도시를 함락시킨 술탄 메메드 2세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다. 오스만투르크 치하에서는 그리스어 이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터키어 이름인 이스탄불이 모두 사용되었으나, 서구에선 여전히 콘스탄티노폴리스란 이름이 사용되었다. 이스탄불은 1930년에 와서야 도시의 공식 명칭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그리스가 이 도시의 연고권을 주장하며 강제 접수하려 했으나 후에 터키공화국 초대대통령이 되는 무스타파 케말(케말 아타튀르크)의 방어로 저지되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수도는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옮겨졌다.

비잔티움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이 폴리(i Poli, "도시")라 불렀는데, 이는 비잔티움 제국이 존속했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유럽 최대의 도시였으며, 제국인들이 세계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 참고고리 : 이스탄불, 비잔티움, 니케아 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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