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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9-04
 제목  임마누엘 칸트 도덕의 신학
 주제어  [칸트] [도덕]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계몽주의로부터의 탈피는 칸트에 의해 이루어졌다. 칸트는 종교의 적합한 영역으로서 삶의 실천적 영역으로서, 즉 도덕적 영역을 제시했다. 그는 지적인 면에서 계몽주의에 가깝게 있었다는 것은 삶의 윤리적 차원을 종교의 중심적 관심사로 높이는 점에서 이해된다. 그것은 이성의 시대인 계몽주의 윤리의 핵심에 가까운 이해였다. 그러나 그는 도덕 지향적 종교의 확립 방법은 계몽주의와는 완전히 달랐다. 칸트는 이성을 인간의 앎(인식론)의 중심부로 끌어올렸다. 칸트는 실제를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론화했다. 이것은 철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었다. 칸트의 인식론은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에서부터 시작한다. 경험주의에서 인식의 과정을 이해하는 중심 사상에는 소위 '수동적 지성'이라는 것이 있다. 

존 로크(1632-1704)는 그의 "인간 지성론"(1689)에서 데카르트 철학의 중심 주제를 부인하면서 주장하기를 인간의 지성을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본디 타고난 관념이 전무한 하나의 백지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 과정은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오관을 통하여 외부로부터 전해져 오는 '인상들'을 수용한 다음 그 동안 수집한 인상들로부터 관념들을 형성하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먼저 감각 속에 없었던 것은 오성에도 없다]고 말한다. 태어났을 때에는 마음이 백지이고 감각적 경험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종이 위에 글씨를 써서 마침내 감각으로부터 기억이 생기고 기억으로부터 관념이 생긴다. 이 이론은 오직 물질적 사물만이 우리들의 감각에 작용하므로 우리는 오직 물질을 알 수 있을 뿐이고 유물론적 철학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으로 향하게 된다. 만일 감각이 사고의 재료라면 물질은 정신의 원료가 아닐 수 없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물론적 사고에 죠지 버클리(1684-1753)는 반론을 제시했다.

로크의 인식분석은 오히려 물질은 정신의 형태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로크에 따르면 인식은 사물에 대한 감각이고 이 감각으로부터 생긴 관념이다. 사물은 분류되고 해석된 감각의 묶음이다. 조반은 우선 시각과 후각과 촉각, 다음에는 미각, 다음에는 체내의 만족감과 온기의 집적에 지나지 않는다. 망치의 실재성은 물질성이 아니라 손가락을 통해 느끼는 감각에 있다. 감각이 없다면 망치는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한 물질은 정신적 상태이고 우리가 직접 알 수 있는 유일한 실재는 정신이다. 여기에 데이빗 흄(1711-76)은 매우 이단적인 <인성론>으로 전 기독교계에 충격을 주었다. 버클리에 반대해서 흄은 우리가 결코 정신이라는 실체를 지각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개별적 관념, 기억, 감정 등을 지각할 뿐이라고 말한다. 정신은 하나의 실체, 관념을 갖고 있는 하나의 기관이 아니며, 일련의 관념들에 대한 추상적인 명칭일 뿐이다. (여기에 화이트헤드가 흄을 높이 평가한다.) 지각, 기억, 감정이 정신이다.  사고 과정의 배후에 알아볼 만한 [영혼]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는 결코 인과 관계나 법칙을 지각하지 못하고 사건과 그 연속을 지각할 뿐이고 여기에서 인과 관계와 필연성을 [추리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흄은 말한다.

그러므로 법칙은 여러 가지 사건이 복종하는 영원하고 필연적인 섭리가 아니라 우리의 만화경적 경험의 정신적 총괄이고 집약적 표현일 뿐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사건의 연속이 미래의 경험에서도 변함없이 재현된다는 보증은 없다. 법칙은 사건의 연속 속에서 관찰된 관습이고 [관습]에는 [필연성]이 있을 수 없다. (듀란트, 235-36) 경험론 철학의 인식론은 결국 인간 인식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을 보여 준 데이비드 흄의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 흄에 의하면, 경험주의의 방법은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실재의 어떤 양상들, 곧 가장 중요한 예들을 들어본다면, 인과 관계라든지 실체 등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각일 뿐이라고 흄은 천명했다. 이러한 지각들은 우리 나름대로 추론해 보지만 실제로는 경험하지 못하는 인과 관계에 근거한, 일련의 사건들의 우연의 일치 같은 것을 포함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일련의 여러 가지 인상들(크기, 색깔 등)을 경험하기는 하지만 정작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들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상상력은 그러한 인상들이 그 물체들 안에 들어 있는 속성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흄에 따르면, 우리는 실체들에 대하여 그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로 인식하는 실제적 인식을 할 수 없다. 사실, 인과 관계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외적 물체들의 정체가 '거기에 있는 대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정체를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지성의 습관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렌즈 35)

흄의 인식론적 회의주의는 종교적 신념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것은 이신론, 즉 경험주의라는 구조물 위에 세워진 종교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자연 종교의 합리성을 주창하는 논증들이 그 주창자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만약 인과 관계라는 것이 경험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한 예로서 우주론적 존재 증명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실체라는 개념을 인정치 않는다면 영혼 불멸의 교리도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불의와 악을 보면서는 창조주의 선하심에 기초한 응보적 정의라는 미래적 사실을 당당하게 주장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형이상학의 기반을 공고히 다지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에서 그는 하나의 대담한 가설을 제시했다. 즉 지성은 인식 과정에서 '능동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주장하기를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은 감각 경험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감각은 단지 원자료를 공급하는 것이고, 실제로 인식의 과정이 진행될 때는 지성이 원료의 상태로 주어진 그것을 체계화한다. 이와 같이 감지된 내용들을 조직화하는 데는 이성 안에 내재된 어떤 형식적 개념들이 인식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로서 일종의 여과판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지식으로서 성립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여러 가지 형식적 개념들 가운데 두 가지가 기본적이다. 공간과 시간이 그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공간과 시간은 물질 자체에 내재되어 있지 않은 속성들이다.

오히려 이 두(감성의) 형식은 다른 형식적 구조들과 마찬가지로, 지성이 마주 대하게 되는 이 세계에 부과하는 질서 체계의 한 부분이다. 실제로는 사물들이 시공간적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두 가지 기본 개념들이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는 오관적 경험의 대상이 되는 외부 세계를 인식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렌즈 36) 칸트는 인식 과정에서 지성이 능동적이라고 하는 가설은 인간 인식자의 경험 속에 존재하는 대상들(현상계, phenomena)과 경험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대상들(가상적인 것, noumena)을 구분하도록 만들었다. 칸트에 의하면, '가상적인 것'은 어떤 인식의 주체와 아무런 관계없이 존재하는 대상(물자체, the thing-in-itself)이거나, 또는 우리에게 단지 그것을 탐지하는 데 필요한 장치가 부족할 뿐인 어떤 대상이다. 이 '가상적인 것'이라는 개념 때문에 칸트에게는 원인과 결과를 초월하는 어떤 영역이 열리게 되었고 그 안에서 그의 능동적인 도덕적 행위자인 인간에게 자유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었다. 흄의 이론과 같이 칸트의 인식 이론은 사고하는 자가 감각 경험을 가지고는 신이라든지, 불멸하는 영혼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같은 초월적 실재를 논증하기에는 커다란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칸트가 [순수 이성 비판]에서 전개한 입장은, 과학은 감각 경험에 기초한 것이므로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실재들에 대해서는 과학적 작업을 통해서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순수' 혹은 사변적 이성은 기껏해야 이러한 형이상학적 개념들이 경험적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어떤 것과도 모순되지 않으므로 있을 법하다고 진술하는데 그칠 뿐이다.

여기서 칸트의 의도는 흄의 종교적 회의주의를 증명해 주려는 것이 아니라 좀더 확고한 입장에서 형이상학적 가정들에 접근하려 했다. 그는 후에 [판단력 비판]에서 신이라는 실재가 감각에 기초한 경험의 논증에 의하여 증명될 수 있다면 신을 도덕적 범주들 가운데 놓고 보 것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순수 이성 비판] 제2판에서 "나는 신앙에 여지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 인식을 부인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칸트에게 있어서 '신앙'은 인간 이성의 또 다른 영역, 곧 '실천적' 측면에서의 이성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러한 이성을 인간 실존의 도덕적 측면과의 관계성 안에 놓고 보았다. (그렌즈 37) [실천 이성] 형이상학적 가설의 모든 이론적 증명들이 가지는 오류를 보여 줌으로써 칸트가 처음 제시한 비판은 '순수' 또는 사변 이성의 한계를 밝혔다. 그러나 그 외의 다른 수단들을 이용하여 그러한 가설들을 확증하는 작업만 남았다. 신, 불멸성 그리고 자유 등의 개념들을 확립하는 작업은 칸트의 도덕적 논저들, 특히 그의 [도덕 형이상학의 근본 원리, Fundamental principles of the Metaphysics of Morals, 1785], [실천 이성 비판,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1788],그리고 [도덕 형이상학, Metaphysic of Morals, 1797] 등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칸트의 주장의 기초에는 인간이란 감각 경험의 존재일 뿐 아니라 도덕적 존재이기도 하다는 논지가 있다. 그는 우리와 이 세상의 관계는 과학적 지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오히려 이 세상에는 인간들이 활동하는 하나의 무대이며 도덕적 가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이른바 보편적인 인간의 도덕적 경험, 즉 도덕적으로 조건지어져 있음에 대한 이해, 혹은 도덕적 '당위성'이라는 것에 호소함으로써 인간 실존의 도덕적 성격에 대하여 입증했다. 인간들은 도덕성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력(지상명령)' 같은 것을 느낀다고 그는 천명했다. 칸트는 이러한 인간 실존의 실천적이며 도덕적인 측면은 인간 실존의 이론적 차원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는 이성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모든 이론적 혹은 감각에 기초한 인식의 근저에 다른 이성적 원리들이 있듯이, 모든 타당한 도덕적 판단도 어떤 이성적인 원리들에 의하여 통제를 받고 있다고 확신했다. 결국, 인간적 삶의 도덕적 차원의 목표는 가능한 한 이성적으로 되는 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이성적 도덕적 삶의 방식을 말할 때 '의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칸트에게 의무의 길은 도덕성의 최고의 원리인 그의 유명한 정언 명법(categorical imperative)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그의 말을 빌리면, "당신의 행동의 준칙이 당신의 의지에 의하여 보편적인 자연 법칙이 된 것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가 가르키는 바와 같이, 정언 명법은 구체적인 행동 하나 하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행동 이면에 있는 동기 유발 요인의 고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천적 요청들] 칸트가 형이상학을 재정립하는데 근본이 된 것은, 도덕적 조건성이라는 보편적 경험에 의하여 증명된 인간 존재의 도덕적 성격이다. 삶에 이러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그는 이론적 이성으로 입증할 수 없었던 세 가지 초월적 가설의 확실성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있었다. 이 세계의 도덕적 성격이 그러한 요청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실천적 요청들'은 반드시 가정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처음의 두 가지 요청인 신과 영혼 불멸은 칸트의 최고선(summum bonum)에 대한 이해로부터 발단되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를 위한 최고선은 덕과 행복이 연결되는 곳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생의 삶 속에서 덕이 항상 보답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칸트의 결론은, 덕을 끼치는 삶이 적합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미래적 삶이 있어야 하며, 신은 그곳에서 완전한 정의가 정말 유효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이로서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의 자유에 대한 요청은 특히 폭넓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는 인간이 능동적인 도덕적 행위자라는 인간 보편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상적 차원에서 인간은 물리적 존재로서 자연의 법칙에 예속되어 있으므로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덕적 의무는 자유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 논증은 인간 개인을 두 영역에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자로 보았다. 그러므로 각 개인인 양 측면, 즉 도덕적인 측면(자유로운 행위자로서)과 과학적인 측면에서(물리적인 인과 법칙 아래 놓인 존재로서)이해되어야 한다. [합리적 종교]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Religion within the Limits of Reason Alone, 1793)에서 칸트는 도덕으로부터의 종교를 소개했다. 왜냐하면 종교는 도덕을 위한 궁극적인 목표를 제공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인간의 최종적인 목표'가 되는 '권능의 도덕 입법자'에 대하여 말해 주기 때문이다. 이 글은 계몽주의의 연속이면서 동시에 단절을 보여 주었다. 그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뿌리뽑을 수 없는 악한 성향이 우리 안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근본악'(radical evil)에 대한 토론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토론에서 칸트는 이성의 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을 범하고 말았다. 그는 계몽주의 시대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원죄의 교리를 다시 도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칸트가 계몽주의와 완전히 결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계몽주의의 낙관론을 유지했다. 인간에게서 근본적인 악이 발견되지만 "그의 행위는 자유로우므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던 것이다.

이렇게 두 명제를 동시에 붙잡기 위해 그는 우리의 실제적인 의지(actual will)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았던 악의 원리와, 우리의 본질적인 의지(essential will)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 그가 스스로 천명했던 정언 명법을 구분지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칸트는 마이클슨이 이야기했던 "종교개혁의 타락에 대한 강조와 계몽주의의 자유에 대한 강조를 불안정하게 융합"시켰다. 종교를 본질적으로 윤리적이라고 보았던 칸트는 그의 기독론도 그러한 관점에서 보았다. 그의 창조의 목적이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류를 만드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이러한 목표는 우리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의 독생자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계몽주의 사상에 충실한 칸트는, 이러한 관념은 우리의 이성 속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는 관념'의 원형으로서 '경험적인 본보기'가 우리에게 필요하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 그는 기독교적 전통을 신중하게 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러한 이상의 한 역사적 모범으로서 예수--또는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 세상의 최고선을 위하여' 고난에 직면한 예수의 모습--가 있다고 덧붙였다. 계몽주의에 의한 변화들은 그가 종교적 권위를 이해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성경이 교회 안에서의 유일한 규범임을 인정하지만, 칸트는 '순수한 이성의 종교'만이-진정한 것이며 보편 타당한 것이므로-성경의 해석 원리라고 선언했다. 그는 성경의 이야기들 이면에 놓여 있는 진정한 의미는 도덕적 차원(즉, '거룩을 향하는 분투하는 덕')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 이야기의 이면에 놓여 있는 영원한 신앙의 진리를 추구했다. 진정으로 도덕적인 원리들을 자기 자신의 성품에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외에는 인간에게 다른 구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도덕적 원리들의 수용에 역행하는 것은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는 육적 본성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불러일으킨 사악(邪惡)이었고 . . . 그것은 일찍이 인류가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바이다. 마지막으로 칸트는 은혜라는 범주를 재해석한다. "진정한 종교는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미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나 고려하는 데 있지 않고, 그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칸트는 종교개혁의 핵심이었던 은혜와 행함의 순서를 뒤집어 놓았다. "정도(正道)는 은혜로부터 시작해서 덕행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덕행으로부터 사죄의 은혜로 진행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렌즈 41) [도덕에 기초한 신학] 칸트는 몇 가지 중심적인 종교적 교리, 신의 실재, 영혼의 불멸 그리고 인간 개인의 자유 등의 교리들을 추론해 내기에 이른다. 그러나 계시로부터 신 존재의 속성들을 논증하던 고전적 신학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보는 사상에만 기초하여 그의 사상 체계를 수립한 칸트는 데카르트와 다름이 없었다. 즉 그의 방법은 계시로부터 이성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부터 계시로 이행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칸트는 계몽주의의 프로그램인 순수하게 이성적인 신앙을 설명하는 작업을 수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혁신이 칸트를 이성의 시대로부터 구별해 내게 한다. 그의 선배들과 달리 그의 제안의 특징을 이루었던 것은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이성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의 근본이란 인간 존재의 어떤 특정한 차원, 즉 이성의 실제적인 양상과 연관되어 있는 도덕적 조건성의 경험(the experience of moral conditionedness)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결국 칸트는 인간의 존재의 차원(즉 신, 영혼의 불멸 그리고 자유와 같은)을 설명하는 데 필요하다고 보았던 형이상학적 요청들만을 긍정하였다. 이러한 방법론의 연장으로 그는 도덕적 보증자로서 필요한 속성들만을 신의 본성에 포함시켰다. 그러므로 칸트는 그러한 도덕적 차원을 넘어서는 신의 본성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고전적인 기독교 사상처럼 신학을 기초로 해서 도덕을 세운 것이 아니라 도덕을 기초로하여 신학을 세운 것이다. 신학사의 맥락에서 칸트의 작업은 계몽주의 시대의 이신론의 최종적 사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성의 시대는 자연종교의 원리들을 견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칸트는 이신론의 핵심적인 형이상학적 원리들은--신의 존재, 영혼의 불멸 그리고 인간의 자유--사변 이성에 의하여 논증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의 종교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해서 신학의 종말이 온 것은 아니었다. 칸트는 도덕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의 강조점을 채택하여 그것을 좀더 확고한 기초 위에 올려놓았다. 종교는 실천적 이성, 즉 인간 존재의 윤리적 차원과 그에 상응하는 이성의 도덕성에 기초하여 수립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있어서 도덕적 차원은 종교의 적절한 영역이었다. 거기서 종교는 과학의 발견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고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 칸트는 철학과 신학 양자와 관련하여 토론의 무대를 설정해 주었다. 그것은 계몽주의 시대의 주요한 진보들을 융합하는 것이었을 뿐 아니라 계몽 사상에 대한 하나의 명징(明澄)한 답변이었다. 그래나 그도 그 시대의 몇 가지 파괴적 사상적 경향들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종교란 초월적 입법자에 대한 경배로서 그 입법자의 뜻이 인류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사상을 수립하려 했다. 그러나 칸트의 방법에 의하여 만들어진 신학은 인간 중심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그 자신이 그렇게 애써 거부하려고 했던 신의 내재성을 어쩔 수 없이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보면 자율적인 인간의 이성이--계몽주의에서 말하는 순수 이성이든, 칸트의 실천 이성이든--보편적으로 듣게 되는 '신의 음성'은 인간 자신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인 것이다. 그것은 저 초월적인 '저편'(beyond)으로부터 오는 말씀은 아닌 것이다. 칸트가 제시한 제안을 보면, 초월적 신은 인간의 '실천적 이성'의 심연 어딘가에서 발견되는 정언 명법의 음성 속으로 쉽게 묻혀 버린다. 또한 성경의 해석도 이성의 한계 내에 국한되어서 결국 이성이 성경보다 우위에 서게 된다.

 

 

>> 목차고리 : 신학 > 종교철학 > 철학자 > 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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