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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성경지명  작성일  2007-01-02
 제목  나일강(Nile)
 주제어  [강] [이집트]
 자료출처    성경본문  창 15:18,렘 46:7,슥10:11
 내용

뜻 : 검다

 

(1) 애굽의 사활이 달린 강(사 19:7, 23:3, 렘 46:7, 슥 10:11, 렘 2:18).

(2) 아프리카 제일, 세계 제2의 큰 강, 길이 6,400키로, 애굽 강이라고도 부른다(창 15:18).

 

나일강은 근원이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하여 열대 초원을 흐르는 백나일과 에티오피아의 산악의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들이 모여 이루는 청나일이 수단의 카루틈 남방에서 합류하여 이집트의 젖줄이 된다. 여기부터는 전혀 유입되는 물 없이 곧장 지중해 까지 북으로 흘러간다. 아프리카 중부 고원의 봄비는 몇 달 후 이집트를 범람하는 큰 홍수로 변하는데 대개의 홍수는 수해를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나일강 홍수는 7월에서 10월에 걸쳐 이집트의 완만한 사막을 서서히 흘러 가면서 온갖 수목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뭇 짐승들이 서식 할 수 있도록 한다.

수백 Km 를 흘러온 나일강은 카이로 북방에서 둘로 나누어져 나일 델타란 넓은 대평원을 만든다. 이렇게 형성된 땅이 한때는 세계의 곡창이라고 알려진 비옥한 땅인데, 이것은 홍수가 싣고 오는 아프리카 내륙 지방의 부엽토가 서서히 침전 되면서 자연의 퇴비를 깔아주는 결과이다. 이와같이 해마다 부엽토를 더해 가면서 이 비옥한 땅은 검은 색을 띠게 되었고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검은 땅이란 뜻에서 케미(KEMI)라고 불렀다. 이처럼 나일강은 자연의 선물을 남겨 주면서 서서히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약 6500 Km의 장구한 여행을 마친다. 연중 행사처럼 매년 어김없이 범람하여 수해가 아닌 수해를 안겨주는 나일강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모든 것의 근원으로 보았고 또한 숭배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계절은 3계절로 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나일강의 범람과 연관 된 것으로 홍수가 나서 델타 지역이 물에 잠겨 있는 7-10월은 농한기, 물이 빠져나간 11-2월은 농번기, 그리고 3-7월은 추수기이다. 이렇게 수천 년을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을 사람의 힘으로 조종해 보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 되어서 19세기초 케네디 모하멧 알리 (Khedive Mohammed Ali)는 이집트 현대화 작업을 시작하여 나일강을 알렉산드리아의 식수원이 되게 하였고 카이로 북쪽에 갑문장치를 설치하여 많은 농토를 확보하기도 하였고, 1972년에는 아스완 하이 댐을 만들어 내년 범람하던 나일강은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강변의 많은 땅들은 전천후의 농토가 되었다. 그러나 나일강의 선물인 천연 퇴비는 영영 잃어 버리게 되었다.

이집트와 나일강
(1) 문명의 발생

최초의 문명은 큰 강 유역에서 일어났다. 제일 먼저 문명이 일어난 곳은 서 아시아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두 강 유역과 나일 강 유역이었다. 그리고 이보다 늦게 서북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에서도 문명이 일어났고, 동북 아시아에서는 황하 유역에서 문명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4대강 유역에서 문명이 발생한 이유는 인간생활에 유리한 아열대성 기후가 분포하며, 큰 강을 끼고 있어 어로 생활이 가능하였고, 교통도 편리하여 사람이 생활하기에 유리였기 때문이다. 정기적인 강의 범람으로 상류로부터 기름진 흙이 하류로 운반되어 비옥한 옥토가 마련됨으로써, 자연 조건에 지배되는 고대의 농업에 큰 혜택을 주었다. 강의 범람은 인간에게 커다란 시련이 되었으나 이는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극복하는 지혜와 능력을 길러주고, 그러는 가운데서 공동 생활과 도시 국가가 발생하는 기반을 마련하여 문명을 발생시켰다.

(2) 나일강의 혜택

고대의 대하(大河)는 문명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이집트의 경우는 특별하다. 단적으로 말해 나일 강이 없으면 이집트도 없다. 나일 상의 양안에 눈곱만큼 붙어 있는 '그린 벨트'가 이집트인 셈인데, 그 좁은 녹색지대를 조금만 벗어나면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불모의 사막 지대가 펼쳐진다. 게다가 그 양안은 깎아지는 듯한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어서, 다른 대하처럼 크게 범람하지 않는다. 나일 강의 정기적인 범람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온건하고 규칙적이다. 다른 문명권의 대하처럼 대홍수를 일으켜 사람과 가축과 논밭을 무참히 쓸어가거나, 관개가 불가능할 정도로 격심한 가뭄으로 대기근을 일으키는 법도 없다. 오히려 정기적이고 온건한 범람은 매년 상류에서 하류로 비옥한 부식토를 날라준다. 그래서 그들은 치수에 관해서 그리 힘을 쓸 필요가 없었고, 오로지 관개 공사를 통해 나일의 혜택을 누리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또 나일은 수많은 어족과 조류를 이집트인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고왕국 시대 이후의 그림과 조각은 이 풍성한 물고기와 새의 수렵을 묘사하고 있다.

(3) 자연환경으로 인한 폐쇄성

이집트에 있어 나일 강이 주로 경제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면, 전체적인 자연 조건은 문화 전반에 걸쳐 그 성격을 결정하였다. 동서는 불모의 사막, 북쪽은 바다, 남쪽은 누비아의 정글에 둘러싸여 고립된 이집트는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았다. 나일과 태양의 은총은 영원히 보장되어 있었고, 그 주위에는 이집트에 필적하는 민족도 문화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흑토의 나라'라 하고 이집트 이외의 토지를 '적토의 나라'라 하여 경멸했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이 역사의 시작과 함께 민족적인 우월감을 품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는 인류 최고의 중화사상(中華思想)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고립된 지역에서 평화롭게 생활하였고, 초기에 이미 최고의 수준에 달한 문명을 가졌던 이집트가 초기의 문화적 전형을 고스란히 후대에 전승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그러기에 고고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눈에 '이집트적인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이집트적인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어느 단계까지는 이런 것들이 긍적적으로 작용했지만, 나중에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토인비가 말한 것처럼, 문명 발전의 조건은 도전에 대한 응전인 것이다. 이집트 문명 3천년의 이러한 독특한 '수구성'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명의 발전에 대한 유연성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고대 오리엔트 세계에서 이집트는 가장 빨리 개화하여 고도의 문명을 달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항력은 메소포타미아에 비해 훨씬 떨어지게 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는 늘 이질적인 문화와 민족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들이 그 문화를 수용하여, '틀'에 얽매이지 않는 독자적인 문화로 형성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집트의 젖줄 나일강

나일강 이집트에게 나일강은 항상 중요하였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을 휠씬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여기에 삶의 진정한 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매일 태양이 질때는 죽음과 같지 만 다시 태양이 떠오르면 다시 태어나고 삶이 새로워진다. 그것은 강이 매년 생활을 새롭게 하는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이런 자연현상이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에 대한 승리의 관념 을 심어준것 같다. 획일적인 풍경 또한 이집트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과 두개의 제 방 그리고 푸른 경작지가 똑같이 펼쳐져 있었고, 그 뒤에는 사막과 산들이 동서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것은 이집트인들에게 놀라운 대칭과 균형에 대한 감각을 제공하였다. 더욱 이 이 단조로운 풍경과 다른것은 모두 생명으로 가득찬 것으로 간주되어 이집트인들로 하여 금 자연에 대한 토템적 사상을 가지게하였다.

나일강은 근원이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하여 열대 초원을 흐르는 백나일과 에티오피아의 산악의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들이 모여 이루는 청나일이 수단의 카루틈 남방에서 합류하여 이집트의 젖줄이 된다. 여기부터는 전혀 유입되는 물없이 곧장 지중해 까지 북으로 흘러간다.

아프리카 중부 고원의 봄비는 몇 달 후 이집트를 범람하는 큰 홍수로 변하는데 대개의 홍수 는 수해를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나일강 홍수는 7월에서 10월에 걸쳐 이집트의 완만한 사막 을 서서히 흘러 가면서 온갖 수목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뭇 짐승들이 서식 할 수 있도록 한다. 수백 Km 를 흘러온 나일강은 카이로 북방에서 둘로 나누어져 나일 델타란 넓은 대평원을 만든다. 이렇게 형성된 땅이 한때는 세계의 곡창이라고 알려진 비옥한 땅인데, 이것은 홍수 가 싣고 오는 아프리카 내륙 지방의 부엽토가 서서히 침전 되면서 자연의 퇴비를 깔아주는 결과이다. 이와같이 해마다 부엽토를 더해 가면서 이 비옥한 땅은 검은 색을 띠게 되었고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검은 땅이란 뜻에서 케미(KEMI)라고 불렀다. 이처럼 나일강은 자연의 선물을 남겨 주면서 서서히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약 6500 Km의 장구한 여행을 마친다.연중 행사처럼 매년 어김없이 범람하여 수해가 아닌 수해를 안겨주는 나일강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모든 것의 근원으로 보았고 또한 숭배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계절은 3계절로 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나일강의 범람과 연관 된 것으로 홍수가 나서 델타 지역이 물에 잠겨 있 는 7-10월은 농한기, 물이 빠져나간 11-2월은 농번기, 그리고 3-7월은 추수기이다. 이렇게 수천 년을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을 사람의 힘으로 조종해 보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 되어서 19세기초 케네디 모하멧 알리 (Khedive Mohammed Ali)는 이집트 현대화 작 업을 시작하여 나일강을 알렉산드리아의 식수원이 되게 하였고 카이로 북쪽에 갑문장치를 설치하여 많은 농토를 확보하기도 하였고, 1972년에는 아스완 하이 댐을 만들어 매년 범람 하던 나일강은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강변의 많은 땅들은 전천후의 농토가 되었다. 그 러나 나일강의 선물인 천연 퇴비는 영영 잃어 버리게 되었다.

 

수에즈 운하
최초의 운하는 기원전 2100년에 계획되어 네코가 지중해와 연결 공사를 시작하여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중단 하였고 그 후 기원전 500년경 다리우스 1세가 홍해와 대염 호수(Great Bitter Lakes)를 거쳐 부바스티스(Bubastis)의 나일강과 연결하는데 성공 했다. 이 수로는 7세기 아랍의 상인들이 이집트의 농산물을 실어 가는데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백 여년 동안 사용 되다가 회교 내분으로 수로를 이용한 곡물 운반이 중단 되자 운하는 폐기 되었다.

1798년 나폴레옹이 홍해지중해를 연결하는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수석 기사의 계산 착오로 공사가 중단 되었다가, 주 카이로 불란서 영사였던 페르디난드에 의해 1859년 동사가 재개 되었으며, 그로부터 10년 후인 1869년 11월에 총연장 161 Km의 운하가 개통 되었다.

1952년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대통령 압델 나세르에 의해 1956년 7월 수에즈 운하 회사를 국유화 하였고, 기득권을 상실한 영국과 불란서는 군대를 동원하여 강점 하는등 분쟁이 그치지 않았다. 그 후 1967년 6일 전쟁으로 운하가 폐쇄 되었다가, 1973년 사다트 대통령의 시나이 반도 탈환과 더불어, 이 운하는 이집트 정부의 관리하에 폐쇄 8년만인 1975년 재개통 되었다.

하루 평균 100여 척의 선박이 이용하고 있으며 전세계 물동량의 14%가 이 운하를 통과하고 있으며, 통과 소요시간은 약 15시간이 걸린다. 운하의 폭은 200 미터, 평균 수심은 20 미터인데, 교통량이 늘어남에 따라 꾸준한 준설 확장을 계속하고 있고, 현재 운하의 길이는 173 Km에 달한다. 이 운하를 건너 시나이 반도로 들어가는 연결 지점은 4곳의 나루터와 한 개의 해저 터널이 있는데 이 터널은 진입로를 포함하여 총 연장 4 Km이다. 운하의 항구는 홍해쪽이 수에즈 이고 지중해 쪽에는 포트사이드 이다.

 

아스완 댐
이집트의 나일강 하류는 기후가 온난하고 땅이 비옥하여 인근 연안의 어획량이 많아 인류 문명이 시작된 지역이다. 이집트는 나일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면 홍수를 방지하고 하류의 더 많은 농토를 사용할 수 있고 막대한 양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구 소련으로부터 자금과 기술을 지원받아 댐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1960년에 시작하여 1971년에 준공하였다. 댐의 건설로 생겨난 낫세르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넓은 인공호수로써 이집트의 모든 경제력을 투입한 사업이었으며 국력의 상징이 되었다. 높이는 111m이고 낫세르 호수의 길이는 480km이다.

그러나 막상 댐이 완성되고 저수가 시작되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환경 문제가 발생하였다. 호수에는 해충의 범람으로 인해 부근 지역에서는 말라리아와 그 밖의 여러 가지 전염병의 발병율이 크게 높아졌다. 또한 홍수시 상류로부터 내려오던 토사가 더 이상 퇴적되지 않음으로써 하류 지역의 토양이 척박해지고 염분도가 증가하여 농산물 생산이 크게 감소하였다. 또한 바다의 경우 나일강에서 내려오는 영양 물질이 부족하여 물고기의 먹이인 식물성 플랑크톤 양이 줄고 이로 인해 어획량이 크게 감소하였다. 호수에서 많은 양의 물이 증발함으로써 물의 염분도가 높아지게 되었으며, 이곳의 물로 관개되는 토양은 더욱 척박해졌다.

또한 낫세르 호수에 저장된 물의 무게가 인근 지역의 지진 발생을 유발한다고 믿어지고 있는데 실제 1981년에 5.3리히터 강도의 지진이 발생하였다고 한다. 아스완 댐의 건설은 나일강 유역 강우량의 절반 가량을 지하로 스며들게 하거나 대기로 증발하게 함으로써 그 동안의 비옥했던 토양과 풍부했던 어획량 대신 전염병만 크게 증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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