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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명사전  작성일  2008-09-18
 제목  소련(蘇聯, USSR: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
 주제어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소련(蘇聯), 러시아에서는 1917년 10월혁명에 의해 소비에트 정부가 성립되었으며 볼셰비키가 정권을 획득한 직후인 1918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했다.

 

1922년부터 1991년까지 유라시아 대륙 북부에 존재 하였던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로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레닌 시대를 거쳐 1922년 12월 30일 러시아 연방 공화국에 우크라이나·벨로루시·자카프카지예 등 3개국이 가입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이 스탈린에 의해 성립되었다.

1922년 위 3개국이 합류함으로써 소련은 15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다민족 국가가 되었다. 1905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요 시기에 처음 등장한 소비에트는 러시아어로 '평의회'라는 뜻으로, 연방·공화국·지방·시·지구·촌락 수준에서 입법·행정 기능을 수행했다.

 

1980년 후반 고르바초프의 등장으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공화국들의 연방 이탈로 1991년 12월 8일 소련은 정식으로 해체되었다.

 

소련은 러시아 제국의 후신(後身)으로 여겨져 왔다. 1917년 2월의 차르(황제) 퇴위 이후 성립한 임시정부는 점진적인 개혁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 특히 독일과의 전쟁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또한 어린이들이 먹을 우유가 모자를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임시정부에 휴전(休戰)할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7일에 레닌의 지도하에 10월 혁명이 일어났다.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적위군(赤衛軍)을 조직해 러시아 제국(帝國)의 수도인 페트로그라드를 장악했다. 혁명에 반대하는 백위군(白衛軍) 및 외국 열강의 군대에 대항하려고 레온 트로츠키는 적위군을 적군(赤軍)으로 개편했다. 그후 일본을 포함한 열강에 의한 간섭 전쟁과 시베리아 출병, 백군(白軍)과의 내전에 승리했으며, 모든 반대파를 숙청해 러시아에 있어서 볼셰비키의 일당독재 지배를 결정지었다.


이어 1922년 12월의 전연방 소비에트 대회에서 러시아 SFSR, 벨로루시 SSR, 우크라이나 SSR, 자카프카스 SFSR이 연합하여 소비에트 연방의 성립이 선언되었다.

1924년 레닌의 사후(死後) 집권한 이오시프 스탈린은 세계 공산혁명을 주장하는 트로츠키와는 달리 나라안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는 일국사회주의(一國社會主義)를 내세우며, 1928년에는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또한 그 과정에서 트로츠키를 외국으로 추방했고, 반대파를 숙청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스탈린이 숙청한 사람은 1200만 명에 이르렀다고도 하며, 무리한 경제발전계획으로 강제수용된 이들도 많았다.

 

 

소련붕괴

 

이후 2차 대전과 냉전시대를 거치고 1991년 3월 17일 소련의 유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투표자의 76%가 찬성했다. 그 이후 각 공화국에게 대폭 권한을 양도하는 신연방 조약(新聯邦條約)이 조인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혁노선에 반대하는 보수파는 이에 반발해 8월에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개혁파와 소련 국민, 서방 각국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이어 같은 해 9월 최고 소비에트는 발트 3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같은 해 12월 러시아 SFSR, 우크라이나 SSR, 벨로루시 SSR은 독립국가연합(CIS)의 창설에 합의하고, 다른 소련 가맹 공화국들도 CIS에 연달아 가입했기 때문에, 12월 25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사임하고, 소련은 해체되었다.

연방 해체 후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발트3국을 제외한 12개 독립공화국이 1992년 1월 1일을 기해 독립국가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CIS)을 형성함으로써 소련은 정식으로 해체되었다.

 

1991년 12월 소련연방의 붕괴는 기존의 국제질서를 변화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다. 소련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에 의하여 소련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한 이래 사회주의국가들의 종주국으로서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하여 왔다. 또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질서 하에서는 동구진영의 대표자요 관리자였다. 따라서 소련의 멸망은 사회주의운동이라는 대실험의 실패이며, 국제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더불어 동서 대결구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련은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 정형화된 공산당 일당독재와 국가소유에 바탕을 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 아래서 사회주의 실천운동을 전개해 왔는데, 산업화 초기에 높은 효율성을 자랑하기도 하였지만 과학기술의 전개에 따른 생산력의 증가와 생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도 못한 채 그 한계를 드러내었다. 이러한 상황은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던 1985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이에, 그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였다. 그 결과는 소련의 붕괴였다. 하지만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련의 붕괴를 목적으로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체제의 연장을 꾀하였고 개혁에 따른 효율성의 증대만을 추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련은 결국 공산당의 해체와 소련연방의 와해를 맞이했다.

소련의 붕괴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경제정책의 실패이다. 그 중 스탈린이 시행했던 중앙계획경제는 신중하고 과학적인 입안이 없이 채택한 정치적 처방전이었기 때문에 더욱 실패의 위험이 클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 공장 지배인등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자율권을 대부분 상실했으며 모든 재산들은 국유화되어 중앙계획체제하에 들어갔다. 그 후 공업에 우선적으로 자원을 할당하고 생필품 생산에 매우 낮은 투자 순위를 두었다. 이것은 군사우선주의를 반영한 것으로 군사력건설에 기초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공업중심의 불균형적인 경제정책은 점차 둔화현상을 보이다 가속화되어 어느새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주민들의 생필품 생산에 대한 낮은 투자는 점차적으로 만연한 생필품 부족현상을 일으켜 체제에 대한 불평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대외정책 수단으로 군사력에 의존하였고 외국과의 과도한 군비경쟁은 결국 국내경제의 침체를 가져왔고 과도한 군사비지출이 소련경제위기의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농업적인 측면에서는 집단농장과 같은 정책은 현실과 이데올로기 간의 괴리로 소련경제위기의 또 다른 이유가 된 것이다.

 

 

>> 목차고리 : 세계 > 아시아 > 독립국가연합(CIS:구 소련지역) > 러시아

>> 연결고리 : 러시아, 정치가 /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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