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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09
 제목  윤옥경(1905. 1. 7~1951. 9.15)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장로교]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윤옥경 목사는 1906년 1월 7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에서 윤성찬 장로와 고신덕 권사 사이에서 3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6년 평양신학교 졸업(31회) 졸업하였고, 간동교회 담임. 무진교회 개척 담임하였다.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투옥되기도 했으며 8·15 해방 후에는 공산당에 의해 네 차례나 검거되었다. 한국전쟁 때 퇴각하는 공산군이 감옥을 폭파하여1951년 9월 15일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일본학교에 안보내고 서당에보냈다. 윤옥경은 어릴 때에 사서삼경을 읽었으며 어려서부터 웅변을 좋아했고, 자작한 동요 동시를 찬송가 곡에 붙혀서 즐겨불렀다. 1919 기미년 만세운동시에 사랑채에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애국가와 한글을 가르치다가 옥고를 치루었다.


1931년 평남 대동군 고평면 소재 평신설립자 마포삼열목사가 설립한 신망학교 4대 교장으로 부임하고 5년간 민족얼을 심는 작업을 하다가 1935년 일경에 체포되면서 교장직에서 추방되었다. 모진옥고를 치루고 귀가해 보니 결혼 10년만에 얻은 큰아들 창수가 일경에 맞아 숨을 거두었고 둘째 윤인수도 고문으로 병약한 몸이었다.
윤옥경은 고문으로 몸이 불편해 글을 써서 민족정기를 드높였다. 그의 저작집 10권은 도꾜를 중심으로 서점에 깔릴정도로 정열적이었다.


1936년 평양신학교를 31회로 졸업한 그는 평양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조사로 시무한바 있는 간동교회 담임으로 부임했으나 안일한 목회를 할 수 없었다. 그는 교회에 야학당을 마련하고 민족의 뿌리와 반만년 우리 역사를 가르치고 백의민족의 긍지를 심어주었으나 1년만에 종강할 수 밖에 없었다.


출옥해보니 일제의 사주를 받은 간동교회는 그를 배척하였다. 병든 몸을 치료하고 평양에서 20리 떨어진 대동군 윤리면 무진리에 소재한 무진교회로 부임했다. 거기서도 야학을 개설 민족사상을 고취하다가 또다시 투옥되었었다.
윤옥경은1년을 편안히 다리벗고 자질 못했다.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하였고 신탁통치 반대 및 공산주의 반대운동을 펼쳤다. 강약욱이 감옥에서 빼내고 회유했으나 기독교도연맹에 가입을 거부했다. 윤목사는 악수하려는 강목사의 손에서 손을 빼고 휘적휘적 걷기 시작했다. 강목사는 윤목사 뒤에서 배은망덕자라고 독한 말을 했다.
1950년 6.25가 터지자 숨어서 기도하며 지내던 윤목사는 북진하는 국군의 소식과 함께 지하에서 나왔다.
그의 아들 윤인수는 공산군에 체포되어 고문끝에 실명했다. 목사의 아들이니까 목사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하고 실명을 시켰던 것이다.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다시 평양이 공산군의 수중에 들자 피란하는 교인들이 억지로 리어커에 태워 월남 인천까지 왔으나 감옥에서 얻으 병이 악화되어 1951년 끝내 숨을 거두었다. 아들 윤인수는 실명했으나 목회자가 되어 2007년 현재까지도 어버지가 인천에와서 개척한 무진교회를 담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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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고리 : 대한민국, 한국전쟁장로교, 목사,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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