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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9-10-15
 제목  브루노 발터 슐레징어(Bruno Walter Schlesinger, 1876. 9.15~1962. 2.17)
 주제어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음악가] [지휘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인 지휘자이며 작곡가이다. 그는 1876년 9월 15일 베를린에서 실크 상점 일을 하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모두 유태인이었다. 1933년에서 1939년까지 세계 곳곳들 돌아다니다가 1939년 미국에 정착한다. 1896년부터 발터라는 성을 썼으며 1911년 오스트리아 시민이 된다.

 

그의 어머니가 공부했던 슈테른 음악원에서 하인리히 에리히에게 피아노를, 로베르트 라데케에게 작곡을 배운 뒤 10살 때 공개 연주회를 가졌고, 13살엔 이미 베를린 필 하모니와 협연하는 재능을 보였다. 그의 처음 지망은 피아니스트가 되었는 것이었고, 실제로 피아니스트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거장 한스 폰 뵐로가 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었다고 회고한다. 1894년 18살 때 쾰른 시립 가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하고, 이듬해 함부르크 시립 가극장 연습 지휘자가 된 것을 계기로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와의 인연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브레슬라우, 프레스부르크, 리가의 가극장 자휘자를 거쳐 1900년 베를린 궁정 가극장 부지휘자가 되었고, 1901년부터 1912년까지 빈궁정 가극장 악장으로 지내면서 음악 총감독 구스타프 말러, 펠릭스 바인가르트너 밑에서 가극장과 빈 필하모니의 지휘를 맡았다.

 

말러와의 만남은 발터의 인생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말러가 함부르크 가극장의 지휘자로 있는 동안 발터는 부지휘자로 일하기 위해 말러를 처음 만나게 된다. 말러는 그에게 '당신은 피아노를 잘 치나요' 하고 물었고, 이에 답해 발터는 때 마침 연습 중에 있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피아노로 연주해 답해주었다. 며칠 후 말러는 발터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고, 발터는 용기를 내 '당신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자 이번엔 말러가 피아노에 앉아 자신의 교향곡1번을 피아노로 연주해 주었다. 이날 이후 발터는 말러 예술의 최고 해석자가 되었고, 말러는 말년에 이를 때까지 발터를 끔찍이 아껴 주었다. 발터의 본명은 브루노 발터 슐레징거였는데, 말러를 따라 빈 필의 부지휘자로 가게 되면서(1911년) 말러의 충고로 슐레징거라는 유태계 성을 버렸고, 국적도 오스트리아로 변경했다. 웬만하면 홀로서기를 해도 좋았을 때가 되어서도 그는 끝까지 말러를 진심어린 애정과 존경으로 대했고, 말러의 죽음 뒤에도 평생토록 그를 가슴에 새겨두고 있었다.

 

1913년 뮌헨 오페라극장, 1925년 베를린 시립오페라극장을 맡고, 1929년엔 푸르트벵글러의 후임으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가 되면서 브루노 발터는 독일에서도 가장 인정받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시대는 그에게 시련을 던진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면서 유태인인 그의 활동을 금지시켜 버린 것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독일에서의 활동을 접고, 1936년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음악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이 무렵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전통을 일구는 한편 빈 필하모니를 계속 지휘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합병되면서 그마저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쫓기는 망명자의 몸이 되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지에서 지휘 활동을 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스위스에 있었지만 결국 오토 클렘페러,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아르투르 토스카니니 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1930년부터 1941년까지 10년간 2만 5천명의 예술가, 음악가, 작가, 과학자, 인문학자들이 나치를 피해 독일과 유럽을 탈출해 미국을 찾았다. 또 몇 천명은 영국을 마지막 피난처로 택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1956년 여든 살이 된 발터는 심장에 문제가 생겨 공식적인 지휘 활동을 중지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그러나 때마침 스테레오 녹음 방식이 개발되었고, 당시 CBS레코드는 그에게 새 녹음을 제안해 왔다. 그는 거절했으나 몇 번의 거듭된 간청 끝에 브루노 발터는 다시 지휘봉을 잡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교향악단이 바로 콜롬비아 교향악단(1957년)이었다. 5년 후 죽기 얼마전 발터는 스스로의 생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일생을 통해 음악이라는 고마운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럼으로 내 인생을 돌이켜볼 때 나는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1962년 2월 17일 심장마비로 85년의 생애를 마감했다.

 

발터는 초창기에만 작품을 썼다. 나중에는 작곡을 포기하고 지휘에만 전념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 교향곡 제1번 D단조
  • 교향곡 제2번
  • 교향적 환상곡
  • 현악 사중주
  • 피아노 오중주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장조
  • 노래
  • 합창곡

 

연표

 

1876년 9월 15일 독일 베를린에서 출생
1886년 슈테른 음악원(현재 베를린 음대)에서 피아노 공부 시작
1889년 열세 살의 나이로 베를린 필과 피아노 협연
1893년 쾰른 시립 가극장 지휘자 취임
1895년 말러가 지휘하는 함부르크 국립가극장의 부지휘자 역임
1913년 뮌헨 가극장 음악 감독 취임
1925년 베를린 시립 가극장 음악 감독
1929년 푸르트벵글러의 후임으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역임
1933년 나치를 피해 빈으로 망명
1936년 빈국립 가극장 음악감독 취임
1939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필하모닉 등 지휘
1955년 80살의 나이로 은퇴
1957년 콜롬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발족과 함께 지휘대에 복귀
1962년 2월 17일 심장마비로 타계

 

<조희창 지음/ 전설 속의 거장에서>

 

 

>> 목차고리 : 세계 > 아메리카 > 미국 

                                                       > 뉴욕필하모닉

>> 연결고리 : 미국, 음악가, 작곡가,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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