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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10-29
 제목  이동휘(李東輝, 1873. 6.20~1935. 1.31)
 주제어  [독립운동가] [국무총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한국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이다. 이명으로 誠參·誠齊·猩濟·誠齋·대자유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함남 단천(端川) 출생으로 아전 이승교(李承橋)의 아들로 1891년경 18세 때 군수의 시중을 드는 통인(通人)으로 있다가 상경하여 1895년 한성무관학교(漢城武官學校)에 입학·수학한 뒤 육군 참령(參領)까지 진급하였으며, 1902년부터는 강화도(江華島) 진위대장(鎭衛隊長)으로 활동하였다. 1906년 계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군직(軍職)을 사임한 뒤, 강화도에 보창학교(普昌學校)를 설립하는 한편,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의 결성에도 관여하는 등 민족주의 교육과 구국계몽운동에 적극 노력하였다.


1907년 광무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의 해산으로 대한제국이 준식민지화하자, 군동지였던 연기우(延基羽)·김동수(金東洙) 등과 함께 강화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투쟁할 것을 모의하였으나, 광무황제의 해아밀사사건(海牙密使事件)에 관련된 혐의로 일경에 피체·유배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미국인 선교사 벙커의 주선으로 그 해 10월 석방되었다.
석방 후 1908년 1월경 서북학회(西北學會)를 창립하는데 참여하는 한편, 이동녕(李東寧)·안창호(安昌浩)·양기탁(梁起鐸)·이갑(李甲)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계몽운동과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911년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함경도에서 또 다시 피체되어 황해도 무의도에 3년간 유배되었다.


1912년 가을 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유배지를 탈출하여 북간도(北間島)로 망명한 그는 국자가(局子街) 소영자(小營子)에서 김립(金立)·계봉우(桂奉瑀) 등과 더불어 광성학교(光成學校)를 설립하여 지속적으로 민족주의 교육활동을 전개하면서, 구례선(具禮先) 목사의 도움으로 북간도 전역에 기독교 선교사업을 진흥시키기도 하였다.
1913년 러시아 연해주(沿海州)로 거점을 옮긴 후,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新韓村)을 중심으로 조직된 권업회(勸業會)에 가담하여 이상설(李相卨)·이갑(李甲)·신채호(申采浩)·정재관(鄭在寬) 등과 함께 '독립전쟁론'에 입각한 민족해방투쟁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일제(日帝)와 연대한 러시아가 재로한인(在露韓人)의 민족운동을 탄압하자, 이종호(李鍾浩) 등과 더불어 중국 왕청현(汪淸縣) 라자우거의 한인촌으로 거점을 옮겨 대전무관학교(大甸武官學校)를 설립하고 독립군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듬해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관헌의 탄압으로 무관학교는 해체되고, 그 또한 일제 관헌에게 쫓기는 몸이 되어 왕청현 하마탕의 한인촌에 숨어 요양하였다.


1917년 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자,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간 그는 볼셰비키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7월 초 독일(獨逸) 밀정으로 오인되어 러시아 임시정부 헌병대에 피체되어 수감되었다. 그러나 1918년 초 이 지역을 장악한 볼셰비키 가운데 한국인 출신으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하바로프스크시 책임비서, 원동소비에트 집행위원회 외교부장이었던 여성혁명가 김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스탄케비치의 도움으로 풀려나 하바로프스크로 방송(放送)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한국민족운동에 사회주의를 접목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18년 4월 28일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사회당(韓人社會黨)을 조직하고 연해주(沿海州)에서 한인적위군(韓人赤衛軍)을 편성하는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 통합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총리로 임명되어 레닌정부로부터 자금지원 약속과 무장투쟁노선을 채택하여 임시정부의 독립운동노선을 강화하는 데에 노력하였다. 1921년 임시정부를 탈퇴한 이후 상해에서 고려공산당을 창당하고 극동인민대표대회에 참여하여 활동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던 중 1935년 1월 62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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