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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6-26
 제목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제어  상해임시정부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는 1919년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상하이(상해)(上海)에 설립한 망명정부이다. 대한민국 헌법 서문[1]에서는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승만, 여운형, 김구 등에 의해 설립되었다.


설립의 경위
1919년 3.1 독립운동 후 독립운동을 계속 확대해 나가기 위해 국내외에서 정부수립계획이 진행되었다. 당시 상하이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결집되어 있었으며, 1919년 4월 10일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 김신부로에서 여러 지역의 교포 1천여명과 신한청년당에서 주축이되어 29인의 임시의정원 제헌의원이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그 후 22일엔 2차의정원 의원 57인이 참석하여 국내의 8도 대표와 러시아령, 중국령, 미국령 등 3개 지방대표가 각각 지방선거회를 통해 의정원 의원을 선출했다. 의장에는 이동녕, 부의장에는 손정도를 선출했다. 의정원은 법률안 의결, 임시대통령 선출 등 국회와 같은 기능을 했다. 의정원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를 골간으로 한 임시헌장을 채택한 뒤 선거를 통해 국무원을 구성했다. 행정수반인 국무총리에 이승만을 추대하고 내무총장에 안창호, 외무총장에 김규식, 군무총장에 이동휘, 재무총장에 최재형, 법무총장에 이시영, 교통총장에 문창범 등 6부의 총장을 임명한 뒤 4월 13일 정부수립을 선포했다.[2] 같은 시기에 당시의 경성에서 한성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시베리아(대한국민의회)에서도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나 결국은 상해 임시정부에 통합되었다.


설립자
조동호(趙東祜)*, 여운형(呂運亨)*, 손정도(孫貞道)*, 조소앙(趙素昂)*, 김철(金 澈)*, 선우혁(鮮于爀)*, 한진교(韓鎭敎)*, 신석우(申錫雨)*, 이광수(李光洙)*, 현순(玄 楯), 신익희(申翼熙), 조성환(曹成煥), 이광(李 光), 최근우(崔謹愚), 백남칠(白南七) , 김대지(金大地), 남형우(南亨祐), 이회영(李會榮 ), 이시영(李始榮), 이동녕(李東寧), 조완구(趙琬九), 신채호(申采浩), 진희창(秦熙昌), 신철(申 鐵), 이영근(李渶根), 조동진(趙東珍), 여운홍(呂運弘), 현장운(玄彰運), 김동삼(金東三) 등 29인이었다.
(* 표는 신한청년당원)


역대 수반
이승만 (1919년 - 1925년)
박은식 (1925년)
이상룡 (1925년 - 1926년)
홍진 (1926년)
이동녕 (1926년 - 1927년)
김구 (1927년 - 1948년)

 

활동
1919년 6월 내무총장으로 안창호가 취임하여 연통제(국내의 비밀연락망) 조직, 기관지 독립신문 발행, 각종 외교 선전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시베리아파와 상해파의 대립, 이승만안창호의 대립등, 지도층간의 대립에 의해 혼란에 빠지고, 1923년 국민대표회가 결렬되고난 이후에는 급속히 세력이 약해졌다. 1925년 이승만 임시정부 대통령이 탄핵당한 이후, 김구가 지도자로 취임한다.김구는 1932년 수차례의 항일 무력 저항 사건을 일으키고 1933년에는 장제스과 항일전선협력에 합의한다. 그러나 일본군이 중국을 침공함과 함께 임시정부는 상해를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 1940년에는 충칭(重慶)으로 그 본거지를 옮기게 된다. 그곳에서 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하고, 제 2차 세계대전이 태평양 전선에서 확대된 1941년 12월 9일에는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발표하지만, 본국 탈환 작전의 준비중에 일본의 항복을 맞이하게 된다.


결과
한반도의 남부에 진주한 미군정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임시정부는 사실상 해체되게 된다.

임시정부의 법통에 대해선 임시정부 내에서도 우파와 좌파 간에 격렬한 대립이 있었다. 1945년 8월 15일부터 좌파는 국내외 단체와 민중의 기초 위에 임시정부를 다시 세우자는 취지에서 임시정부의 총사직을 요구한 반면, 한독당 측은 임시정부를 가지고 귀국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후 대한민국 수립과정에서 조선총독부와 미군정에서 활동한 친일파들이 "실세"로 그대로 남았고, 임시정부의 통일노선이 제1공화국에 의해 완전히 무시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것과는 달리 임시정부의 계승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출처 : 위키사전 / 1919년 4월 10일~: 이이화, 《한국사이야기21. 해방 그 날이 오면》(한길사, 2004)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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