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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15
 제목  이도종(1891.? ~1948. 4. 3)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장로교]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891년 제주도에서 출생했으며, 숭실학교를 거쳐 1926년 평양신학교(20회)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전도 사업에 종사하였다. 1948년 4·3사건이 일어난 그 해 6월 어느 날 화순교회 순방을 위해 나섰다가 공비의 돌에 맞아 생매장되었다. 4·3사건으로 허성재 장로와 15명의순교자가 더 있다.

 

이도종은 부농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한문을 읽고 선비행세를 하였다. 그가 17세되던 해인 1908년 제주도 선교사 이기풍목사를 만나 예수를 믿었다. 학구열이 높은 그는 이기풍 목사의 소개장을 들고 평양에 가서 숭실중학교에 입학 우등생으로 졸업하고 평양신학교에 입학 1926년에 20회로 졸업 1927년 봄 전남노회에서 안수받은 제주도가 배출한 제주도출신 첫 교역자가 되었다. 광주교회에서 청빙을 했으나 그는 모든 사람들이 소원하는 육지에 가기를 사양하고
제주도 순회목사가 되어 섬 전체를 다니며 개척교회를 설립하고 일제하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슬기롭게 잘 극복해 나가며 목회를 했다.
일제의 교회 탄압으로 교역자들 거의가 제주를 떠나서 교역자가 거의 없어 1945년 해방 후에도 이목사는 새벽부터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인도해주다 보면 밤 늦은 시간에야 귀가했다.
1945년 해방 후 당시 제주도에 있었던 조목사와 상의해서 제주를 양분했는데 조목사는 남제주를 이목사는 북제주를 분담하게 되었다.


제주는 본래 우상이 심한 곳으로 이기풍 목사도 몇차레 동리 청년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한 곳이고 대원군 시절 천주교와 도민들간에 충돌로 천주교인 600명 도민 200명이 죽어갔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기독교는 제주도민들에게 기분 나쁜 이미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1948년 한라산에서 공산 무장 폭도(남노당)가 난을 일으킨 제주도 4.3사건시에 미국인에 의해 전해진 기독교의 목사라면 미국의 스파이라는 명목으로 폭도들의 손에 붙들려 생매장 당했다.
해방의 혼란기를 틈타 조직을 확대하던 남노당은 국가 질서가 정돈되자 설땅을 잃고 제주도로 몰려가 북한 노동당과 연락을 취하면서 반정부 민중봉기를 꾀했다.


정부도 난을 평정하기 위하여 경찰관을 파견했는데 그들은 양민과 폭도를 구분하지 낳고 폭압적인 방법으로 제압하여 민중의 반감을 샀다. 이같은 상황에서 폭도들은 이도종 목사를 미국인의 스파이로 보고 생매장 한 것이다. 이목사는 슬프게도 동족에게 잡혀 그것도 그가 목숨바쳐 사랑한 고향 사람들의 손에 처참하게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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