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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9-23
 제목  프란체스코(Francesco d'Assisi(1182~1226.10. 3)
 주제어  [프랑스] 지오반니 베르나르도네 [수도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로마 가톨릭의 수도사이다. 13세기 초에 프란체스코회(프란체스코 수도회) 설립으로 세속화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개혁 운동을 이끈 교회개혁가이기도 하다. 그는 로마 가톨릭 이외의 그리스도교 교파들에서도 존경을 받아서, 대한 성공회의 수도원 중에도 성 프란시스 수도회라는 성공회수도원이 있다. 로마 가톨릭의 성인. 축일은 10월 4일. 흔히 갈색 수도복에 밧줄 허리띠를 맨 모습으로 그려진다. 상징물은 비둘기·5개의 성흔·프란체스코회 수도복·십자가·해골이다.

 

그의 본명은 지오반니 베르나르도네(Giovanni Bernardone)이다. 1182년 페루지아와 풀리뇨 사이에 있는 중앙 이탈리아의 한 소읍, 곧 아시시의 한 소읍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그의 버지 피에트르는 그에게 훌륭한 교육을 시켰다. '프란체스코(프랑스 사람)'라는 이름은 얼마 안되어 그의 세례명을 대신해서 사용된 이름으로서 그의 아버지가 프랑스의 여행으로부터 아시시로 돌아오면서 그의 출생 후 즉시 붙여준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설명에 의하면 그 이름은 그가 프랑스어를 일찍 터득했다는 점에 기인한다. 프란체스코는 그의 아버지의 사업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 또래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쾌활하게 자랐다. 1201년에 그는 페루지아에 대한 군사원정에 참전을 하였다가 포로로 잡혀 1년동안 포로생활을 했다. 아마도 그가 보다 심각한 사상들에로 전향을 하게 된 것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일설에 그가 그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멀리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결혼할 의사가 없느냐고 질문을 하였다. 이에대해 그는 `맞아 자네들이 이제까지 보아온 그 어느 신부보다도 아름다운 신부이지`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는 성모 마리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후에 그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었다.


그는 한적한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님께 그를 깨우쳐 주실 것을 간구하였다. 점차로 그는 아시시의 근방에 있는 나환자촌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했으며, 로마에 순례여행을 다녀 온 후에 한 환상을 통하여 타락에 빠져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시키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는 이것을 아시시 부근에 있는 다미아누스의 퇴락한 교회와 관련하여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말과 그의 아버지의 가게에서 가져 온 몇벌의 의복을 팔아서 그 돈을 사제에게 갖다 주면서 위와 같은 일을 위해서 사용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에 피에트르는 대단히 분개하여 처음에는 위협을 가하다가 나중에는 신체적인 제재를 가하면서 그를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노력을 하였다. 주교 앞에서 마지막 면담을 가진 후 프란체스코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의복마저도 물리치면서 아버지로부터 기대되는 모든 것을 다 포기 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얼마 동안 아시시 주변에 있는 야산에서 집없이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시 읍내로 돌아 온 그는 거기서 2년을 지내면서 몇몇 퇴락한 교회들을 보수하였다. 그 중에는 읍 가까이에 있는 조그마한 마리아 예배당이 있었는데 이곳은 그가 즐겨 거하는 곳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는 회개 체험을 통하여 회개 운동에 전적으로 투신하게 되었다. 그의 회개 생활을 함께 하려고 형제들이 모여들었을 때, 그는 곧 교황청의 인가를 요청하여, 1210년에 생활 양식에 대해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구두 인준을 받았다. 점점 형제들의 수효가 증가함에 따라 프란치스꼬는 자신이 형제들의 유일한 생활 규범이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인준받지 못한 두 개의 회칙에 이어 최종적으로 회칙을 작성하여, 1223년 교황 호노리오 3세로부터 인준을 받았다.

프란치스코는 회교도들에게 복음을 설교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형제들의 수효가 불어나 3,000여 명이 참석한 1219년 돗자리 총회에서 새로운 선교단의 파견 결정을 하였고, 프란치스코 스스로 회교도의 술탄을 만나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평화를 전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선교 여행과 1220년 모로코 마라께스에서의 베라르도와 동료들의 순교 소식의 결과로써 1221년 회칙 안에 수도회 회칙으로는 최초로 사라센인들과 다른 비신자들 가운데 가는 형제들에 대한 내용을 등장시켰다.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성당에서 기도하던 중에 "프란체스코야,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실제로 성당을 수리하였고, 이후 교회 재건에 힘쓰면서 기도와 보속의 삶에 헌신하게된다.

1209년 프란치스코는 자기를 따르는 동료들의 생활이 교회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쓴 간단한 회칙을 교황 인노첸시오 3세로부터 구두로 인준받게 되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평신도들을 위해 후에 "3회"라고 불리는 재속프란체스코회를 만들었으며, 그들에게 적합한 생활양식을 주어 실천하게 했다.

1212년 프란치스코는 자기를 따르려는 여성들을 위해 "제2호", 즉 가난한 부인들의 회. 혹은 가난한 글라라회를 만들었다. 그의 기도생활과 선교활동은 풍성한 열매를 맺어 많은 사람들이 감화되었고, 특히 모든 자연과의 교감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성인의 놀라운 보편적 형제애를 보여주고 있다.(태양의 노래)

프란체스코는 1213년 모로코 선교를 시도하였고, 이어서 시리아아프리카에도 선교사로 가기를 원했지만 파선과 질병으로 모두 좌절되었으며,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그들을 찾아갈 적이 있을 정도로 선교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러다가 1219년에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로 갔다가 술탄 말렉크 알 카멜을 만나 십자군 전쟁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한 대화를 시도했으나, 포로 신세가 되었으며 술탄을 개종시키려는 시도를 했었다. 그 뒤 1220년에 예루살렘 순례를 하고 시리아까지 선교 활동을 벌였는데 이로써 예루살렘에 작은형제회가 살기 시작하였다.

1215년 11월에 프란체스코는 교회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 중의 하나인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프란체스코는 또다른 위대한 수도회의 창설자인 도미니코를 만난 것은 이 때였을 것이다. 이 공의회는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새롭게 창설된 수도회들의 회칙을 승인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교황이 이미 1209년에 구도로 인준해 주었기 때문에, 1223년 회칙을 승인받게 되었다.

 

1226년 10월 3일 토요일 해질 무렵에 프란체스코는 동료 수도자들에게 요한 복음서의 수난기를 읽어달라고 청하고 나서 시편 141편을 기도한 후에 “어느 누구도 죽음의 포옹에서 달아날 수 없습니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2년 뒤 1228년 7월 16일 프란체스코는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성 프란체스코의 유해는 성 조르지오 성당에 잠시 묻혔다가, 1230년에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으로 이장되었다. 1939년 프란체스코는 이탈리아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되었고, 1980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생태학자들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주여,나를 평화의 도구로 삼아 주소서’라는 기도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는 2000년 기독교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그의 거룩한 성품과 복음을 철저히 따른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본받으려 했던 참 제자의 길이었다.

그의 영성은 십자가의 신비의 영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고난과 가난을 자청했던 그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입은 상처가
자신의 몸에 그대로 나타나는 ‘성흔’을 받기까지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뤘다.

프란체스코가 태어난 해가 1181년인지 1182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체스코(본명은 지오반니
디 베르난도네)는 젊은 시절에는 기사가 되길 꿈꾸며 인생을 즐겁게 보냈다.

하지만 전쟁에서 포로가 되고 병중에 신음하면서 그는 참되신 유일한 왕 그리스도의
기사가 되어 ‘가난양(孃)’을 섬기기로 서원한다.
가난을 기사의 연모와 충성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복음의 말씀에 점점 몰두된 이 청년은 어느날 기도하던 중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고 그 환상에 따라
복음의 말씀 그대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제자의 삶을 살겠다고 헌신하게 된다.

그는 평생 가난한 자, 병든 자와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어느 날 한센병 환자를 만나 그를 주님의 자비와 은혜로 끌어안고 입맞추는 가운데 사랑의 감미로움을 체험하고 세속을 떠나 사제의 삶을 살 것을 결심한다.

당시 교회는 중세의 호화로운 세속적 지배와 물질적 탐욕 속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주님은 프란체스코에게 “내 집(교회)을 보수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처음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순종해 한 교회를 보수했지만 그 뒤 그 명령의 품은 뜻을 따라 타락한 교회 전체를 정화,개혁하는 사명을 감당했다.

프란체스코는 몇 명의 제자와 함께 수도회를 시작했다.
그 수도회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말씀을 그대로 엄격히 지켰다.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동냥하고
또 손수 일을 하면서 평화의 복음을 전했다.
전 유럽에서 수많은 형제들이 그를 찾아와 오늘날 ‘작은 형제 수도회’로 이어지고 있다.

프란체스코 생애의 절정을 이룬 십자가의 신비체험은 1224년 9월 라 베르나 산에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와 명상에 몰두하던 중 일어났다.
9월14일 그는 하늘이 열리며 십자가의 형태로 된,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천사의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 찬란한 환상을 보는 중에 그의 손발과 옆구리에 십자가의 못자국과 창자국이 생겼는데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의 상처 흔적이 그에게 각인된 것이었다.

말년에 이르러 그의 제자들이 수도회의 이상을 오해하고 현실과 타협하게 된 것은 그가 겪은 가장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는 그러한 고난을 승화시키면서 거룩한 죽음을 맞이했다.

프란체스코는 우리에게 위대한 영성의 유산을 남겨놓았다.
완전한 사랑의 거룩한 길로 우리를 부르신 예수는 가난한 마음과 온유, 화평, 순결과 헌신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도록 하셨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순례자로 복음 때문에 핍박과 환난을 겪으면서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세상에 대한 집착과 탐욕과 분노, 교만, 부정 같은 정욕의 노예로 남아있는 한 교회는 청빈과 고난속에 숨겨진 순결과 거룩함의 소명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거룩한 교회의 회복이야말로 참된 개혁의 이상이다.
프란체스코는 그것이 몽상이 아니라 현실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프란체스코는 철저히 가난속에 자신을 비우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겸비하고 온유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루는 복음적 삶을 살았다.
세상과 타협해 성공하고 지배하는 대신 박해를 받을지라도 가난과 고난속에서 사랑과 자비와 신뢰의 누룩이 됨으로써 세상의 가치를 뒤집고 성화된 삶의 빛을 발하는 것이 십자가의 영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프란체스코가 물질세계를 멸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온 우주를 형제애와 우정 속에 품었다.

해와 달을 형제 자매로 부르며 하나님의 축복 속에 찬양으로 화답한 아름다운 시인이기도 했다.
이는 초대교회 사막의 교부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낙원 회복의 영성과 같은 극치의 영성이다.

우리가 프란체스코를 평화의 사도로 부르는 것도 그에게서 죄와 타락으로 인한 파괴, 갈등, 분열을 사랑과 평화로
치유해 일치와 조화 속에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코가 보여준 맑은 영성의 샘을 되찾아 우리의 혼탁한 심령과 세속화된 교회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오늘 그의 형제된 우리의 임무일 것이다.

이후정 <감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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