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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6-12-26
 제목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 9. 7~1866. 9. 2)
 주제어  [내한 선교사] [한국 교회사] 런던선교회 토마스 선교사 최난헌 [순교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한국 개교사상 최초의 순교자는 대동강 쑥섬에서 죽은 토마스 목사이다. 토마스 목사는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 어머니 메리 사이에 출생하였다. 그는 런던대학을 졸업하고 아내와 같이 런던 선교회 목사로 상해에 왔다. 그는 상해에서 부인과 사별하고 런던에서 상해까지 같이 배를 타고 상해에서 처음 같이 지냈던 지부에 있는 스코트랜드 장로교 선교사 윌리암슨를 찾아가 여기에 온 캐톨릭 신자인 한인 2명과 사귀어 한국어를 익혔다.

 

1865년 4개월 동안 약 2천 마일이나 조선연안을 예비 탐사하였다. 그는 김자평 우문태의 안내로 9월 13일 한국에 도착하였는데 소래 해변에 도착하였다가 옹진 해변 龍湖島 부근인 紫羅里에 도착 하였으나 파선이 되어 북경으로 돌아 갔다. 그는 북경에서 조선 사신을 만나 성경을 나누어 주었다. 1866년 병인양요시 로즈 함대를 타고 한국으로 오려다가 영국인 선원 호가스의 알선으로 제너럴셔먼호를 승선하여 대동강 까지 왔다.

 

장사포 부근에 태평장이 열렸는데 홍신길 등 어린 소년 3명이 토마스 목사에게 가서 과자와 성경책을 얻고 감자를 구경하고 서당 훈장 배측천에게 성격책을 자랑삼아 보여 주었다. 훈장은 소리치면서 성경책을 강물에 버리라고 호통을 쳤다. 숙개 마을에 사는 지달해는 8명의 주민을 데리고 토마스 목사에게 갔다. 토마스 목사는 신교 목사임을 밝히고 빅토리아여왕상이 그려진 은화를 선물로 받았는데 이때 주민들은 은화의 여왕상이 마리아상이라고 착각하였다.토마스 목사는 석호정에 정박하였을 때 <진리이지>를 김영섭에게 주었는데 김영섭은 이 책을 보고 기독교의 진리를 깨달아 아들 김종권 조카 김성집에게 전도하였다. 진리이지는 김종권이 보관하여 왔으나 1823년 홍수로 잃어버리고 말았다. 제너럴 셔먼호가 불이 탈 때 토마스 목사는 퇴교 박춘권에 의하여 대동강 쑥섬에서 살해되었다. 박춘권은 나중에 전도사가 되었다.


대원군 집권 3년인 1866년 병인년 우리나라 교회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새해 벽두부터 나라안의 천주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병인박해가 일어났고 곧이어 병인양요까지 치뤘으니 외세에 대한 조선의 쇄국정책은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같은해 8월 평양의 대동강에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나타났는데 이 배에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후원을 받은 로버트 토마스라는 선교사가 통역관으로 동승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한국 개신교의 첫 순교의 피를 흘린 주인공이다.

1840년,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토마스. 어려서부터 선교사에 대한 소망이 남달랐던 그는 드디어, 1863년 24살의 나이에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꿈에도 그리던 중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이은 부인의 죽음과 선임 선교사와의 갈등으로 한때 선교사역을 포기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세관에서 통역일을 하던 그에게 조선 선교라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

 

다시금 복음 사역의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같은해 9월 백령도 근처의 작은 섬에 도착해 주민들에게 성경책 200여권을 전하며 전도했습니다. 베이징으로 되돌아간 그는 런던으로부터 정식으로 조선 선교를 허락받았고 다시 조선에 갈 배편을 찾던 그 앞에 제너럴셔먼호가 나타났다. 중국을 떠난 셔먼호는 일주일후 평양근처 대동강변에 도착했고 역시 우려하던 대로 조선군과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대동강변에 좌초하게된 셔먼호는 최대의 위기를 맞게되는데. 한편 불바다가 된 셔먼호 위에서는 백기를 들고 화염속을 헤치며 사력을 다해 강가로 책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토마스 선교사였다.

 

단 한권이라고 더 조선인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십시오. 그는 마지막 남은 한권의 성경책을 품안에 넣고 강물로 뛰어들었고 곧 조선군에게 생포되었다.

그의 처단은 즉시 집행됬고 그 임무를 맡은 조선 군사가 바로 박춘권 이라는 자였습니다. 박춘권이 칼을 뽑아들자 토마스는 급히 자기품에 들렸던 성경책을 꺼내어 웃으며서 그에게 내밀었고 그리고 두손을 모아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오..하나님... 이 사람이 자기의 하는일을 모르오니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조선땅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과연 토마스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그에게 성경을 받은 이들 중에 훗날 평양에 유력한 신앙 가문을 일으킨 이들이 많은데 박춘권은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석호정 만경대의 최취량은 평양교회를 창설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또한 그가 준 성경을 뜯어 벽지를 바른 영문주사 박영식의 집은 널다리교회의 예배처소가 되었다고 한다.

비록 정식으로 조선땅을 밞아보지도 못한채 27살의 꽃다운 나이로 죽음을 당한 로버트 토마스선교사. 하지만 그의 죽음 뒤에야 비로소 조선땅에도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되는데. 서툰 한국말 실력에 가진 것이라곤 한문으로 된 성경책 한권 뿐이었지만,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이 땅에 복음의 부흥을 위한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었던 것이다.

 

약력


1840년 9월 7일 영국 웨일즈라드노주 라야다에서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남
1857~1863년 5월 런던대학 뉴칼리지에서 학업
1863년 6월 4일 고향인 하노버 교회에서 목사 안수(24세)
1863년 8월 런던선교회 파송선교사로 아내와 함께 중국 상해도착. 아내 캐롤라인 곧 병사
1865년 1~8월 청나라 해상 세관 통역으로 근무
1865년 9월 세관 사임. 1차 한국선교여행
          13일 서해안 도착, 두달 반동안 선교활동.
          서울 향해 떠나다 태풍 만나 구사일생. 만주 거쳐 북경으로 돌아감
1866년 8월 9일 제너럴 셔먼호 동승, 2차 한국여행
1866년 9월 2일경,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와중에 순교(27세)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참고고리 : 두 번째 파종자 토마스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한국 교회사,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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