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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1-22
 제목  토마스 홉스( Hobbs, Thomas 한국명: 許曄, 1880~?) 선교사
 주제어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영국성서공회 BFBS 조선성서공회
 자료출처  양화진선교회  성경본문  
 내용

토마스 홉스( Hobbs, Thomas 한국명: 許曄 )선교사는 1880년 영국에서 출생하여 영국 만국사관학교를 졸업했다. 1910년 9월 16일 구세군 선교사(사관)로 부인(엘렌 P. 홉스)과 함께 내한했다.

1911년 구세군 한국 본영에서 활동하고 개성 지방관으로 전임하였다. 원당 사평 장단 등 지방 군영을 개설하거나 관리와 순회 전도를 하였다. 문맹 퇴치와 사회 계몽 활동에도 힘썼다.

1913년 1월, 저다인(J. L. Gerdine)선교사와 밀러(Miller, Hugh 閔休) 총무의 추천에 의하여 영국성서공회(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BFBS) 부총무로 선임되었다. 그가 선임된 배경에는 '구세군 사관(정위)으로 2년간 근무한 32세의 기혼자이며, 한국어를 잘하는 동시에 이미 한국인 권서와 함께 전도를 해오고 있고, 권서 사업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으며 그 부인도 권서인들을 지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서공회 사업을 관장하면서 특히 권서인(勸書人)의 조직과 관리를 주관하였으며, 전도 활동을 지휘하였다. 그의 권서 방식은 '모든 가정, 모든 사람(Every home, and Every man)'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호별 방문 형식의 권서 보급 운동을 장려하여 많은 성경을 보급하였다. 1921년에는 권서인을 위한 잡지 를 편집, 발간하였다.

밀러의 안식년 때(1916.7-1917.8)에는 대리 총무로 활동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때에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자 지원 입대 한 후 제대하여 1919년 9월 3일 서울로 돌아왔다.

1937년 10월 제2대 밀러 총무가 정년으로 은퇴하게되어 후임으로 제3대 영국성서공회 총무가 되었다. 부총무로 25년간 경륜을 쌓은 뒤 57세의 나이로 총무직을 맞게 되었으므로 이미 성서사업에 노련한 전문가로서 한국에서 높은 명망을 얻고 있었다.

밀러 총무가 추진하던 개역성경 번역작업을 성실하게 마무리하고 신ㆍ구약을 합본하여 <성경 개역>으로 출간하는 등 성서 출판과 보급에 크게 공헌하였다.

1938년 '영국성서공회'(BFBS)의 명칭을 '조선성서공회'로 바꾸는 등 대한성서공회 발전에도 기초를 확립하였다. 1941년 3월, BFBS에 속했던 모든 성경 재고와 조성된 자금을 조선성서공회에 기부했다.

그는 1934년 엘렌 부인과 사별한 뒤, 1935년 9월 11일 이화여전 교수 밴플리트(Van Fleet, Edna Marie)와 재혼하였다. 1941년 5월 일제에 의하여 강제 추방되어 중국 상해에 머물면서 미국 성서공회 임시 총무로 활동하면서 한국 성서사업의 계속 수행을 모색하였으나 결국 미국으로 떠났다.


◇ 양화진에 안장된 성서공회 첫 선교사 E. P. 홉스 (1880-1934)

엘렌 P. 홉스 (Hobbs, Beatrice Ellen Pugh) 선교사는 1880년 8월 24일 영국에서 출생하였다. 토마스 홉스와 결혼하였으며 1910년 9월 16일 남편과 함께 구세군 간호선교사로 내한하였다.

남편의 성서공회사업 등 선교 활동을 지원하였으며, 기독교 부인절제연합회 회계(외국인부서)로 봉사하고, 사경회 강사로도 활동했다. 동물학대방지협회 등에서 사회활동도 하였다.

진명여학교 등 2개 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학생들의 교육에도 힘썼다. '육체적 힘을 능가하는 열정을 가진 헌신적인 선교사'로 전해진다.

이질에 걸려 서울에서 치료하다가 해외 치료가 필요하여 1924년 11월 서울을 떠나 1925년 2월 돌아오기도 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아 1932년 1월 30일 남편과 함께 서울을 떠나 영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1933년 2월 7일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1934년 4월 8일 서울에서 별세하여 성서공회 외국인 선교사로는 첫 번째로 양화진 서남쪽 언덕 제2묘역(가-1)에 안장되었다.

남편 홉스를 내조하면서 22년간 봉사했던 성서공회와 한국교회의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5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 연결고리 : 내한 선교사, 양화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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