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5-31
 제목  두 번째 파종자 토마스
 주제어  [한국 교회사] [내한 선교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2. 두 번째 파종자 토마스

黃海監事 洪淳穆이 狀啓以爲

水使尹錫九 馳報內에 三竹唐船一雙이 來到于紫羅里 近浦榻 長可十餘把. 廣可四五把오 人九名而俱是唐人也오 其中一人服色은 白赤古里. 黑袴오 身長五尺餘오 體大一抱오 狀貌는 準高目深耽 髮細毛捲耽 腰佩短銃耽 手執鋏椎耽 以我國言語로 稱云. 英吉利國人이라 一塊紙를 擲下沙場耽 仍向南海態 欲執無奈오. 欲食未遑이라 故로 所投紙塊를 堅封上送云矣라. 紙塊段은 異端書十六卷. 歷書一券....

(李能和全集 第3輯(1977). 朝鮮基督敎及外交史. 韓國學硏究所(영인본). 136쪽.)

이상은 고종 2년(1865년) 8월 황해 감사 홍순목이 개신교 복음의 씨가 토마스에 의해 두 번째로 황해도 해안에 떨어지는 순간을 스케치한 것이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아주 자세히 장계로 올린 것으로 보아 매우 임무에 충실한 관리인 듯하다.

이로부터 약 2개월 반 동안 토마스는 장연, 옹진 근방의 해변가를 다니며 은밀히 복음의 씨를 뿌린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고 좋은 성과를 기대할 형편은 못 되었으나, 그의 불타는 전도열과 한국 선교를 위한 사명감은 높이 평가해 주어야 한다.

더욱이 당시 한국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천주교와 예수교가 모두 엄금되어 있는 삼엄한 시기이며 또한 토마스가 내한한 병인년은 천주교에 대한 대박해(1866, 1, 15)(병인교난 (丙寅敎難) 1866-1871. 대원군집권 당시 풍양조씨와 결탁한 천주교 박해사건. 풍양조씨의 우두머리인 조두순의 사망과 조대왕대비의 몰락으로 끝남. 옥사자 99명 발생.)가 일어나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순교를 당하는 살벌한 시기였다. 이런 때 복음을 들고 한국을 찾아 왔으니 일사각오의 뜨거운 사명감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토마스의 충성심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부족할 뿐이다.

그러나 그가 뿌린 복음의 씨 역시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으니......."(마13: 4),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한 점 애석하기 그지없다.

1) 출생과 소명

개신교 목사로 두 번째 한국을 노크한 토마스(Robert J. Thomas, 중국명; 崔蘭軒 或은 탁마사(托瑪俟), 1840-1866)는 1840년 9월 7일 영국 라이어덜(Rhayader)지방의 회중교회 목사 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유년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4세에 그의 부친이 라이어덜에서 하노버(Hanover)교회로 임지를 옮긴 것을 교적부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다. 런던의 뉴 대학(New College) 학적부에 의하면, 1857년 9월 28일에 가입학(假入學)하여 1858년 2월 1일에 정식 입학이 허락되었고, 1859년에 졸업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그가 런던 선교회에서 중국 선교사로 피임되자 1863년 6월 4일 그의 부친이 시무하는 하노버 조합교회에서 목사로 장립되었고, 곧이어 고드프리(Caroline Godfrey)양과 결혼한다. 그들은 신혼의 밀월도 가지지 못한 채 1863년 7월 21일, 선교지 중국을 향하여 고국을 떠났으며, 장장 5개월간의 긴 항해 끝에 중국 상해에 도착했다. 이 때가 1863년 12월 하순으로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살을 에이는 겨울이었다.

2) 선교지에서의 활동

그 해 겨울, 3개월간 상해에 체류한 그는 1864년 3월 11일 런던 선교회 선교 구역인 한구(漢口)로 여행을 떠난다. 그가 선교지를 향하여 출발한 직후 부인은 병석에 눕게 되었고, 그 후 13일 동안이나 낯선 중국 땅에서 홀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악전고투하다가 3월 24일 넓은 대륙 한 모퉁이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토마스는 4월 초순경 상해로 귀환하였고 그 뒤 2-3개월간 외로움과 상처(喪妻)의 아픔을 씻기 위해 노력한 듯하다. 그 후 잠시 북경을 다녀왔고, 1864년 12월에는 런던 선교회의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다음 해 지푸(芝孚)에 있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로 임지를 옮기고 만다.

당시 지푸에는 윌리엄슨(Alexander Williamson)( 윌리암슨 Alexander Williamson, 한문명; 韋廉臣 1829-1890 스코틀랜드 출신 중국 선교사. 1855년에 중국에 왔고 상해를 중심으로 선교. 1863년부터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소속으로 산동성 지푸(芝孚)에서 활동중 토마스를 만나 한국 선교를 권함.)이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총무직을 맡고 있었다. 이 곳에서 그는 상업차로 지푸에 왕래하는 한국인 천주교 신자 두 명을 소개받았으며, 이 때부터 한국인에 대한 관심을 갖고 한국 선교에 헌신할 것을 결심한다.

3) 제 1차 황해도 해안 전도

1865년 9월 4일(음 乙丑 7월 13일), 그는 중국 목선을 타고 지푸항을 출발하여 제 1차 한국 전도여행의 장도에 올랐고, 9일간의 항해 끝에 황해도 장연 부근의 어느 해안에 상륙하여 약 2개월 반 동안 황해도 서해안과 도서지방에서 전도를 하고, 12월 초순 한국을 떠나 요동반도를 거쳐 육로로 북경에 귀환한다. 그는 북경에 도착하는 즉시 런던 선교회 총무 티드맨 박사(Dr.Tidman)에게 다음과 같은 한국 선교 보고서를 보낸다.

나의 친애하는 티드맨 박사여

우리는 한 작은 중국 목선을 타고 9월 4일 지푸를 떠났고 한국 해안에 도착한 날은 13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해안에서 2개월 반 동안 머물렀습니다. 나는 한국 천주교인의 도움으로 그 불쌍한 백성들에게 복음의 가장 귀중한 진리 중 얼마를 가르치기에 넉넉한 한국말을 배워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백성으로 말하면 대체로 외국인에게 강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으나, 나는 한국어로 이야기하며 그들에게 책 한·두 권씩을 받도록 권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책을 받을 때에는 사형을 당하던지 아니면 벌금형이나 투옥될 것을 각오하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이런 책을 얼마나 읽기를 원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 한국의 서해안에는 굉장한 광풍이 불어왔습니다. 과거 20년간 한국과 통상차 다닌 중국의 선원들조차 이런 광풍은 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광풍에서 우리를 도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한국의 수도인 서울까지 진출하려고 하였지만 이 광풍에 내가 타고 갔던 작은 목선이 파괴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12월 초순 한국을 떠나 만주 해안에 상륙하였는데, 그 곳에는 풍랑으로 인한 위험은 없었지만 육지에 있는 마적들로 인하여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중략)

이 곳에서도 저는 성경을 전파하며 3일간을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이 곳 백성은 친절했고 매사에 조심성이 있었습니다. "리쿼 화"(Likwo Fa)라고 하는 이슬람 교인이 내가 가진 각종 책을 한 부씩 샀는데, 나는 그에게 대금을 받지 않았고 그는 나를 위하여 매일 점심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중략)

저는 한국의 서해안에 연한 2개 도(道)를 잘 알며, 장래에 다시 그 백성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다수의 단어와 대화를 표준말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하 생략).

1866년 1월 12일

북경에서, R. J. 토마스.

( 吳文煥(소화3년). 도마스牧師傳. 서울: 토마스牧師殉敎記念會. 22쪽.)

그의 황해도 서해안 전도에 대하여 런던 선교회 잡지(1866년 6월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게재되었다.

R. J. 토마스 목사의 한국 방문

우리의 형제 토마스 목사는 이사회의 지시에 의하여 북경에 도착하자 즉시 윌리암슨 목사와 관계되어 천주교 선교사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한국 서해안으로 성경을 전파하려고 떠나기를 임시 작정하였다. 이 일은 위험한 일이었으나 희생적 정신에 가득한 우리의 형제 토마스 목사는 해상과 육지의 위험한 중에도 4개월간의 여행 후 출발 지점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어 감사한다.

(앞의 책. 27쪽.)

그가 2개월 반 동안 서해안 어느 지방에서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 역사가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비릿한 해변의 내음과 함께 코 큰 서양 사람의 어정쩡한 모습과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4) 제 2차 황해도 해안 전도

토마스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며 [토마스 순교기념회]를 발기한 오문환 장로는 1928년 여름, 토마스가 서해안에 남긴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 위하여 백령도를 비롯한 황해도 서해안의 여러 교회(소래·백령도·태탄·장연·송화·풍천·석탄·숙도·석도·은율·장련·별기동·오리포)들을 순방한 일이 있는바, 그 때 백령도에서 토마스의 전도 활동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을 만나 중언을 청취할 수 있었다.

(吳文煥(1955). 史蹟探訪敎會巡禮記 서울: 토마스牧師殉敎記念會. 12쪽)

그는 먼저 소래에서 교계 원로인 서경조를 만난 후 소래 앞 덕동포에서 배로 백령도로 향하였는데 선상에서 중화동교회 장로 이동섭씨를 만났고, 백령도에 상륙한 후에는 화동교회 최영수(崔領袖)를 만났는데 최영수의 부친 최익로(崔益魯)는 70여세로서(1928년 당시), 토마스의 전도 사역을 직접 목격한 분이다. 오문환 장로가 백령도에 체류하는 동안 70세 이상의 고령자를 통하여 토마스가 전도한 활동상을 자세히 청취한 후 남긴 글 중에서 한 부분을 소개한다.

"지난 병인년, 곧 1866년 8월 9일 조선선교의 목적으로 중국 산동성 지푸를 떠난 토마스 목사는 오는 길에 먼저 이 섬을 방문하였다. 두문진이라는 곳에 배를 대고 이 섬 사람들에게 전도하려고 할 때 이 섬은 본래 해군 근거지인 만큼 이 소식을 들은 백령첨사는 무슨 큰 일이나 났는가 하여 많은 군인을 파견하고, 양선의 사람과 조선 백성 사이의 교제를 끊게 하였다. 당시 사건을 목격한 증인들에 의하면 토마스 목사는 다가오는 한국 군인들에게 성경책을 주었을 뿐 아니라 구경하는 군중들에게도 성경을 무수히 나누어주었다. 그가 떠난 후 백령첨사는 그가 뿌린 성경책을 모두 몰수하여 소달구지로 세 번이나 운반하였으니 얼마나 많은 수의 성경을 살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앞의 책. 21쪽.)

토마스의 제 2차 전도에 대하여 한국 정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監司 朴承輝 黃州異樣船 同情狀啓

前略

而三國人이 同爲行商態 今七月 初一日에 自山東離發態 歷白翎島 串席島態 轉向平壤, 而我船貌似兵船이나 實欲通商態 貴地 紙. 米. 金. 蔘. 貂皮 等物로 換我洋布 器皿이요 別無狙害之心이라 (下略)

(李能和. 앞의 책. 146쪽.)

이 때의 장계 내용의 전후를 간추려 보면 황해도 황주군 목삼면 송산리 앞바다에 이양선이 정박하여 황주 목사 정대식이 급히 달려가 살핀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미국인 선주 프레스톤(Preston 普來屯)을 비롯하여 화물 감독 영국인 호가드(Hogarth. 何葛等), 선장 페이지(Paege, 巴使)를 비롯하여 영국인 개신교 선교사 토마스(崔蘭軒), 중국인 이팔행(李八行) 등이 대답하기를 우리 3국인은 무역행상을 위하여 7월 1일 산동성 지푸를 출발하여 백령도와 장산곶, 석도를 거쳐 평양을 향하여 가는 길인데 배 모양은 비록 병선과 같지만 실상은 귀국의 종이, 쌀, 금, 인삼, 초피 등과 우리 서양 천 및 그릇과 교역하려는 것이 목적이요, 해치려는 마음은 전혀 없다."

(앞의 책. 148쪽.)

1866년 7월 18일 평안병사(平安兵使) 이용상(李容象)이 올린 장계도 있다.

"平壤異船同情 狀啓"

[我們은 是西洋國人이니 行商次로 今七月初에 自山東發態 歷黃海諸島態 轉向黃州界態 留註 數日耽 欲習元平壤耽 兼見省城大人態 今方到此라.") 앞의 책. 148쪽.

이상의 여러 장계로 미루어 보아 토마스의 제 2차 전도여행도 황해도 해안에서 시작된 것이 확실하다. 그의 복음전도는 복음의 북소리를 크게 울려 태고 때부터 내려오는 깊은 잠에서 2천만이 깨어나기를 바랬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흔들어 보는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이제 두 번의 [노-크]소리를 정리하면 모두 황해도 서해안에서 시작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사실은 소래를 [한국 교회의 요람]으로 삼으시고, 황해도를 복음의 관문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를 명백하게 읽게 해 주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황해도만이 누릴 수 있었던 특별한 은총이요 축복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숨겨진 한국교회사

>> 참고고리 : 토마스 선교사  

>> 연결고리 : 한국 교회사, 내한 선교사

 



   


A-Z




  인기검색어
kcm  322020
설교  166053
교회  120035
아시아  95555
선교  91776
세계  81614
예수  79282
선교회  69724
사랑  65964
바울  65654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