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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0-07-06
 제목  한국교회의 중보기도와 세계선교(발제)
 주제어  [선교] [선교전략회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선교대회] [NCOWE V] [세계선교전략회의] [분야별1]
 자료출처  유성환  성경본문  
 내용

한국교회의 중보기도와 세계선교

                                             

유성환 선교사(YWAM,예수전도단)


들어가는 말


 최근에 영국의 스코틀랜드에서 사역하는 한 선교사와 만나 교제를 하였다. 그 선교사가 자신이 알게 된 영국의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 할머니는 선교사에게 “영국에 한국 사람들이 신학을 공부하러 오는데, 이해가 잘 안되네. 한국 교회가 놀랍게 성장하였는데, 오히려 영국이 한국에 가서 배워야 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얼마 전에 국제 구제선인 둘로스 선장으로 동, 서양 선교사들을 인도하며 세계를 누빈  최종상 선교사가 한 일간지에서 “영국 교회에 한국의 교회 개척에 대하여서 소개하며 노하우를 전수 하자”라는 말씀을 한 기사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1)


 우리는 영국을 통하여서 복음을 전수 받은 나라이다. 그런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 온지도 올해로 125년째이다. 지금 우리를 돌아보면 놀라운 성장이 있었다. 지금 현재  한국의 교회 숫자는 2004년, 전화번호 기준으로 등록된 교회 숫자만 해도 5만 3천개 가량이다.2) 등록 되지 않은 숫자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숫자 일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 파송되어져 해외로 나간  선교사는 169개국에 20,445명(2010년 1월 8일 기준)이다.3)


 그러나 한국의 선교 초기를 돌이켜 보면 어떠한가? 초창기 한국의 선교에 대하여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언더우드의 기도문  중 일부분을 인용해 보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찌하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주소서 ”4)

 

 이렇듯, 정말 한국에서 선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에서 선교는 제대로 될 수는 있는 것인지, 정말 암흑 같은 선교대상국이었다. 영국 선교사인 토마스 선교사를 비롯한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죽어 갔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순교하였으며, 환란과 핍박을 당하였다.

 

 이런 우리나라의 교회가 지금은  성장하였을 뿐 만 아니라, 그간 서양선교사들을 통하여서 복음에 대하여 진 빚을 해외 선교로 갚고 있는 중이다.

  일전에 미국 선교사와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미국에서는 선교의 인적 자원을  동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1980년 말부터 시작된 “선교한국”을 통하여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선교에 헌신하였고 또 여러 선교단체를 통하여서, 그리고 선교에 깨어 있는 여러 교회들을 통하여서 수많은 선교 헌신자들이 아직까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필자는 이런 놀라운 한국 교회의 성장을 바라보며, 한국교회가 어떻게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는가를 살펴보게 되었다. 특히 한국교회의 중보기도의 영역을 통하여 이러한 발전과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었는지, 한국에서의 중보기도의 발전과 중요성이 어떠한지, 그간 한국교회의 기도가 어떻게 세계선교에 기여해 왔는지를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며 앞으로 어떻게 한국 교회가 중보기도를 통해 세계 선교를 효율적으로 동참할 수 있을지 방법과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한국 교회의 성장과  중보 기도와의 관계


 선교사가 한국 땅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한국인의 마음을 살 수 있을지 답답한 심정 일 때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모여서 기도회를 하였다. 그 결과가 우리가 잘 아는 1907년 평양 대 부흥인 것이다. 우리는 평양 대 부흥을 놀라워 하지만, 이미 그 전에 시작된 작은 기도 운동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1901년 10월, 1902년 사경회와 고난주일 특별 기도회, 1903년 1월 개성의 신년 기도회 등 여러 곳에서 기도모임들이 일어났으며5) 1903년 스웨덴의 프란손 목사와 중국 체재의 남 감리교 선교사 화이트 여사와 함께 원산의 감리교 선교사들이 기도와 성서 연구를 위해 한 주일을 모였고 그 후 이들은 장로교와 대한기독교회 그리고 감리교 선교사 그리고 교인들까지 다 합쳐서 연합하여 창전 교회에서 한 주일간 매일 밤 집회를 하였다. 이때 캐나다인으로 남 감리교 선교부에서 일하던 하디 선교사도 그 기도 모임에 동참하여 은혜를 받게 된다.6) 또한 1906년 평양의 영적 분위기가 달라져 감을 느끼며 선교사들은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갖던 친목 모임을 중단하고 감리 교인들과 장로 교인들이 연합하여 사경회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계속적으로 정오에 외국인 학교에서 모임을 가지고 기도하였다.7) 

 물론, 한국에 파송되어진 서양 선교사들만 기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선교사와 함께 한 한국의 신실한 성도들, 그리고 선교사들을 파송한 각국의 교회들과 선교 단체들도 황무지 같은 한국 땅을 위해서 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런 기도와 중보 기도로 인하여 평양, 서울 전국 각지로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때 한국 교회는 질적으로 뿐만 아니라 양적으로도 놀랍게 성장하였음을 피부로도 통계로도 느끼게 된다.8)



2. 한국 교회의 성장과 중보기도의 한국적 발전 단계


1) 통성기도


 서양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기도와, 중보로 시작되어진 한국 교회의 부흥은  차츰 한국인들의 가슴과 영혼에도 전이 되어졌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와서 더욱 활활 타 올랐으며, 한국적인 기도와 중보기도로 상황화되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기도와 중보기도 하면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통성기도이다. 주여 삼창을 하고, 통성으로 어떤 기도 제목을 위해서 중보 하는 기도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기도 인 것이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면, 우리 가슴이 시원해지며 마치 그 기도가 당장 이루어 질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몇 년 전에 필자는 태국의 한 지역에서 동남아시아 무슬림 사역자들의 국제 모임에 참석하였었다. 그곳에는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인근 동남아시아 지역의 무슬림 사역자들이 모여 회의와 토론을 하며 선교 전략을 짜는 모임이었다. 약 100명 정도의 사역자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이슬람 지역 안에서 효율적 전략과 돌파 등에 토론과 주제 발표 등이 있었다. 이슬람 지역 안에서 어떻게 돌파하며, 어떻게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할까 는 참석자 대부분의 고민이었기에 소그룹 모임들은 다들 뜨거웠다. 모임이 종반부로 들어가면서, 이슬람 사역을 위해서 전체 기도회가 열렸는데, 기도회를 인도하는  인도자가 영어로 “Korean style(한국식 스타일)로 기도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 제안 이후로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그때 처음으로 한국의 기도 위상이 이렇게 높았나싶어 흠칫 놀랐다.

왜냐하면, 그 모임에 참석한 한국사역자들은 전체 약 100명 정도의 동, 서양 사역자 중에 필자를 포함하여 고작 3-4명이 전부였기에 한국인을 배려하는 차원보다는 이미 한국 스타일의 기도가 통성기도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인도자가 그렇게 인도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 모임을 통하여서 한국식의 기도에 대하여서 다시금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의 통성기도는 처음부터 한국적인 기도의 대명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 중보 기도의 방식 또한, 1907년 평양의 대 부흥쯤에 한국에 일기 시작한 기도 운동이었다.   통성 기도는 1906년 가을 한국을 방문한 하우드 애그뉴 존스톤 박사를 통하여서 1906년 웨일즈 부흥운동 소식을 한국에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웨일즈 부흥회에서는 공적 기도를 인도하는 인도자만 기도하지 않고, 각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큰 소리로 통성 기도를 한다고 알려 주었고, 웨일즈 부흥 운동의 소식을 듣고 그와 같은 부흥 운동이 한국 교회에도 일어나길 간절히 사모한 선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통성 기도를 자연스럽게 한국에 도입한 것이다.9) 그것이 이제는 통성 기도하면 한국이 떠오르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것으로 된 것이다.



2) 새벽 기도


 한국의 기도하면 또한 생각나는 것이 새벽 기도 이다.

우리에게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리차드 포스트의 ‘기도’라는 책에서도 중보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의 새벽기도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특히, 40명으로 시작한 새벽기도 운동이 수천으로 확산되어진 한국의 한 교회에 대하여서 설명하며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중보기도의 중요성에 대하여서 말하고 있을 정도10)로 한국의 새벽기도는 우리화 된 세계적인 기도의 대명사인 것이다.

 새벽기도의 시작 또한, 1907년 평양 대 부흥 기간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새벽기도의 시작은 길선주 목사로부터 시작되어졌는데, 원래 길선주 목사는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에 선도에 심취하였던 도인 이었다. 그래서 선도 수련을 겸한 고행적인 기도생활에 전념하였다. 심산유곡을 찾아다니면서 21일, 49일, 100일에 걸쳐 잠을 자지도 않고 수행을 하였다. 그런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에도 선도 수련을 위해서 묵상기도하며 시간들을 보낸 것처럼 성신이 자기 안에 늘 충만하게 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아침 5시 또는 밤 10시로 일정한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였다. 매일 한 시간 이상의 보통기도와 매주 사흘씩의 금식기도와 매년 1주일간의 금식 대기도를 세상 떠날 때까지 계속하였다. 특히 길선주 장로는 신자의 신앙의 열심을 보유하기 위하여 기도를 강조하였는데, 무엇보다도 기도의 열심을 모범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신자는 각자가 시간이 허락되는 한 하루에 한 번씩 하나님과 대면함으로서 심령의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예배당을 밤낮 개방하였고, 교회를 순례하는 발걸음이 새벽부터 밤까지 그치지 않게 하였다. 특히 교회의  영적 변화가 크게 일어나야 할 것을 통감하고 박치록 장로와 함께 두 분이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안 교인들도 참여하면서 새벽기도가 시작되었다. 이에 힘을 얻은 길목사는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기 위한 영적 개혁 운동에 모든 교인들의 정성이 집중되고 성령의 역사로 승화됨이 있음을 확신하고 이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새벽기도회는 대중적으로 매일 계속된 것은 아니었고, 개개인이 자유롭게 기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특수한 사정이 있을 때마다 그 필요에 따라 집단적으로 새벽기도를 하였다. 그런 날은 새벽마다 종이 울렸고, 교인들이 교회로 몰려와 울며불며 자기 죄를 자복하며,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한 것이다. 1905년 두 사람이 시작한 새벽기도회의 불씨는 전국교회로 번져 나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11)



3) 기도원

 

 필자가 약 8년 전에 선교지에서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12)에서 파송한 미국 선교사 가정과 일정 기간 동안 팀으로 사역한 적이 있었다. 그 선교사 가정은 YWAM 사역 팀에 협력으로 들어 와서, 중보기도 운동을 일으켰는데, IHOP을 모르는 필자를 위해서 자신의 단체와 사역 역할들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던 그 열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자신의 파송 단체에서는 24시간 세계 선교를 위해서 중보 기도를 한다고 하였다. 마치 모라비안들의 부활을 보는 듯하였다. 그 당시에만 해도 이 단체가 한국에서 그리 알려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 졌으며,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훈련을 받고 있다.

 사실, 필자의 생각으론 IHOP의 원조는 한국이다. 그것은 한국의 기도원인 것이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이후 급속하게 기도와 중보기도 운동들이 교회들과 개인들에게 확산되어져 나간 후, 전국적으로 통성기도, 새벽 기도들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런 가운데 기도원이 생성되기 시작하는데, 그 시초는 1910년부터 시작된 마리산 기도회로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이 기도회는 장봉도에 있는 옹암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다가 이것이 차츰 1주일, 2주일간의 정기 부흥회로 발전하였으며, 마지막 날에는 반드시 강화도 마리산에 올라가 참성단에서 기도하며 폐회를 하였기 때문에 마리산 부흥회, 마리산 기도회라는 명칭을 붙였는데, 이것이 마리산 기도원으로 그것이 한국 기도원의 시초라고 본다. 마리산 기도원을 시작으로 전국에 기도원들이 차츰 많이 생겨나게 시작되었다. 2001년까지 전국에 552개가 되어진다.13) 그간 이 기도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라와 열방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많은 선교사들이 해외 선교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3. 중보 기도를 통한 선교의 사례들(태국의 중심으로)


 그렇다면 이런 중보기도가 해외 선교에서는 어떻게 실제적인 결과들이 드러나는지 태국을 중심으로 몇몇 예들을 들어 살펴보고자 한다.

  태국 남부의 한 지역에 어떤 팀들이 중보 기도를 하기 위해 와서 그 지역을 위해 기도하는 중에 소외된 어린이들에 대한 사역을 위해 기도하라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며 이런 일들이 일어나길 기도하였다. 그 팀들은 한국식의 일방적인 부르짖는 중보기도가 아닌, 소위 오늘날 말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하는 양방향식 중보기도를 추구하는 팀이었다.

 사실 그 전까지 그 지역의 교회들은 어린이들에 대한 사역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주일학교 교육도 부실하였지만 그나마 주일학교도 장년 예배에 참석하는 아이들을 잠시 동안 데리고 있는 수준이 전부였다. 그러니 인근 소외된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해 나아간다는 것은 어느 교회도 엄두를 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 지역교회가 그 인근 지역의 슬럼가 어린이 사역을 현지 교회 자체적으로 계획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그 슬럼 지역의 어린이 약 100명이 예수님을 개인적인 주인으로 영접하게 되었다. 이 일은 누가 시켜서 된 것이 아니었다. 처음 그 지역을 방문하고 중보 기도를 한 팀들이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시네요.” 라고 하면서 “이 지역에서 어린이 사역이 일어나길 간구해야겠습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한 후, 약 1년 만에 그런 결실이 맺어진 것을 보면서 궁극적으로 선교 사역을 진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구나를 경험한 시간이었다.14)

 

  YWAM 소수 부족 센터에서는 방콕 대학생들과 태국 남부의 무슬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 조사 결과에 의하면, 방콕의 무슬림 대학생들 보다 분쟁이 있는 태국 남부의 모슬렘들이 오히려 이사 알마시(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서 더 궁금해 하고 복음에 대하여서 더 열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이미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열매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꾸준히 태국 남부의 무슬림들을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여 왔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실제적으로 태국 남부 무슬림들을 위해서 병원 사역을 하던 두 명의 서양 선교사가 1970년대 무슬림들에게 인질로 잡혀 살해 되는 과정에 태국 남부 무슬림들이 전 세계 교회에 알려 졌으며, 전 세계적으로 많은 성도들이 태국 남부 무슬림들을 위해 기도 하는 계기가 되었고, 1990년 이후 태국 남부 무슬림 사역을 위해 한국을 비롯해 많은 동서양의 선교단체 들이 들어와서 사역을 하면서, 기도 운동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특히, 몇 년 전부터 태국 남부 한 지역에서 1년에 한 번 씩 태국 무슬림들을 마음에 품고 사역하는 사역자들이 모여서 교파와 교단과 파송 선교 단체와 국적을 초월하여 하루 종일 금식하고 기도하는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중보 기도의 영향으로 동일한 무슬림들이지만 지역에 따라서 복음에 대한 반응적 차이를 보이지 않는가! YWAM 소수부족사역센타에서는 통계로 추론해 보고 있다.15)

 

 태국에서의 두 가지 사례들 모두 필자가 중보기도의 현장에서부터 그런 일들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 함께 동참하였기에 더욱  중보기도의 능력을 더욱 깊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졌다.



4. 중보 기도의 중요성


 중보의 기도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기독교의 이타적인 신앙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것들 중에 하나이다. 자신을 위한 기도는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오로지 자심만을 위한 기도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이기적인 것 일 수도 있고, 또 때로는 기복적인 샤머니즘의 위험에 빠질 수 도 있다. 그러나 중보의 기도는 그렇지 않다. 타인을 위한 중보의 기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로 오신(딤전 2:5)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인류를 위한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기에, 타인을 위한 존재이기를 요구하는 기독교의 본질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6)  구약과 신약을 살펴보면 수많은 중보자들이 나온다.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바울 등. 그렇지만 예수님의 중보기도 한마디가 우리의 가슴을 후벼 파게 한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한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하시더라”.(눅23:34)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까지 우리들을 생각하셨으며, 우리들을 위해 중보자로 서 계신 것이다. 제자란 예수님의 삶과 인격 말씀을 따라 가는 자들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로써, 예수님을 따라가는 한국 교회로써, 이제 세계 선교를 위해서, 한국 교회가  중보기도를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는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중보 기도는 우리의 삶속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긴급하고도 중요한 기도인 것이다.

 최근  아프리카 한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YWAM(예수전도단) 서양 선교사 가정을 비롯하여 타 선교 단체 선교사 10명 이상이 1차적으로 추방당하였고, 2차, 3차 계속 추방되고 있다는 소식을 그 지역에서 사역하는 친한 선교사 가정을 통하여서 접하였다. 그 지역은 국민 대분이 무슬림들인 국가이다.

 이슬람 국가만 선교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세계가 갈수록 비자 문제를 까다롭게 하기도 하며, 테러 등으로 치안이 불안하기도 하며, 정치적으로 어수선 하기도 하는 등 선교사들이 장기적으로 거주하며 선교하기에 어려운 지역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보기도는 아주 효율적이며, 직접적인 선교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중보기도는 선교사들처럼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며 그곳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러나 아주 강력한, 선교 도구가 될 수 있다.

 한국의 강한 기도가 좀 더 전략적이고 효율적이라면 더 많은 결실을 맺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 보며 다음과 같이  중보기도를 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5. 한국 교회가 중보 기도의 전략화를 통한 선교 동참 방안들


1) 연합 기도

1992년부터 시작되어진 전 세계 무슬림을 위한 30일 기도 운동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992년 기독교 지도자들이 중동지역에 모여서 무슬림들을 위해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것이 국제 YWAM 과 더불어 한국YWAM(예수전도단)을 통하여 자발적인 중보기도 연합 운동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많은 선교 단체와 지역 교회들이 연합하여 전 세계 무슬림들이 라마단 금식 기간에 기도할 그 때에  한국과 전 세계에서 동시적으로 전 세계 무슬림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 기도 운동은 현재 전 세계 300여 개국 2,000만 명이 참여하는 국제적인 중보기도운동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전국 교회를 중심으로 10만 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기도운동에 동참하고 있다.17) 이 운동을 통하여서, 많은 무슬림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교 단체들과 지역교회들이 무슬림들에 대하여서 관심을 기울이며, 많은 선교사들이 무슬림 지역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필자가 사역하였던 지역에서도 1992년 이후로 태국 무슬림들을 위해 여러 선교단체들과 선교사들이 침체되어 있던 태국 남부 무슬림들과 방콕 무슬림들을 위해 새롭게 사역하게 되어졌으며, 무슬림 개종자들이 점진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 대문 밖에 이루 형용 할 수 없는 밝은 빛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워 저는 그 빛을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발이 문지방에 걸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얘야, 그리 가면 안 된다.” 애를 썼지만 문 밖으로 나갈 수 없었고 저는 빛을 만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너무 이상해서 다음날 아침 저는 알고 있는 기독교인 친구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이게 무슨 의미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제게 예수님 이야기를 한번 직접 읽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요한복음의 한 부분을 그냥 펼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꿈에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했는지를 말입니다. 이때 이후로 저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성경을 통해 알아가게 되었습니다.”18)

 태국에서 개종한 한 여자 무슬림 대학생의 간증이다. 이런 사례들이 전 세계 무슬림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선교에 있어서 연합 하여 구체적으로 중보 기도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2) 포기 하지 않는 믿음의  기도

조이 도우슨은 그의 저서 “스릴 있고 성취감 넘치는 중보기도”라는 책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중보 기도를 하기 위해서 모였을 때, 성령님께서는 아프리카에서 실종된 어느 여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도하라 하셔서 기도하였다고 나온다. 그 여선교사는 이미 신문에서 사망하였다고 보도 되었으며, 그 선교사가 있는 국제단체에서도 사망 통지를 받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이 도우슨과 친구들은 희망 없는 보도로 말미암은 추정이나 추측, 소극적인 체념을 몰아내고 기도하였으며, 영적 전쟁을 치렀다고 고백한다. 수 주 후 사망하였다고 보도된 그 여선교사가 무사히 살아 돌아 왔다고 신문에 실리게 된다.19)

태국의 선배 선교사를 통하여서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한 국제단체와 함께 태국의 무슬림들을 위하여 사역하였던 어느 현지 태국인 장로님께서 “태국의 무슬림들은 하나님께서 포기한 것 같다”라고 그 장로님과 대화한 이야기를  필자에게 나누어 주신 적이 있었다. 아마 너무나도 더디고 열매 없는 것 같이 여겨졌기에 그 장로님께서 그렇게 표현 하신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흐르지 않는 것 같지만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곁에서 지켜 볼 때, 이것은 아직도 태국의 무슬림들을 위해 아버지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들이 세계 도처에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필자는 조지 뮬러를 좋아한다. 그는 믿음의 사람으로, 기도의 사람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오래전에 읽은 내용이라 그의 글을 다 완전히 기억하고 인용 할 수 없지만 나의 기억 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조지 뮬러의 모든 기도가 그의 생전에 다 응답되었는데, 자기가 기도한 친구 한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 친구는 조지 뮬러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중요한 것은 포기 하지 않고 믿음으로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3) 성령님과 인간의 지성이 함께 하는 기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중보기도 하면, 인도자가 몇 가지 기도 제목을 내고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보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 나라와 그 종족과 그 선교사를 위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 가를 듣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세계적인 상담 심리학자인 레리 크랩은 그의 저서 ‘파파기도’에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신다고 장담하였으며 그분은 자신의 자녀와 좋은 대화를 나누길 좋아하신다고20) 표현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라고 항상 권면하고 있다. 시편 40편 1절에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말씀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요한복음 10장 27절에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통찰력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려야 한다.21) 우리는 선교지를 위하여서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을 주시는지, 어떻게 중보 기도를 해야 하는지 조용히 음성을 듣는 시간들을 가져 보아야 할 것이다. 아버지가 그들에 대하여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듣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중한 자료조사 또한 필요하다. 자료 조사는 신중한 영적 판단력과 지도력 향상에 매우 중요하다. 적의 능력을 분석하기 위해 모세는 정탐꾼을 특별히 뽑았다.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되 그 종족의 각 지파 중에서 족장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민수기 13:2)22) 선교지에 대한 역사, 문화, 종교 등 구체적으로 알수록 더 깊은 기도를 할 수 있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자신들이 중보기도를 하는 지역에 대하여서 방문하여 선교사를 통하여서 그 지역에 대하여서 직접 듣고, 공부하며, 둘러보는 것도 좋은 것이다. 한국에 단기 선교 팀들이 방학을 이용하여 선교지에 많이 방문하는 줄 알고 있는데, 이때 공연이나, 행사 등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지역에 대하여서 선교사를 통하여 공부하며, 팀들도 공부하면서, 그 지역을 방문하여, 보고, 듣고, 느끼면서 실제적인 중보기도를 함도 좋을 듯하다.


나가는 말


 한국은 초창기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기도가 무엇인지 아는 민족이라고 하였다. 한국인들은 불교와 조상신들을 섬기는 자들이었기에, 도고와 중보가 무엇인지 아는 자라고 하였다. 그래서 한국 성도들은 수요기도회, 금야 철야 기도회, 주말 기도회, 산 기도회 등 기도회 모임들을 자주 가졌다고 기록하고 있다.23) 우리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아는 민족이다. 또한 서양 선교사들의 중보 기도를 통하여서 한국 교회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중보기도의 능력을 실제로 깊이 체험한 민족이다. 뿐만 아니라 그 기도가 한국적인 형태와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상황화 되어진 독특한 민족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 선교에서, 중보 기도를 통하여서 세계 선교에 여러 가지로 기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한국의 선교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됨으로 인해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군데군데 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커스 버킹엄과 도널드 클리프턴 공저의 강점 혁명에 나오는 책의 글귀처럼 “강점을 소홀히 하고 약점에만 관심을 두는 것을 부지런하고 겸손하다고 할 수는 없다. 거의 무책임에 가까운 행동이다. 반대로 가장 책임감 있고, 가장 도전적이며 가장 명예로운 일은 강점으로 발전 가능한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현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다.”24)

 우리는 서양의 선교 방식이나 모델들을 일방적으로 답습하거나, 추구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중보기도라는 강점을 살려서 이것으로 한국 교회가 어떻게 더욱 효율적으로 선교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조선일보 ,2010.03.04 기사

2) http://ask.nate.com/qna/view.html?n=8763121

3)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179

4) http://www.ctm.or.kr/asp/board_read.asp?p=8thcmtc&page=1&num=13

5) 박용규 ,『평양 대 부흥 운동』,서울:생명의 말씀사,2000,p31-32

6) 민경배, 『한국 기독교 교회사』,서울:연세대학교 출판부,2007,p289


7) 박용규 ,『평양 대 부흥 운동』,서울:생명의 말씀사,2000,p200-201


8) Ibid,p420


9) 이성용,『한국 기도원 운동에 대한 상황화 신학 관점에서의 연구』,아세아 연합 신학대학원 ,박사학위 논문,p52


10) 리차드 포스터, 『기도』,송준인 역,서울:두란노,1995,p267


11) 대전신학교 허호일 교수 “영계 길선주 목사의 영성 신학 ”

http://theologia.kr/zeroboard/zboard.php?id=koreatheo&page=1&sn1=&divpage=1&category=3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9


12) 미국 캔사스 시에 있는 국제 기도의 집(아이합)은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을 쉬지 않는 찬양과 기도, 하나님과의 친교, 마지막 때를 위한 준비, 그리고 정의를 실행하는 것을 사역의 기초로 삼는 선교본부입니다. 

http://www.renewgyn.com/AboutUs.php


13) 이성용,『한국 기도원 운동에 대한 상황화 신학 관점에서의 연구』,아세아 연합 신학대학원 ,박사학위 논문,p52


14) 필자를 비롯한 10명의 공저,『말레이 선교 현장 이야기』,서울:GP,2008,p104


15) Ibid,p103


16) 강성열,“구약에 나타난 중보의 기도”,『그말씀』,2009년 3월,p31.


17) YWAM(예수전도단) 대구지부 기도전략 사역 담당자-양희진 간사의 30일 중보 기도 운동에 대한 소개 글  http://hompy.onmam.com/Hompi/HomBbsView.aspx?hompi_num=3279&module_seq=78&seq=343695


18)필자를 비롯한 10명의 공저,『말레이 선교 현장 이야기』,서울:GP,2008,p126-127


19) 조이도우슨『중보기도』김세라 역,서울:예수전도단,1998,p114-115


20) 래리크랩,『파파기도』김성녀 역,서울:IVP,2007,p225


21) 존도우슨,『하나님을 위하여 도시를 점령하라』유재국 역,서울:예수전도단,1992,p177


22) Ibid,p118


23) HARRY A. RHODES. A.M., Editor.,『History of the Korea Presbyerian Church U.S.A 1884-1934』Chosen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p251-252


24) 마커스 버킹엄,도널드 클리프턴,『위대한 나의 발견,강점혁명』박정숙 역,서울:청림,2002,p189


 
 
>> 목차고리 : [발제] 한국교회의 중보기도와 세계선교 ->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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