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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손병희는 1882년(22세)때 동학에 들어가 2년 뒤에 교주 최시형을 만나 수제자로서 수도하였다. 1894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통령이던 그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동학군 이끌고 관군과 싸웠다. 일본군 개입으로 동학혁명이 실패하자 함경, 평안 지방으로 피해다니던 그는 1897년 최시형 뒤를 이어 동학 제3대 교주가 되었다.
1901년 일본을 거쳐 중국으로 망명했던 손병희는 1904년에 진보회를 조직하여 모든 회원들에게 단발령을 내리는 등 개혁 운동을 일으켰으며, 또한 동학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름을 천도교로 고치고 민족 종교로 발전시켰다. 그는 출판사인 보성사를 설립하고, 교육사업에도 힘을 기울여 보성·동덕 등의 학교를 인수해 후진 양성에 이바지 하였다. 1908년 박인호에게 교주를 넘겨주고 은퇴하여 수도에 전념하다가, 1919년 기독교, 불교의 대표들과 3·1운동을 일으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조선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던 중 병으로 풀려나 요양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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