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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8-08-25
 제목  손기정과 일장기 말소사건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936년 미나미(南次郞) 조선총독이 부임하자 조선 민중에 대한 학정은 더욱 심해졌다. 미나미대장은 우매하고 무식한 군인으로 역대 총독 중에서 가장 악독한 행동을 자행했다. 1936년 8월 10일에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15회 올림픽대회에서 손기정(孫基禎)은 일본팀으로 출전,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에서 우승하게 되었다.(2H 29M) 이에 전국민이 환호했고, 이어 8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손기정이 월계관을 쓰고 수상대에 오르는 사진을 실었는데 이 사진은 일본의 [아사히 스포츠]라는 조일(朝日)신문 발행 주간지에서 전재한 것인데 그 사진에서 일장기를 교묘하게 흐려버리고 발행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이길용과 삽화가 이상범을 검거하고 신문은 무기한 정간처분을 내렸다. (그때 [조선 중앙일보]도 일장기를 말소한 뒤 발행했으나 발각되지 않았음. 그러나 운동부 기자 유해붕을 경찰에 자수시키고 9월 5일자로 자진 휴간하기도 했음)[동아일보]는 그 이듬해 발행권이 취소되었다.

일제시기의 민간지 창간의 배경은 이른바 『굴뚝론』으로 설명되어진다. 즉 굴뚝을 만들어 열기를 빼내듯 민간지 창간으로 민중들의 독립열기를 가라않히고, 굴뚝에서 나는 연기를 보듯 민간지에 나타난 내용을 보고 민심을 파악하려는 의도였다. 그 배경에서 태어난 여러 신문 중 바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있었던 것이다. 즉 이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의 통치구도속에서 출발을 했던것이다. 따라서 일제는 『채찍과 당근』의 정책으로 신문을 길들였다. 대표적인 예로 "일장기 말소사건"을 들수 있다.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는 신문정간이라는 조치를 당하고 이를 해제하기 위해 동아일보는 총독부와 타협으로 기자해고라는 조치를 취하고 만다. 조선일보 역시 독자의 신망을 얻기 위해서 배일적인 신문임을 자처하지만 총독부와 타협해 정간해제의 조건으로 역시 기자를 해고하는 양면적인 행위를 보인다. 이런 조선, 동아일보도 역시 친일적인 논조가 아니면 생존하기 어려운 시기라 상업주의적 논조와 식민지적 황색 저널리즘의 경향까지 나타나게 된다. 예로 높은 문맹률과 경제적 빈곤으로 신문판매부수를 늘리기가 매우 어려웠고 국내광고도 거의 없던 상황에서 기업적 이윤추구에 집착하던 두 신문은 일본광고 유치에 주력하게 된다. 그리하여 "기생관광"이라는 매족적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따라서 이 시기의 조선, 동아일보는 민족지가 아닌 『친일지』의 성격을 가진 신문인 것이다. 이런 두 신문은 1940년 8월 10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총독부의 조선어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폐간이 된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사주인 "김성수"와 조선일보의 사주인 "방응모"는 그 뒤에도 『매일신보』나 『조광』등에다가 친일적인 논조를 펼치고 전쟁협력단체와 친일단체에 간부로 역임을 한다.

 

>> 목차고리 : 손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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