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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9-04-03
 제목  브라암스(Johannes Brahms, 1833. 5. 7-1897. 4. 3)
 주제어  [독일] [음악가]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요하네스 브라암스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던 아버지 '요한 야코프'에게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여 10세 때에는 공개연주회에 처음 나가게 되었다. 그는 독일 낭만파의 시에 매료되어 있었으며, 성서를 독실히 읽는 편이었다. 고전 형식에 신선한 예술미와 뛰어난 새로운 기교를 융합하여 절대음악에 정진한 브람스는 온 후하고 독실한 인격을 지닌 작곡가였다.
1853년부터 연주여행을 하면서 리스트와 슈만 등의 유명인사들과 알게 되었는데, 특히 슈만은 그의 잡지인 '음악신보'에 브라암스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해주었다. 브라암스는 데트몰트의 궁정 피아니스트, 실내악주자, 궁정합창단 지휘자 등을 지냈고, 1862년부터는 빈으로 옮겨 자신의 명성을 점점 더 쌓아 나갔다.
여러 곳에서 교수나 지휘자로 초빙하였으나, 부득이 거절을 하면서 작곡에 전념하였고, 1872년부터 75년까지는 빈의 음악인협회 총무를 맡아 관현악단과 합창단의 정기연주회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의 작품을 연주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으며, 자연 명성도 높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1876년에는 켐브리지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겠다는 통보가 있었으나, 사정상 거절하게 되었고, 79년에는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명예철학박사의 칭호를 받았으며, 1895년에는 오스트리아 황제에게서 '예술과 과학에 대한 훈장'을 받았다.
브라암스가 남긴 4개의 교향곡들은 베토벤 교향곡의 후작이라고 불릴 만큼 고전적인 기법에 충실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고전주의 음악에 자칫 부족하기 쉬운 대위적 양식을 작품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3도 관계조로의 자연스러운 전조형식을 작품에 담아 새로운 조성구조에 대한 일면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한다.
그는 '신고전악파'라 불리울만큼 실내음악에 온갖 힘을 경주한 작곡가였다. 그야말로 19세기에 있어서 최후의 고전적인 작곡가로 추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4개의 교항곡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비중이 너무나도 크다.
그 외에도 오페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그의 가곡은 슈만의 뒤를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가곡은 철두철미하게 낭만적인 작품이었다. 그는 낭만음악 시대의 인물인 만큼 기악곡에 있어서도 뼈대는 고전형식을 취했지만, 낭만적인 정서가 풍부하게 깃들어 있는 것 같다.
브람스의 음악을 말할 때면 언제나 논하게 되는 양면성 즉, 명과 암, 희망과 절망, 엄격함과 온유함 등의 극단적인 두 개의 정서가 교차되어 매력을 낳게 되는 원인의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초기 음악은 베토벤의 영향, 점차 브람스 음악화 브람스가 출생한 그 해는 베토벤이 빈에서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되었다. 또한 바그너가 작곡가의 첫 발을 내딛고, '교향곡 다장조'를 프라하에서 초연한 1년 후의 해이기도 한다. 그리고 멘델스존, 슈만에 의하여 낭만파 음악의 새로운 물결이 크고 힘차게 신선한 음향을 그려내고 있을 시기였다. 브람스는 호른 주자이며 콘트라베이스 주자이기도 한 부친에게 음악의 초보를 공부했다. 다행스럽게도 부친은 자기 아들의 특별한 능력을 간파할 정도의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부친은 자기 스스로 아들의 능력을 감당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거리의 음악 교사에게 데리고 갔으며, 7세부터 10세까지는 오토 코셀, 15세까지는 에두아르트 마르크스젠에게 음악을 배우게 됐다.
이 두 스승의 교육에 의해 브람스는 '브람스적'인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기초를 모두 그의 머리 속에 받아들여 나갔다. 브람스는 바하에 대한 지식을 첫 스승에게, 베토벤의 위대함은 두 번째 스승에게 배웠다.그가 베토벤의 사고방식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는 그의 초기 피아노 소나타 속에 베토벤의 영향이 강하게 표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동시에 그는 베토벤의 영향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작곡가였다. 브람스는 베토벤적인 사고 방식에서 탈피하는 과정에서 바하나 쉬츠 쪽으로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그의 작품의 양식적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다. 베토벤 같은 음악보다는 바하나 쉬츠의 음악 속에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프로테스탄트계의 작곡가였던 그가 쉬츠나 바하로 이어지는 프로테스탄트 독일 음악의 계보를 이은 셈이다.
즉 가톨릭계 작곡가인 베토벤과는 서로 다른 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종교적인 색채가 깃든 브람스, 베토벤, 바하라는 대작곡가들은 큰 유럽의 정신의 공통적 기반 위에 있었다고 파악됩니다. 또한 브람스는 음악과 관련되는 예술 전반에 대해서도 베토벤바하의 지식을 배운 스승들에게서 배웠으며, 그것이 음악의 기술적인 것보다는 브람스가 작곡가로서의 방향을 결정짓게 했다. 낭만파 음악 최전성기에 등장했으면서도 그 물결에 압도당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을 개척해 나간 능력은 두 스승의 좋은 지도덕택이었을 것이다.

 

 주요 작품
 교향곡 ;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기교적인 이중 협주곡',  '교향곡 제1번 다단조', '교향곡 제4번 마단조',   '교향곡 3번 바장조'  가곡 ; '알토랩소디', '승리의 노래', '제1교향곡', '바이올린협주곡(라장조)', '11의 코랄전주곡(오르간곡)',  '대학축전(祝典) 서곡',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비극적 서곡', '현악 5중주곡', '바이올린소나타',  '클라리넷 3중주곡', '클라리넷 5중주곡', '4개의 엄숙한 노래', '독일 레퀴엠', '혼성 4중창',  '네 손 피아노를 위한 사랑의 노래', , '광야의 고독', '죽음, 그 차디찬 밤 작품 121', '왈츠집', '나는 점점 더 고요한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가네', '교회의 마당에서',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매장의 노래 작품 13', '2개의 모테트 작품 29', '피아노 소나타 작품 2번'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 > 독일

>> 연결고리 : 음악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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