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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9-03-31
 제목  하이든(프란츠 요제프 Franz Joseph Haydn, 1732. 3.31-1809. 5.31)
 주제어  [오스트리아] [음악가] [작곡가]
 자료출처  한국 피아노아카데미  성경본문  
 내용

'하이든'은 1732년 3월 31일 남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가까운 로라우라는 빈촌에서 태어나, 1809년 5월 31일 오스트리아의 비인에서 77세로 세상을 떠난 고전 음악의 기초를 닦은 대가이다. '하이든'은 거의 독학으로 음악을 익힌 사람이나, 가장 건실하고 자발적인 음악가가 되었다. 특히, 교향곡이니 협주곡이니, 혹은 현악 4중주곡이니 하는,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근대적 의미에 있어서의 여러 음악 양식을 처음으로 개척한 역사적으로도 커다란 업적을 남긴 작곡가이다.

'하이든'은 부친이 손수레의 수리공이었기 때문에 음악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라나 시골 음악 교사의 불완전한 지도를 받은 후, 8살 때 비인으로 나와 슈테판 교회의 아동 성가대에 들어 갔다. 17살 때 변성한 '하이든'은 이 합창대에서 나와 한때 빈곤한 생황을 보냈으나 이러 는 가운데에도 공부를 계속하며, 특히 에마누엘 바하의 소나타를 어렵게 입수하여 이를 분석 연구했다.

'하이든'은 23살때 처음으로 현악 4중주곡을 썼다. 이 곡들은 모르친 백작에게 인정되어 많은 후원을 받았으며, 이어 헝가리의 가장 권력있고 부유한 귀족인 에스테르하지 공작에게 인정되어 1761년 그의 악단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악단의 책임자인악장이 되었다. 당시 는 귀족 전제 정치시대인 만큼, 누구나 그러하듯이 '하이든'도 귀족사회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히 이행했고, 또한 고용주를 위해 쉴 사이 없이 작곡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그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어 1791년과 1794년에는 영국으로 초청되는 등 외국여행도 잦아졌다.

'하이든'은 선배들의 작품에 내재한 지배적인 공허한 감상을 버리고 그 자신의 주장을 강력 히 내세워 건실하고 순수한 예술을 창조하였다. 그의 음악에는 발랄한 생기와 독창성이 있고, 신선한 자연미가 흐른다. '하이든'은 같은 시대의 모짜르트가 만하임악파의 영향을 받은것과 는 달리, 주로 에마누엘 바하의 <클라비어 소나타>에서 작곡기교를 배웠다. 대부분의 4중주 곡이 가장 과 교향곡, 그리고 최후의 오라토리오 <전치창조> <4계>등은 영원한 명작으로서 하이든의 음악성을 잘 나타낸 작품들이다.

주요작품

교향곡 6번 D장조 "아침" [1761] 교향곡 45번 F#장조 "고별" [1772] 교향곡 94번 G장조 "놀람" [1791]
교향곡 101번 D장조 "시계" [1794]"천지창조" [1798] "황제 4중주곡"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중앙유럽, 서유럽, 오스트리아

>> 연결고리 : 음악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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