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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9-16
 제목  채필근(蔡弼近, 1885. 9.16~1973. 3.17)
 주제어  [목사] [신학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장로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다. 호는 편운(片雲)이다.

평안남도 중화군 동두면 설매리에서 채응빈(蔡膺斌)의 독자로 출생. 어려서 기독교에 입교하여 평양의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1913년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숭실학교내에「청년학우회」를 조직, 회장으로 활동하며, 안창호의 지도를 받았다. 1911년 북간도로 망명하였고, 캐나다장로교 선교부 조사로 경흥ㆍ경원ㆍ온성ㆍ회령 등에서 전도활동을 벌였다. 1913년 평양장로회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16년에 경흥읍교회장로로 장립되었다. 1918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함북노회에서 안수를 받았다. 함경북도 경흥읍 교회에서 전도사·목사로 봉직하다가 1920년 캐나다>캐나다 선교회의 장학금을 받아 일본>일본으로 유학하였다.

 

평양신학교의 정통주의에서 온건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바로 이 때부터이다. 일본에 유학한 채필근은 메이치학원고등학부 문과(1923년 졸)와 동경제국대학 철학과(1925년 졸)에 유학하면서 신학영역을 넘어 폭넓은 세상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25년 숭실대학 교수로 부임하였다.

 

1938년 이후 이화여전 교수로 2년 동안 봉직했으며, 서울의 조선신학교설립에 참여했다가 곧 일제에 의해 재개된 후 평양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평양신학교가 폐교된 뒤 1941년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아 새로 개교한 신학교의 교장이 되고 1943년에는 제32회 장로회총회 대신 일본기독교단 제1회창립총회가 열리면서 제1대 통리(統理)가 되었다. 이로서 그는 친일행적이라는 비판에서 벋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광복이 되자 친일파로 투옥되었다가, 한국전쟁 중 월남하여 피난민 위주의 교회인 1966년에 서울 종로구에 산돌교회(예장통합)를 세우는 등 목회자로 일하면서 신학교에 출강해 강의를 병행했다.

 

그가 신학뿐만 아니라 종교일반, 철학, 역사, 심리학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저술도 남겼던 것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에게는 정통과 진보가 공존하고 있었다. 평양신학교 출신이면서도 조선신학원 설립운동에 관여하였고, 1943년 장로교 총회가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으로 개편되자 초대 통리로 선출되기도 했다.

 

1930년대 초 김재준, 송창근등이 신학지남에 진보적인 글을 발표하고 아빙돈 단권주석 번역에 참여하는등 전통적인 신학이 위협을 받을때에는 그는 교단의 입장에 서기 보다는 진보적인 노선에 있는 이들과 입장을 같이했다. 교회가 단순히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적지 않은 도전을 가져다 주었지만, 교회가 상황과 시대의 변천에 따라 입장을 달리해 교회본질 자체를 퇴색시켰다는 면에서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비교종교학》·《신구약주석 新舊約註釋》등이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도서관 검색 목록(2008년 9월)]

 

[총신대학교 도서관 검색 목록(2008년 9월)]

 

[참고문헌]

朝鮮예수교長老會史記(韓國敎會史學會編, 延世大學校, 1968)
長老敎會史(孫柄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교육부, 1982)

위키사전, 코이딕 2008년 9월 16일 읽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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