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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8-25
 제목  김교신(金敎臣,1901~1945)
 주제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김교신은 민족적 기독교를 주장한 무교회주의 종교사상가이며, 교육가이기도 하다. 1901년 4월 함남 함흥에서, 1919년 함흥농업학교를 졸업하였고 같은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교 세이소쿠영어학교에 입학 1927년 도쿄[東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무교회주의자인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에게 사숙하였다. 귀국 후 영생고보(永生高普)·양정고보(養正高普)·개성 송도고보(松都高普)·경기중학 등에서 박물학(博物學)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1927년 함석헌(咸錫憲)·송두용(宋斗用)·정상훈(鄭相勳)·유석동(柳錫東)·양인성(楊仁性) 등과 함께 《성서조선(聖書朝鮮)》을 창간, 교리전파에 심혈을 기울였고, 양정고보 재직시에는 ‘물에 산에’라는 모임을 만들어 학생들과 서울 근교의 고적과 능묘·사찰 등을 답사하면서 민족의식과 역사감각을 고취하여 독립사상과 자립의지를 심어 주었다.   당시 김교신은 잡지교정으로 눈이 충혈되고,학교일과 잡지발행일을 같이 하느라 과로하여 병이 날 정도로 무척 열심히 일했으며, 혼자서 수금, 주필,사무원,배달부, 기자,교정교열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김교신은 서점에 배달하러 갈때마다 듣는 사람들의 모욕(이것도 잡지냐, 팔리지 않는 잡지를 왜 만드냐),같은 기독교인들과의 갈등[4],총독부 검열로 인한 잡지가 발간되지 못하거나, 폐간되기 직전의 위기와 싸워야 했는데, 결국 1942년 이른바 성서조선의 권두문 '조와'(얼어죽은 개구리를 애도한다라는 뜻) 로 인한 필화사건이 발생하여 옥고를 치르고, 성서조선은 폐간 당하였다.

 

김교신은 성서조선사건이 일어난 1942년 이전부터 조선 총독부의 눈을 피해, 군국주의를 군국주의 국가들을 돼지[5], 북쪽 아이(나치독일의 침략을 당한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와 서쪽 어른(폴란드)을 찢는 미친 셰퍼드(나치독일)[6],미치기 시작한 불독(무솔리니 독재정권치하의 이탈리아)[7]에 빗대는 우화를 통해 비판하고 있었다. 이후 함흥 비료공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1945년 봄 발진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당시 그의 친구대표로 분향한 사람은 김교신과 도쿄유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사회주의자친구 한림(韓林)이었다.

 

 

>> 바깥고리 : 성서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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