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 난 뒤 기독교 사상가인 김교신 선생이 교사로 일한 양정보통학교(현:양정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래서 김교신 선생과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에 일본의 메이지 대학교 법학부에서 졸업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육상 선수로 활약했으며,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마라톤 대회 13개에 참가했고 그 중 10개에서 우승했다. 그는 1935년11월 3일에 2시간 26분 42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웠으며, 이 기록은 1947년까지 유지되었다. 개인 최고 기록은 이보다 더 좋은데, 표준 마라톤보다 더 긴 코스(42.715km)에서는 2시간 25분 14초, 더 짧은 코스에서는 2시간 24분 51초를 기록했다. 손기정은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 42.195km를 2시간 29분 19.2초에 주파해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1944년까지 조선저축은행에서 은행원으로 일했으며, 광복 뒤에는 대한민국의 체육계에 큰 공헌을 했다. 1948년에 대한체육회 부회장, 1963년에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1966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대표단장으로 참가하였다. 1971년에는 올림픽 위원회(KOC) 위원, 1981년부터 1988년까지는 서울 올림픽 조직 위원을 역임하였고,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최종 봉송 주자로 뛰기도 했다. 그는 각각 1947년과 1950년에 보스톤 마라톤에서 우승한 서윤복과 함기용을 훈련했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은 황영조는 손기정이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1983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자서전을 통해 당시 상황과 심정을 밝혔다.
손기정은 2002년 11월 15일에 지병이던 만성 신부전증과 폐렴으로 인해 사망했고, 대전 현충원에 묻혔다. 그에게는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되었으며, 원래 그의 모교가 있던 자리에는 손기정 기념 공원이 만들어졌다.
손기정 공원
넓이는 2만 9682㎡이다.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올림픽 마라톤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를 기념하기 위하여 1987년 9월 18일 조성되었다. 광장과 산책로 2코스·정자 2동·노인정·놀이시설 등이 있다. 체육시설로는 정구장과 배드민턴장·게이트볼장·체육단련장 등이 있다. 손기정 기념비와 손기정 동상이 세워져 있고 양정중고교 교지(校趾)기념비가 건립되어 있다.
손기정 월계관 수
1982년 11월 13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동에 있는 손기정공원은 대한민국의 체육영웅인 손기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체육공원이다. 마라톤 선수였던 손기정은 우승 당시 월계수 화분을 들고 일장기를 가린 채 우승 메달을 받았다. 이때 손기정은 운동선수로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애국심을 보여주었다. 손기정공원은 체육뿐만 아니라 손기정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다.
>> 참고고리 : 일장기 말소사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