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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8-18
 제목  아돌프 히틀러(Hitler, Adolf 1889.4.20~1945.4.30)
 주제어  [독일] [정치가] [독재자]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독일 정치가이자 독재자이다. 오스트리아 부라우나우의 작은 마을에서 세관원의 아들로 출생했다. 1903년 13세에 아버지를 잃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905년 실업학교를 그만두고 미술대학에 진학했지만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에 대한 애국심으로 열광하였던 히틀러는 독일군에 지원병으로 입대하고 무공을 세워 1급 철십자장()을 받았다. 그 후 독일노동당, 즉 나찌의 수상이 되어(1921) 맹렬한 국수주의운동을 전개, 세계공황을 계기로 당세를 확장하고 게르만 민족주의와 반 유태주의자를 자청하며 1933년 독일의 수상이 되었다. 1934년이 되어서는 총통으로 불리었다.

 

히틀러가 활발한 반유대주의자가 된것은 빈에 있을 때부터였다. 반유대주의는 히틀러가 자랐던 오스트리아의 기독교 문화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 빈에는 그리스도교의 한 종파인 동방정교회 신도를 포함한 큰 유대인 사회가 있었는데 빈 사람들은 이 유대인들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히틀러는 1939년 9월 1일, 선전 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시작했다. 이는 스탈린이 히틀러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었고 폴란드를 히틀러에게 나눠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영국프랑스폴란드와의 군사조약이 있었으나 소련의 도움없이는 힘들다는 이유로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 영국프랑스의 대응은 너무 늦었으며 미국은 국내 여론 때문에 고립주의를 천명하며 직접 개입을 삼가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이 기회에 신속하게 공습 및 기계화 부대의 기동력이 결합한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법으로 독일벨기에네덜란드, 룩셈부르크로부터 항복을 받아내었으며 프랑스마저 항복하였다. 1940년 말까지 히틀러는 서부 유럽과 북부 유럽 전체(중립국인 에스파냐, 포르투갈, 스위스, 스웨덴은 제외)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영국에 우세한 공군을 쏟아 부어 폭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게는 패배하였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왕국과 그리스 왕국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내었다. 연합군의 마지막 보루인 영국에 공습을 퍼부어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려는 브리튼 작전이 실패했음에도 히틀러는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을 침공했고, 10월에는 모스크바 근처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독일군은 소련의 매서운 겨울앞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해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함으로써 전쟁은 전기를 맞게 되었다. 나흘 후 히틀러는 미국에 선전 포고를 하기에 이른다. 그 후 동부전선에서의 독일군의 괴멸, 북아프리카 전선의 상실, 암살 미수로 인한 히틀러의 정신 이상 등이 초래한 전선의 혼란, 미국의 참전으로 전열이 더욱 두터워진 연합군의 진공으로 독일은 패망의 길을 걷는다.

 

그는 인종론자로서 유대인 말살정책을 강행했으며, 기독교신앙과 기본적으로 대립되는 세계관을 주장, 결국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키고(39) 전쟁에 패하고 1945년 4월 29일 그는 베를린의 지하호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날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에 자살하였다.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중앙유럽, 서유럽 > 독일

>> 연결고리 :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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