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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5-16
 제목  안의와(安義窩, James Edward Adams, 1867~1929 ) 선교사
 주제어  안의와 선교사 [한국교회사] [내한 선교사] [선교사]
 자료출처  송천교회 100년사  성경본문  
 내용

안의와(安義窩, James Edward Adams) 선교사안의와 선교사는 1867년 5월 2일 미국 인디애나(Indiana)주 맥코이(McCoy)에서 태어나, 1888년 캔사스(Kansas)주 토피카(Topeka)의 워쉬번 대학(Washburn College)을 졸업하였다. 그후 1년간 존 홉킨스 대학(John Hopkins University)에서 수학하고 매코믹(McCormick) 신학교에 들어가 1894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고 YWCA간사로 일하던 넬리 딕(Nellie Dick)과 결혼하였고, 그후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로부터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1895년 5월 29일 가족들과 함께 누나가 활동하고 있던 부산에 도착하여 한국 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배위량 선교사로부터 대구 선교를 인계받은 후 즉시 대구에 부임하지 않고 부산에서 한국어를 습득하고 선교사 실습을 하였다. 그리고 1년 후인 1897년 11월 1일 가족들[부인 Nellie Dick Adams (1866~1909), 아들(Edward)]과 어학 선생
김재수(金在洙, ? ~1941), 그리고 출산을 앞둔 부인을 위해 동행했던 임시 보모[Marie Chase]와 함께 대구에 도착했다. 

안의와가 대구에 부임한 다음 달인 1897년 12월 의사인 존슨[Woodbridge Odlin Johnson, 1869~1951 장인차(張仁車)] 부부가 도착하였고, 1899년 5월 부해리(傅海利) 선교사가 대구의 세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10월 26일 부임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대구 선교기지가 개설되었다.
  이것은 한 선교기지 내에 선교사가 최소한 3명이 되어야 독립된 선교기지로 공인받을 수 있고, 독립적인 예산 편성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구 스테이션의 개설은 대구가 대구,경북 지방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지역 개신교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초기의 대구 제일교회안의와 선교사는 1897년 말 자신과 함께 대구에 온 가족과 어학 선생, 임시 보모 등 7명을 교인으로 남문안 교회(현 대구제일교회)를 창립하였다.

이것이 대구,경북지방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다. 그후 교회는 나날이 성장하여 1900년 봄 존슨 의사의 조수 서자명(徐子明)과 정완식(鄭完植),김덕경(金德卿) 등이 출석하여 세례를 받았고, 이듬해부터 교인이 급증하여 1907년에는 800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교회당 신축 문제가 시급하여 1907년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거의 완공 단계에 이른 1908년 8월의 태풍으로 건물이 붕괴되는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교인 7명으로 시작한 대구 제일교회는 1994년 4월 동산(東山) 위에 웅장한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이처럼 크게 성장하여 현재까지도 대구,경북지방 모(母) 교회로서의 위치를 굳게 지키고 있다. 교회가 위치한 동산(東山)은 선교 초창기의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자리잡았던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크며, 지금은 제일교회를 비롯하여 신명학교,동산 의료원 등이 함께 위치하여 현재도 대구의 개신교 중심지로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당시 개신교 교회는 선교의 일환으로 의료와 교육 사업에 힘썼는데, 이는 근대 서양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던 당시 우리 나라의 선교에 큰 도움을 주었다. 대구에서 최초로 병원이 설립된 것은 1899년 존슨에 의해서였다. 결혼한 지 두 달 만인 1897년 존슨은 부인 파커(Edith M.Parker)와 함께 부산에 도착하여 3일간의 힘든 여행 끝에 대구에 닿았다. 
그후 팔공산 파계사(把溪寺)에서 한국어를 익힌 후 1899년 대구에 온 부해리 선교사와 협력하여 그해 성탄절에 '제중원(濟衆院)'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병원을 개원하였다. 이것이 현재의 '계명대학교 부설 동산의료원'으로 발전하였고, 동산 의료원에서는 지난 1999년 10월 병원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옛 선교사들의 주택을 적극 활용하여 '의료,선교박물관'을 개관하였는데, 이는 대구 지역 개신교의 역사 자료를 종합 재정리하고, 이를 통해 선교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작은 초가집 한 채를 수리하여 열악한 시설과 의료 도구로 출발한 병원은 그후 100년만에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여 대구,경북지방 최고의 의료진과 시설을 갖추고 뛰어난 임상 성과를 거둔 국내 유수의 병원이 되었음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고 생각된다.

안의와 선교사는 1912년 6월 미국 캔사스주 오구한 신학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1923년 병으로 대구를 떠날 때까지 경북 곳곳에서 선교활동을 펴 수많은 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계성학교(啓聖學校)를 비롯하여 많은 학교를 세워 교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당시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의 3대 선교 거점은 평양,서울,대구였으며, 그 대표 선교사로는 마포삼열[Samuel Austin Moffet, 1864 ~1939 馬布三悅],원두우[Horace Grant Underwood, 1859 ~1916 元杜尤],안의와라고 할 정도로 한국 개신교회사에서 그 비중이 매우 큰 인물이다. 그의 장남 안두화(安斗華) 목사는 계명대학교의 창설자로서 대구에 오랫동안 주재하였다. 이처럼 안의와 선교사의 후손들도 모두 한국을 위해 헌신 봉사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 목차고리 : 신학 > 선교 >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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