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운하.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로를 거의 절반으로 단축시켜 유럽 국가들이 인도양을 비롯한 동쪽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게 해 준 운하다. 이 운하가 없었다면 아마 세계 역사는 달리 쓰여 졌을지도 모른다. 길이 162.5㎞, 폭 365m인 이 운하를 건설한 사람이 페르디난드 데 레세피이다. 그는 1854년 이집트로부터 수에즈 운하 굴착권과 조차권을 획득하였고 1859년 4월 공사를 시작한 뒤 10년 만인 1869년 이 운하를 개통시켰다. 그는 이 운하를 뛰어난 비전과 결단력을 통해 완성시켰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도 그는 그렇기 때문에 더 성공시킬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감, 열정, 불굴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성공을 경험한 그가 이번에는 파나마 운하에 도전한다. 그는 1879년 파나마 운하의 공사권을 파나마 정부로부터 획득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1889년 이 공사를 성공시키지 못하고, 그와 함께 그가 운영했던 회사도 파산하고 만다. 10년 만에 수에즈 운하를 완성시킨 그가 이번에는 10년 만에 파나마 운하를 완성시키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왜 그랬을까? 우선 기술적인 문제. 수에즈 운하의 경우 지면이 낮고 모래로 되어있어 파내려가기가 비교적 쉬웠다 (그래서 수에즈 운하의 수위는 해수면과 똑같다). 반면, 파나마 운하의 경우 지면이 해수면보다 월등히 높고 사막대신 호수나 밀림을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에 땅을 파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미국에 의해 완성된 파나마 운하는 갑문식으로 수위는 해수면보다 높다). 하지만 레세피가 이 공사를 시작할 당시 이런 점을 몰랐을리 없다. 파나마가 밀림과 호수로 덮여있다는 것은 한 번만 둘러보아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페르디난드 데 레세피
더 큰 문제는 수에즈 운하를 성공시킨 열정, 자신감, 불굴의 의지가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더 쉽게 말해, 만 49세에 수에즈 운하 공사를 시작할 때의 그와 만 74세에 파나마 운하 공사를 시작할 때의 그는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