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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8-28
 제목  김구(金九, 1876. 8.29~1949. 6.26)
 주제어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으로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海州) 에서 아버지는 순영(淳永)과 어머니는 곽낙원(郭樂園)에게서 태어났다.  호는 백범(白凡)이며, 아명은 창암(昌岩)이고, 본명은 창수(昌洙)였으나 개명하여 구(龜,九)라 하였다.

 

1887년 11세 때 아버지가 집안에 세운 서당에서 한문과 한글을 익혔다. 15세에는 정문재(鄭文哉)의 서당에서 당시(唐詩)와 〈대학〉을 공부하고 과문(科文) 등을 익혔다. 17세때 우리나라 마지막 과거인 경시(慶試)에 응시하기 위해 해주에 갔으나, 매관매직을 보고 과거를 포기하고 돌아와 풍수지리서·관상학·병서 등을 읽으며 훈장을 지냈다. 1893년 동학(東學)에 입교하여 접주(接主)가 되고 이듬해 팔봉도소접주(八峯都所接主)에 임명되어 해주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게 쫓겨 1895년 만주로 피신하여 김이언(金利彦)의 의병단에 가입하였다.

 

1899년에 환속하여 황해도 장연에 봉양학교(鳳陽) 설립을 비롯하여 계몽 교화사업을 전개했다. 1909년 비밀단체 신민회(新民會)의 회원으로 구국운동에 가담하다가 해주감옥에 투옥되었다. 석방후 1919년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경무국장이 되었다.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 의혈청년들을 직접 지도하였다. 1934년 임시정부 국무령에 재임되었고 1939년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다.

1948년 8월 15일까지 제6대, 8대, 10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과 주석을 지냈다. 아호는 창암(昌巖)이고, 호는 백범(白凡)이다. 호는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白)’과 보통사람이라는 범부의 ‘범(凡)’ 자를 따서 지었다. 19세 때 이름을 창수(昌洙)로 바꾸었다가, 37세(1912년)에 이름을 구(九)로 바꾸었다. 처음에는 거북 구(龜)였으나 나중에는 아홉 구(九)로 바꾸었다.

 

1949년 6월 26일, 현역 육군소위 안두희(安斗熙)에 의해 경교장(京橋莊)에서 저격당해 절명하기까지 그는 오로지 나라의 독립과 통일을 위한 삶을 살았다.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되었으며, 저서로는 《백범일지(白凡逸志)》가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우리는 전민족적으로 단결하여 조국의 독립 주권을 쟁취하여야 될 혁명시기에 있는 것이요, 혁명이란 약한 힘으로써 강한 힘을 물리치기 위한 싸움이니 만큼 난관이 허다하다. 그러나 혁명자란 인류사회의 정의와 철석 같은 신념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최후의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계속 투쟁할 뿐임을 알아야 한다. 혁명자는 언제나 낙관적인 태도와 환경에서 생활할 뿐이다.' 〈백범어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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