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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6-08
 제목  일제의 탄압과 한국교회의 저항(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역사)
 주제어  [장로교] [한국 교회사] [일제 탄압]
 자료출처  예장통합총회  성경본문  
 내용

일제의 탄압과 한국교회의 저항

 

 

일제는 강제적으로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이 일로 한국은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만나게 됐다. 한일합병을 눈앞에 둔 장고회공의회에서는 길 선주 장로의 제안으로 11월 추수 감사절이 끝나면 그 다음날부터 한 주간 구국 기도회를 개최키로 하였다. 이 기도회를 통해서 일제의 무서운 침략이 서서히 한반도에 몰려오는 것을 전국교회가 알게 됐다. 노일 전쟁이 끝나자 일본은 독 한국을 식민지로 전환하는데 안간힘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매국노들은 나라를 송두리체 일제에 넘겨주는 슬픈 일을 만나게 됐다. 이때 여기저기서 의병 운동이 일어났으며 상동교회 전덕기 전도사는 도ㅓ끼를 메고 가서 대한문 앞에서 항소문을 낭독하는 등 을사보호조약을 무효화하는 운동을 전해하였다.


한국 교회는 교회가 있는 곳마다 선교사들이 선교부별로 남녀미션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ㅣ켰다. 여기에 이동휘 같은 교인은 사립학교 100개를 설립하는 운동도 전해하였으며 이승훈 장로는 평북 정주에 오산학당과 오산교회를 설립하고 민족심과 애국심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일제는 군사적으로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을 이루자 완전히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됐다. 그리고 서북지방의 기독교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서 105인 사건을 조작하여 많은 기독교인을 구속하고 탄압하였지만 윤산온 선교사 부인은 조작된 사건을 알고 이를 전 세계에 알리자 일제는 할 수 없이 이들을 모두 무죄로 석방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조금도 늦추지 않고 동화정책이란 미명하에 모든 초등학교마다 일본군인 예비역을 동원하여 교사로 채용하고 공포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았다. 여기에 토지조사라는 이름 하에 신고하지 dskg는 토지는 모두 몰수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만들고 몰수 했던 땅을 일본인에게 싼 값으로 팔아 넘겼다. 땅을 빼앗긴 한국인은 할 수 없이 노동자로 전락하고 한강 이남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게 됐으며 그 이외의 지역은 만주 간도지방으로 대거 이주해 갔었다. 조선 총독부 정치는 가면 갈수록 혹독한 정치가 이루어지자 자연히 탄압을 받았던 일부 시민 농민들이 교회로 몰려오게 됐다.
 

 

 

 

>> 목차고리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역사

>> 연결고리 : 장로교장로 교회사, 한국 교회사, 일제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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