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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0-04-22
 제목  일제의 신사참배(神道) 강요정책
 주제어  [일본]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자료출처  박응규 저, 한부선 선교사 평전  성경본문  
 내용

신도는 일본의 토속종교이다. 그러나 "신도(神道)"라는 용어의 기원은 중국에서 비롯되었고, 신도는 일본의 민속신앙과 6세기 중엽에 일본에 소개되었던 불교 사이에 구별이 필요했을 때 처음 사용되었다. 이전에는 모든 숭배의 대상을 "가미(Kami, God)"라고 불렀다.

 

또한 "가미고토(Kamigoto)" 또는 "마트수리고토(Matsurigoto)"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두 단어는 종교적인 의식과 국사(國事)를 의할 때 사용하였다. '신도'는 일본어로 '가미(신;shin-)-노미치(-to)' 또는 '가미(god)의 길'이란 뜻이고, 종종 '신들(gods)의 길로 번역되었다. 기본적으로 옛 신도는 불교 또는 유교의 영향을 받기 전에 일본의 토속 종교였다. 그러나 신도는 메이지(明治) 유신 때 부활하여 황제숭배와 결합되고, 일본 민족주의와 강하게 혼합되면서 일종의 국가 종교로 발전하였다. 일본의 메이지 정부는 국가적 권위와 행정적 결정, 그리고 다른 정치적 과정의 종교적인 합법성의 근거를 신도에 두었다. 1868년에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제국 칙령을 공포하였는데, 그것은 "가미(신들:gods)에 대한 숭배와 종교의식에 대한 경의는 제국의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국가정책의 근본적인 원칙들이다"라고 선포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라는 국가적인 구조 안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황제들이 제국의 조상들, 즉 태양신의 정통 후계자, "아마테라수 오미카미"의 후손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제들은 신적 존재로 간주되었다. 1870년에 선포된 또 다른 칙령에서는 "천상의 신들과 위대한 조상들은 황권을 수립했고, 황제 계승권을 확고히 하였다. 지속적인 황위 계승권은 황제들의 혈통에서 계승되며 그 후손들에게 계승되었다. 종교적인 의례들과 통치는 하나이고 동일하며 무수한 신민들이 연합되었다"고 언급하였다. 그래서 천황은 살아 있는 신(god)으로 숭배되었고, 그는 모든 정치 권력의 핵심이었다.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일어났던 것처럼 국가 통치자의 신격화는 극단적인 민주주의의 가장 급진적인 형태였다. 이와 같은 민족주의, 신사참배의 종교적 요소, 황제숭배, 그리고 사무라이 전사의 길로서의 "부시도"는 메이지 시대(1868년-1910년)에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더욱 촉진되었다. 즉, 국가의 권력을 중앙집권하 하는 것과 외국의 세력들에 대항할 수 있는 국가적인 방어를 증진시키기 위해서였다.

 

일본인들은 이런 신성한 혈통을 계승해 나가기 때문에, 그들이야말로 스스로를 전 세계로 황제의 통치를 확장시켜 나가는 우수한 민족, 심지어는 신성한 민족으로까지 간주하게 되었다. 메이지 시대와 제2차 세계대전 종결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수정된 신도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테노(Tenno)" 절대주의와 우주적인 팽창주의는 일본제국의 군국주의 지도자들에게 침략 전쟁을 부추기는 추진력으로 작용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 정책 아래서 민족주의적인 신도 이데올로기는 소위 황제와 국가에 대한 종교적인 충성심의 표현이라는 가장 아래 군대 확장의 수단으로서 이용되었다. 대만, 한국, 만주, 그리고 중국을 침략함으로 일본제국의 영토 팽창과 군사력의 확장에 따라 신도 사당들이 세워졌고, 점령지마다 신사참배가 강요되었다. 일본 제국의 확장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신사참배 강요는 한국에서 "경찰 병력에 의해 복종을 수반하는 정치적인 합법성"을 위한 "정치 및 군사적 통제의 매개체"로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신사참배 강요정책은 개신교 선교의 명분과 정면으로 격돌 할 수 밖에 없었다. 일제가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신사참배를 조직적으로 강요했지만, 황제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는 예식인 동방요배는 일제의 강점 초기부터 한국에서 강제로 실시되어왔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바로 일본정부는 한국학생들에게 그리고 특별히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일본 황제의 사진에 절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과 선교사들의 반대 때문에 황제에 대한 경례의 규칙적인 실행은 한국에서 계속 될 수 없었다. 한부선은 이 사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증언하였다. 「일본이 한국을 합병했을 때 나는 7살의 소년이었고, 나의 아버지가 황제 사진에 절하는 문제와 관련 된 사건으로 인하여 교회학교 안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8살과 9살이었던 두 학생들이 황제 사진에 절하는 것을 거절한 것 때문에 밤새도록 감옥에 갇혔던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학교에 황제와 황후의 사진을 계속 걸어 놓았을지라도, 더 이상 강요하지 못했던 것은 그 당시 기독교인들의 강한 신앙적 자세 때문이라고 믿는다.」

 

 

>> 목차고리 : 신학교회사 > 한국교회사 > 신사참배

>> 연결고리 : 일본신사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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