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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0-07-06
 제목  한국 선교와 여성선교사들의 사역(발제)
 주제어  [선교] [선교전략회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선교대회] [NCOWE V] [세계선교전략회의] [분야별3]
 자료출처  이정순  성경본문  
 내용

                  한국 선교와 여성선교사들의 사역


                                       이정순: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선교학)교수


                             I. 들어가는 말

  

   21세기 한국교회가 파송한 해외 선교사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다.1) 개신교 선교 역사에서 선교 인력의 2/3정도가 여성이었다. 현대선교에서 있어서 여성은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통계에 의하면, 2010년 1월30일 현재 한국인 선교사 22,130명의 성별 분포는 여성이 11,732명,  남성이 10,398명이다. 교단에서 파송된 남녀 비율은 49:51, 선교단체의 남녀 비율은 45:55로2) 여성선교사의 비율이 약간 높다. 한국교회가 세계 제 2의 선교파송국이 된 데에는 여성선교사들의 공헌이 크며 그들의 사역은 여전히 활발하다.

   한국 여성선교사들의 모습은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쉽게 만날 수 있으며, 그들은 해외선교 역사에 중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여성들의 선교에 대한 기여도가 실제적으로 높아지면서, 여성선교사들은 오늘날 세계선교 사역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동력 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 10만 선교사를 파송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인원을 동원하기 위하여 한국교회는 해외선교의 계속적인 성장과 선교 자원으로 여성선교사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제도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여성 선교사에 대한 인식이 조금 좋아졌지만, 여성선교사의 사역의 중요성과 가치 등 실제적인 면에서는 거의 변화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하여 선교 인력이 낭비되고 있다.

   한국교회가 21세기 세계선교의 지속적인 성장을 고려한다면 선교의 자원으로서 여성선교사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 글은 여성선교사의 사역에 대한 신학적 조명, 선교사들의 사례, 한국여성선교사들의 사역 평가 및 한국교회에 제안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II. 성경의 여성관


  성경 속에 여러 여성들의 활동과 모습을 통하여 구약과 신약의 여성관을 고찰하고자 한다.


1. 구약의 여성관   

  성경은 창세기1-3장에서 남녀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과 남녀의 기본적인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창세기 1장은 남녀 상호간에 대한 일반적이며 총체적 관점을 묘사하고 있다. 창세기 1장 26-28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즉 남성과 여성이 창조와 상호 동등성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창세기 1:283)에서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에게 복을 주신 이후 그들에게 문화명령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정복,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공동사명을 주셨다. 이 문화명령은 남녀가 특권과 책임을 가지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관리 및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2장은 일반적인 남녀 관계가 아닌 부부 관계 속에서 남녀 관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창세기 2장 18-25절에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으므로”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주신다. ‘돕는다’는 개념은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서로 지원하며 동반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3장은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 추방으로 인한 부부관계에 관한 규범과 질서를 묘사하고 있다. 창세기 3장16절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는 말씀대로 남성을 위해 창조된 여성은 그에게 복종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원받은 남녀는 하나님의 은혜로 본래의 관계로 회복되게 되었다.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면서 다른 면으로는 지배하거나 복종하는 형태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성을 노예로 삼아 지배하지 않도록 하였다.4)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이미 여성들을 사사, 선지자로 활용하셨다. 나실인은 하나님께 특별히 헌신할 것을 서약하는 사람으로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었다(민수기 6:2-20). 이스라엘에는 여제사장이 없었으나5) 구약에서 선지자로서의 여성의 리더십은 미리암(미6: 4) , 훌다, 드보라에서 볼 수 있다. 랍비돗의 부인인 드보라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사사로 소개되며(삿4:4), 여성이 ‘부인’으로서 ‘여 선지자’와 ‘사사’라는 이중적 칭호를 가진 것은 성경에서 오직 사사기 4장4절뿐이다. 드보라는 사사로 뽑히기 전에 선지자였다. 그리고 에스더는“...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4:16)”라는 목숨 건 결단으로 민족을 구하였다. 또한 스바여왕(왕상10:1-13)은 솔로몬을 찾아와서 하나님에 대하여 신앙고백을 했다.

   리브가(창24:60)가 이삭에게 시집을 갈 때, 모든 식구들은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라는 축복을 한다(창 24:60). 이후 리브가는 이삭을 통하여 에서와 야곱을 낳게 된다. 이스라엘 12지파는 야곱의 두 부인인 라헬과 레아와 그녀들의 몸종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창 29:31-30: 24; 35:16-20).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출6:20; 민26:59)은 자녀를 잘 양육하였으며(민 26: 59), 아론을 제사장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쳤다. 십보라(출4:24-26)는 모세의 부인이며 성경에 세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내조와 외조 둘 다 잘 하였다. 한나는 구약의 첫 선지자이며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을 낳아 길렀다. 

   구약의 사회 배경이 매우 남성 중심적으로 남성 지향적이고,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종교의식과 율법마저도 주로 남성에게 맞추어 있다.6) 그러나 성경의 이러한 남성 중심성은 여성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니며 신적인 명령도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남녀는 그의 인격을 부여받아 남성과 여성으로 차이(差異)가 있는 것이지 차별(差別)은 아니었다.


2. 신약의 여성관

  예수그리스도와 바울의 여성에 대한 태도와 활동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1) 예수 그리스도와 여성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 아래서 나셨다(갈 4:4). 여성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는 성경의 비유, 기적 이야기, 강해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는 여성의 역할을 인정하셨다. 

   예수님의 선교활동에 여성들이 동행함을 허락하셨으며(눅 8:1-3), 수난과 죽음(막 14: 40), 영광(막 16:3)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인들이 등장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치료해 주었으며(막 1:29-31),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주었고(막 7:24-30, 마태 15:21-30), 죽은 야이로의 딸을 죽은 자들 가운데 일으키셨고(막9: 18 -19, 23-26), 혈루증을 않는 여성을 치유하였으며(막 9:20 -22),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살리셨고(눅 7:11-17), 베다니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서 가르치셨으며(눅 10:38-42), 회당 안에서 절름발이 여성을 고쳐 주셨다(눅 13:10-17).7)

   예수님은 여성들에게 ‘부활’(요 11:21-27)과 ‘예배’(요4:7- 12)에 대하여 여성들과의 대화를 통해 강론해 주셨으며, 메시아 성을 여성에게 처음으로 공개하셨다(요 4:25-26). 여성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현장에도 참여하였다(눅23:49, 55).  

   예수님은 남성이셨고 그 당시에 여성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숙식을 같이할 수 없었던 사회 문화적 관습에 따라서 특별히 남성만을 제자로 삼으셨으나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세베데의 아들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가르쳤던 제자들 중에 있던 한 무리였다.8)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여인(눅 7:36-50)도 예수님을 섬기는 역할을 하였다. 예수님은 그에게 기름 부은 여인을 높이 평가하셨다(막 14:3-9). 예수님은 그의 비유에서 여성들을 핵심으로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여인으로 나타내며(눅 13:34; 마 23: 37), 잃어버린 은전을 찾는 비유(눅15:8-15), 해산할 어머니의 근심을 연상(요 16:21)하시며, 장래 재림의 때를 기다리는 모습(마 24:41; 눅 17:35; 마 25:1-13)에서 여성들이 나타나게 하셨다.

   요엘 2장 28-29절에서 하나님이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부어주겠다는 약속대로, 사도행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남녀 모두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재 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 확장을 위해 남녀 차별 없이 은사를 주어 사역을 맡기셨다. 
  마태복음 28:19, 20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에게...”라는 말씀에서 너희는 남성들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과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다.

2) 바울과 여성

   여성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주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리라“(고전11:11)고 선언하며,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 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주장하였다. 남녀는 생물학적으로 다르나, 남녀의 동등성과 평등을 선언한 것이다.

   로마서 16장 1-16절은 바울은 여성들을 집사, 사도와 동역자로서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그리스도인 중에서 9명이 여성이며, 17명이 남성이다. 바울은 여성을 교회에 추천하였으며(롬 16:1~4), 여성은 바울의 사역 안에서 동역자들이었다(고전 3:9).

   결론적으로 구약과 신약의 증거들을 통하여 남녀 간의 성차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녀의 역할에서 차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계획은 남성과 여성이 기독교 사 역을 포함하여 삶에 모든 영역에서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9) 시68:11에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가 큰 무리라”는 말씀대로 한국교회는 여성의 선교사역이 효과적인 여성인력 활용의 기회가 되며 세계복음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III. 사례연구: 한국에 온 여성선교사들과 해외로 간 한국 여성선교사들


   한국에 온 여성선교사들과 해외로 간 한국 여성선교사들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지면관계상 교단과 선교단체를 분배하여 몇 명의 선교사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한국에서 온 여성 선교사들

1)  메리 스크랜톤(Mary Scranton 1832-1909)10)미국 감리회에서 온 첫 여성선교사

   메리 스크랜톤은 미국 감리교목사의 장녀로 1832년 태어났다. 그는 1855년 사업가 스크랜톤과 결혼하여 외아들 윌리엄 B. 스크랜톤을 낳았다. 그가 40세이며, 아들이 16세 때 남편이 사망했다. 그리고 스크랜톤은 1884년 52세에 미국 감리회에서 한국에 파송하는 첫 여성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나이 53세에 의사인 아들 부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 함께 1885년 2월 3일 미국을 출발하여 일본을 거쳐 1885년 6월 20일 한국에 도착하였다.

   스크랜톤은 서울 정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1886년 5월 31일 학생 1명을 상대로 교육을 시작하였다. 이것이 이화학당(현 이화여대)의 시작이었다. 그 첫 여학생은 1886년 5월에 입학한  ‘김씨 부인’이었다.  그리고 초기 이화학당 앞에 버린 아이를  스크랜톤은 양녀로 삼았으며,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진명여학교를 설립한 여메레,  미국으로 유학한  한국인 최초 여의사  박에스더등이 그의 대표적 열매이다.

   스크랜톤은 주일학교를 한국에 들여오는 공헌을 하였다. 그는 1888년 1월 이화학당 학생들로 ‘주일학교(Sunday School)’를 조직하고 종교교육을 시작하였으며, 한 달 후 주일집회를 시작하였다. 이로써 한국 최초의 ‘여성교회(Woman's Church)’가 이화학당 안에 설립되었다. 그는 전도부인들과 함께 1892년부터 순회전도 사업에 열심을 기울여 서울, 수원, 오산, 여주, 이천 등지에 많은 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그는 공옥여학교로 불리게 될 달성궁매일학교(Day School)설립, 부인 성경학원(이후 감리교 협성여자신학교)설립에  참여하였다. 스크랜톤은 한국여성 교육과 선교의 선구자로서 놀라운 업적을 남기었다.

  

2) 메리 데이비스((Mary Davies 1853-1941) 호주에서 온 첫 선교사

   호주 빅토리아장로교가 파송한 최초의 한국 선교사이자 부산, 경남지방 선교를 위해 온 첫 선교사는 헨리 데이비스(Rev. Henry Davies, 1856 -1890)와 그의 누이 메리 데이비스이다. 데이비스 남매는 한국선교를 자원하여 1889년 8월 21일 멜버른을 떠나 한국으로 향하였다. 헨리 데이비스는 1889년 10월 한국에 도착하여 4-5개월 동안 한국말을 배운 후 길에서 노방전도를 하면서 1890년 4월 부산에 도착하였으나 4월 15일 열병으로 급사하였다. 그가 한국에 온 지 6개월(183일)째 첫 순교자가 되었다. 데이비스의 죽음과 함께 메리도 폐렴으로 고생했으나 치료로 회복한 다음 한국을 떠나 1890년 7월 18일 호주로 돌아갔다. 데이비스의 죽음은 호주의 교회로 하여금 한국선교를 계속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11) 첫째, 유능했던 청년 데이비스 선교사의 갑작스런 죽음은 호주교회로 하여금 한국선교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고, 한국 선교운동에 정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둘째, 청년연합회로 하여금 선교사를 파송하는 조직체를 형성하게 하였다. 그 후 호주선교사를 한국에 파송, 지원하는 운동을 계속하였다.

   메리 데이비스는 한국에서 호주로 돌아온 후 그는 한국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려 있음을 강조하며 한국선교를 지원하는 사람을 위해 써 달라고 50파운드를 기증하였다. 그것이 기초가 되어 1890년 8월 25일 장로교여전도회연합회(PWMU, Presbyterian Women 's Missionary Union)를 조직하였다. 이 조직은 선교운동을 중요한 목적으로 삼았고, “여성들에 의해서 여성들을 선교하는 단체”임을 분명히 했다. 이 PWMU는 1891년 멘지스(B. Menzies), 페리(J. Perry)와 파우셋(M. Fawcett)등 3명의 독신 여성선교사를 시작으로 약 40여명의 여성선교사들을 한국에 파송하여 한국선교운동에 큰 공헌을 남기었다. 12) 메리 데이비스의 업적은 호주장로교회의 한국선교 시작과 성장하는데 동력이 된 것이다.   

 3) 엘리자베스 쉐핑(Elisabeth Shepping 1880-1934, 한국명 서서평)

    쉐핑은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사가 되었다. 그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1912년 광주에 도착하여 광주제중병원(전 광주기독병원) 간호사로 근무하였다. 그 후 그는 군산 구암 예수병원과 1917년부터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였다.

   쉐핑은 외국인의 신분으로 한국의 3·1운동에 관여했다. 그는 피검되어 영어의 몸이 된 애국지사를 방문하고 필수품을 차입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그는 다시 광주로 돌아와 제중병원에 근무하였다.  그는 한국여성들의 문맹퇴치를 위해 광주 이일학교와 전주 한예정 성경학교(현 한일장신학대학교)를 설립하였다. 한일장신대학교는 1922년 6월 2일 광주에서 여성을 위한 전도부인 양성학교로 시작하여 학생들에게 양잠과 직조기술을 익혀 학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22년 12월에  첫 번째 한국 부인 전도회가 광주에서 조직되어, 1925년 전남 노회가 부인전도회를 공식적으로 인준했다.13)  

    쉐핑이 한국 간호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는 일제 암흑기에 대한간호협회의 전신인 조선간호부회를 창립하였으며, 초대에서 11대까지 무려 11년간 회장을 지냈다. 그녀는 동경과 몬트리올을 여행하면서 국제간호사협회에 가입하도록 했으며, 한국여성금주협회를 조직했다. 또한 이 땅에 나환자 치료 시설을 열었던 윌슨선교사를 쉐핑선교사는 도왔다. 애양원은 1932년 쉐핑 선교사의 조선 성역 20주년을 기리며 나환자촌에 그의 헌신을 기리는 비명을 세웠다. 그는 고아 13명을 자신의 딸로 입양하고 나환자 자녀를 아들로 삼았다. 1934년 6월, 그는 자신의 먹을 것을 나눠주다 영양실조로 죽었다. 그의 장례는 광주 최초의 사회장으로 12일장으로 치러졌다. 하얀 소복을 입은 이일학교 제자들이 운구를 맡았고 그 뒤에는 13명의 양딸과 수백 명의 거지, 나병환자들이 따랐다. 그가 사망했을 당시 동아일보(1934년 6월 28일자)는 4단 기사로 그의 사망 기사를 ‘자선(慈善), 교육사업(敎育事業)에 일생(一生)받힌(바친) 빈민의 자모 서서평양 장서’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14) 쉐핑은 한국에서 23년간 불꽃같은 삶을 바쳤다. 그는 진실로 위대한 선교사였으며, 그의 생애와 업적은 신화적이었다. 쉐핑은 항일운동, 교육, 의료, 여전도회와 대한간호협회의 발전 등에 큰 공헌을 하였다. 


4) 와그너 루시(Wagner, Lucy 1928-       , 한국명 왕은신)15)

    와그너 루시는 1928년 3월 21일 미국 미주리 주에서 기독교인 가정에서 2남 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가 12세 되던 1940년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으며 모든 삶을 주님께 드리기로 헌신했다. 그는 미주리 주립대학시절 선교사로 사명을 받았다.

    1954년 침례교 전국여선교연합회가 조직되었다. 1955년 3월 와그너는 미남침례교 해외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10월 한국에 도착하여 2년간의 어학공부를 마치고 한국부인전도회의 일을 시작하였다. 그는 여전도회 활성화를 위해 전국각지에 흩어져 있는 개교회를 방문하여 여전도회를 조직하고 이들을 격려하였다. 1958년 재한선교사 총회에서 “여전도회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루시 와그너와 두 명의 여성 선교사들이 그 일을 담당하였다. 1959년 기관 명칭을 “부인전도회”에서 “여전도회”로 개칭했고, 월간지 이름을 "부인전도회 월보"에서[성광]으로 바꾸었다. 여전도회가 전국교회에서 활성화되면서 산하기관으로 소녀회(GA)를 조직하였다. 그는 여전도회의 지도자를 양성을 위해 교육에 몰두했다.

   1978년 제5차 아시아 침례교 여성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으며, 약 220명의 외국 여성들과 약 600명의 한국여성이 참가하였다. 1990년 8월 11-13일 서울에서 침례교 여성지도자선교대회가, 14-19일에는 제16차 침례교 세계대회가 있었다. 와그너 루시는 여전도회를 위하여 1992년까지 협동총무로 36년간 일하였다.

   와그너 루시는 37년간 한국(1955-1992년)에서 구원사역과 한국침례교회의 여전도회를 세계적인 전도회로 그 위상을 높이는데 그의 헌신적인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5) 사라 베리(배사라, Sarah Barry 1930년-   , 한국명 배사라)16)

     사라 베리는 1930년 1월21일 미국 미시시피 주에서 큰 농장을 갖고 있는 기독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었으나 대학 2학년 때 한 친구에 의해 로마서 성경 반으로 인도되었다. 그는 로마서 1장17절 공부하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했다.

   사라 베리가 대학에 다닐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그는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진 못하지만 선교사로서 사람들에게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겠다고 헌신했다. 1955년 그가 25세 되던 해에 미국남장로교의 파송을 받아 배로 한 달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도착 후 남장로교선교부가 치중했던 호남지역에서 순회전도를 하였다. 그는 과부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봉기술과 성경을 교육하여 전도사로 키우는 선교학교를 세웠다.        1961년에는 학생들을 위하여  광주 대인동 광주대인교회를 개척하였고 같은 해 9월 1일 고 이사무엘(이창우, 202년 사망)과 ‘성서한국, 세계선교’를 슬로건으로 한 UBF (University Bible Fellowship)를 창설하였다. 그는 UBF를 시작할 때부터 세계선교를 목표로 하였다. UBF는 광주를 기점으로 하여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1964년에는 제주도에 첫 선교사를 파송하며 동남아 개척의 첫 관문으로 기도했다. 1966년 봄 그는 당시 서울대가 있던 종로5가 연건동(현 대학로)의 서울대학교 근방에 셋집을 얻어서 1978년까지 12년 동안 학생에게 영어성경공부를 인도했다. 1968년부터 리더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 ‘일용할 양식’이라는 큐티(QT)서를 집필하여 출간하였다. 아마 한국 최초의 큐티였을 것이다. 그리고 체계적인 1대1 성경공부 교재를 개발했다.

   1969년 한국정부가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 등 인력수출을 시작하였을 때, UBF는 3명의 간호사들을 한국 교회 최초의 전문인 선교사로 독일에 파송하였다. 그리고 1977년 이창우는 세계  선교를 품고 미국에 선교사로 파송됐다. 사라 베리는 1978년에 이창우와  동역하기 위하여 23년간 사역했던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그는 현재 UBF 시카고본부에서 32년째 사역하고 있다. UBF는 현재 약1,714명의 한국선교사들을 세계 91개국17)에 파송하고 있다.  

   사라 베리는 성경 중심의 신앙생활과 한국평신도 전문인선교사 파송의 장을 열었다.

  

2. 한국에 온 여성선교사들의 영향력

   한국에 온 여성선교사들은 여러 면에서 다음과 같은 영향력을 보여 주었다.

   첫째, 서구 여성선교사들은 한국여성들에게 복음전도와 교육을 통한 계몽에 초점을 두었다. 그들은 한국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들의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므로 한국인 전도부인(Bible Women)과 함께 동역을 하였다. 선교사 집의 요리사나 가정부가 전도부인이 된 경우도 있다. 여성선교사들은 여성들이 후대의 교육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 예상하고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한 사역에 초점을 두었다. 여성교육이 무시되거나 경시되던 때에 여성도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임을 일깨웠으며, 여성들의 문맹퇴치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여성들의 교육열이 매우 높아졌으며, 교회 내외의 활동을 하는 역량을 키우게 되었다.

   둘째, 의료사업에 중점을 두었다. 여성선교사들의 의료사업은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되었다. 그들은 여성들의 치료에 많은 공헌을 하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한국교회가 성장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셋째, 서구 여성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사역할 당시 한국은 한국전쟁과 저개발 국가로써 문화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헌신과 끈질긴 노력으로 어려운 개척사역에 뛰어들어 선교사역의 큰 진보를 이루는 결과를 나타냈다. 사역이 어렵고 위험한 것일수록 남성선교사보다 독신 여성선교사의 사역 비율이 높았다. 부인 여성선교사들도 가사 일과 자녀 양육으로 인해 남편선교사의 보조자로서 사역에 참여하였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을 따라 헌신적으로 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넷째, 한국의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은 한국여성들에게 고난의 짐을 가중시켰다. 이러한 상황에 복음은 서민과 소외된 한국여성들에게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삶의 서광이었다. 특히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가르침과 인간 상호간의 동등한 관계를 가르침으로 여성들이 올바른 정체성을 갖도록 하였다. 여성선교사들은 가부장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가정 내에서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데 영향을 주었다.

   다섯째, 여성선교사들은 본국 방문 시 더 많은 선교사들을 한국에 보내달라고 호소하여 한국에 선교사들이 더 파송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종국에는 한국선교운동에 큰 공헌을 하였다.

   여섯째, 한국전쟁으로 인한 고아와 극심한 가난으로 인하여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을 설립하여 버려진 아이들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3. 해외에 간 한국 여성선교사들

   많은 여성선교사들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중 타문화권의 원주민을 위한 사역에 참여한 한국 여성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겠으며, 제한된 지면으로 인해 교단과 지역을 분배하여 몇 명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독신 및 홀 사모 선교사

(1) 이름: 김순호18)(1차 중국 산동성 1931년-1939년, 2차 만주1939년 12월-1943년)

   김순호선교사는 한국교회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타문화권 선교사로 파송되었고, 동양 여성 가운데 교단총회의 인준과 장로교 여전도회 인준을 거친 첫 중국 선교사이다.

   김순호선교사는 황해남도 재령출신으로 1931년 9월 11일 제20회 장로회 총회에서 정식으로 중국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는 1934년 8월에 어학공부 후 선교 사업에 착수했다. 1936년 귀국하기 전까지 그는 전 선교지역 17처를 순방하면서 1개월 동안 부녀교리반을 맡아 가르치고 사경회와 부흥회를 인도하였는데 주께 돌아오는 자가 많았다. 

   김순호선교사는 만 5년간 선교지 중국 산동에서 사역하였고, 안식년을 맞아 1936년 8월 귀국하였다. 여전도연합회는 귀국한 그를 ‘만주선교사’로 1939년 겨울에 다시 파송했다. 그는 만주국에서 만주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1939년 12월부터 1943년 9월까지 선교사역을 하였다. 그는 유창한 중국어로 만주 부녀자들을 모아서 성경공부반을 열어 성경 말씀을 가르쳤고, 글을 모르는 부인에게는 중국 언문을 가르쳐서 글을 읽을 수 있게 하였다. 그러던 중 1942년 9월에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개최된 제12회 여전도회 연합 대회에서 만주국 선교사직 사임을 허락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선교사직을 사임하고도 1년간 자비량으로 선교사역을 계속하였다. 그 후 1951년 51세로 김순호선교사는 공산당원들에 의하여 순교 당했다.

   1931년 김순호선교사가 한국 독신여성선교사로서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 중국에 갔다는 것은 한국선교역사에 귀한 이정표이다.


(2) 이름: 김신숙19)(이집트 1977년-2010년 현재)

  · 파송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GMS), 사역형태: 교육 및 제자훈련

   김신숙선교사는 모태신앙이었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개인적으로 구원의 확신을 얻었고, 총신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연호 목사와 결혼하였다. 이연호 목사는 1976년 8월 6일 셋째 딸 에스더를 해산하고 40일 이 후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하였다. 그리고 이 목사는 1977년 3월 이집트사역을 시작하였으며 김신숙선교사와 자녀들은 1977년 8월 이집트에 도착하였다.

   1979년 7월 11일 이연호선교사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애굽인과 수단인 목회자 수양회에 초청을 받고 카이로에서 그곳으로 이동하던 중, 그의 나이 38세에 사막 길에서 교통사고로 인하여 순교하였다. 그 당시 이집트 사막 길은 차선도 없고 교통질서가 전혀 없었다. 김신숙선교사의 나이 32세에 큰딸 6살, 둘째딸 4살반, 셋째 딸 3살 때였다. 고 이연호선교사는 카이로 지역에 있는 미국선교사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 후에도 김신숙선교사는 선교지를 떠나지 않고 현재 31년간 이집트에서 사역하고 있다.

   김신숙선교사의 주요 사역은 신학교 강의 사역과 1991년 10월 17일에 개관한 이집트선교센타 사역이다. 그 사역은 평신도 지도자훈련, 목회자 연장교육, 전도사역과 교회개척, 장애자 지도자훈련, 알샤피아 선교훈련학교이다. 선교센타는 현지인 사역자와 한국인 사역자들이 협력하며 사역을 분담하고 있다. 김신숙선교사는 센터 원장으로서 책임 및 관리와 강의를 하며, 30년 이상 교육과 제자훈련 사역을 하고 있다.


(3) 이름: 이미화20)(1차 남미 순회선교 1979년-1981년, 2차 중남미 벨리즈 1984년-2010년 현재)

  · 파송교단 또는 단체: 1차 오엠(OM)국제선교회, 2차 교회파송, 사역형태: 교회개척

   이미화 선교사는 고 이진휘 목사의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는 1979년-1981년 오엠(OM)국제선교회의 둘로스선교선에 승선하여 영국과 남미에서 순회 선교사역을 하였다. 그 후 그의 나이 42세에 1984년 12월 한국인 최초로 중남미 벨리즈에 입국하였다. 그는 원주민과 난민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믿음 선교(Faith Mission)’를 펼쳐나갔다. 사역 초기에는 미국인 선교사의 집에서 가정부 생활을 하면서 사역을 하였다. 1986년 한해동안 미국 선교단체 ‘아웃 리치(Out Reach)’와 협력선교를 펼치며, 소년원에서 교화사역과 원주민교회 ‘바이블 처치(Bible Church)’사역을 하였다.

   1987년 1월 이미화선교사는 선교관을 완공하고 2년여 동안 원주민 교역자들과 함께 소그룹별 기도회를 이끌면서 다양한 복음의 접촉점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제1회 목회자들의 만남을 주관하였다. 약33,000평에 1990년 9월 벨리즈 유일의 기도원 성전 봉헌 예배를 드렸다. 그 기도원은 각 교단의 전국 청장년 수련회, 교회의 금식성회, 개교회의 영성훈련, 일일수양회, 금식철야기도회, 미국 한인교회들의 단기선교훈련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1991년 5월 벨리즈 수도 벨모판에서 약12-13Km 떨어져 있는 티케틀(Tea -kettle)마을과 센추랄 팜에 1992년 4월 21일 교회를 개척하였고 1993년 2월 새 성전에 입당하였다. 1994년 11월 산타엘레나에 교회 개척하여 1996년 6월 새 성전을 건축하였으며, 1996년 9월에는 레이디빌시에 교회를 개척하여 성전을 건축하였다.

   1997년부터 이미화선교사에 의해 필라델피아 영어권교회, 서반아권교회, 은혜교회, 싼타에레나교회, 크리스챤센타교회, 유나이트빌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기도원이 운영되고 있다. 그는 제자선교부 설립과 쿠바에도 가정교회를 세웠다.

   이미화선교사는 벨리즈에 한국선교사로서 최초로 입국하여 여러 교회를 개척하여 성전을 건축하였으며, 기도원과 제자선교부를 세운 것이 선교적 공헌이다. 


(4) 이름: 김영자21)(인도 1981년 7월 24일-2010년 현재)

· 파송교단 및 단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사역형태: 교회 개척 및 교육

   김영자선교사는 1962년 부산 문화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하여 8년간 방송 생활했다. 그 후 그는 서울에서 아나운 서겸 TV탤런트로 활동하였으며, 친구의 권유로 1974년 성경공부에 참석하여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또한 예수전도단(현YWAM)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았으며 장로교신학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981년 7월 김영자선교사는 인도 ‘타밀나드’주에 도착하였다. 인도에 온 후에 그는 매년 네 번에 걸쳐 전교생 학생 사경회, 한 번의 여름 성경학교를 진행하였으며, 매일 말씀을 짧게나마 전하기 위하여 말씀을 준비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의 사역 중점은 남인도지역의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일이다. 그는 어린이사역을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며, 1990년부터는 기독교정신에 근거한 교육을 하고 있다. 학교는 꾸준히 성장하여 1998년부터는 기숙사를 운영하였다. 또한 문맹퇴치를 위하여 야간학교를 23개 이상 개설하였고, 교회개척사역을 하여 현재 2개의 교회가 독립하여 성장하고 있다. 1983년-1987년까지 대학생 성경 공부는 어려운 과정이 있었으나 3명으로 시작한 성경공부가 3년 반 동안 40여명으로 성장하였다. 김영자선교사가 1990년 시작한 학교는 유치원과정부터 8학년까지 있다. 

   2009년 현재 트리니티마티학교에 약 850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김영자선교사는 약 30년간 남인도에서 교육을 통한 선교사역에 주점을 두고 있다.  


(5) 이름: 김자선22)과 강정인(필리핀 1986년-2010년 현재)

· 파송교단 및 단체: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사역 형태: 교회개척, 교육

   김자선선교사는 1976년 5월 예수님을 영접하였으며 창세기 12장 10-20절 말씀을 통하여 중생의 체험을 하였다. 고신교단 최초 평신도 여성선교사 김자선은 1986년 8월15일 고신총회 선교부 파송을 받아 현재 필리핀 북쪽 까가얀의 도청 소재지인 뚜게가라오(Tuguegarao)에서 사역하고 있다. 김자선 선교사가 1986년 먼저 파송되었고, 1991년 강정인선교사가 합류하여 두 명의 독신 여성선교사가 팀으로 사역하고 있다. 두 여성선교사는 뚜게가라오와 라굼등지에서 17개 교회와 17개의 기도처를 위해서 사역하고 있다.

   라굼은 지형학적으로 육로로 닿을 수 없는 산간계곡이며 정글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김자선선교사와 강정인 선교사는 축호 전도를 하였고, 1990년 12월 2일에 첫 주 교회 개척예배를 드렸다. 제1 라굼 교회에서는 성경공부 2년 뒤엔 '91년 12월 초 개척후 2명의 신학생을 배출하였다. 한 교인이 교회부지를 헌납하여 전도, 등록, 레코드 체크, 간증서 검토, 방문, 순회 성경공부, 정기 모임을 중심으로 교회개척이 되었다. 뚜게가라오 교회를 모교회로, 제1 라굼교회, 제2 라굼교회, 제3 라굼교회, 엔릴레의 로마교회, 제4 라굼교회, 제5 라굼교회등 현재 7교회를 개척하였다. 예배는 김자선선교사가 직접 7지역을 돌며 매주일 인도하였다. 까비테 장로교 신학교에서 3, 5년 공부한 후에 3명의 목사가 배출되어 각자의 교회를 섬기고 있다. 의료봉사(Medical Service)는 1997년부터 고신 대학교 복음병원 의료팀의 후원으로 매년 구정을 전후해서 단기 방문 사랑의 봉사가 행해지고 있다.


(6) 이름: 방혜숙23)(가봉 1991년 9월-2010년 현재)

· 파송교단 및 단체: 기독교 대한 성결교, 사역 형태: 교육과 교회 개척

   방혜숙선교사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대학 졸업 후까지 구원의 확신이 없어 방황하였다. 1979년 7월 교회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던 순간 진리를 깨닫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였다. 그리고 그는 마태복음28장19~20절을 통해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1991년 9월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방혜숙선교사는 대학교에서 불어를 전공하여 불어권인 가봉에서 사역하고 있다. 그는 전도, 가르치는 일, 번역, 주일학교, 캠퍼스 사역, 어린이 사역, 현지인과의 협력으로 개척교회를 돌보며 사역하였다. 1992년 그는 혼자서 전도 양육하여 연결된 사람들을 다른 교회로 보내고, 까페리아스라는 외딴 지역에서 교회를 돌보며 유치원을 운영하였다.

   1993년 5월부터 방혜숙선교사는 멜렌지역에 주민을 위한 교회인 동시에 멜렌국교와 중. 고교 학생을 위한 성전 건축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였다. 멜렌초등학교는 가봉복음교단에 속하였다. 그는 미션스쿨다운 바른 신앙교육을 위해 매일 아침기도회를 인도하며 오후에는 10반의 학생들에게 들어가 30분씩 성경을 가르치며 전도하고 있다. 그는 몇 명의 학생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며 제자화하여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를 통하여 가봉에 올바른 제자로 영적 지도자를 세우는 데 힘쓰고 있다.

   방혜숙선교사는 다른 한국선교사와 복음교단의 협력으로 신학교를 세우고 가르치는 일에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장애우를 위한 아께베 교회, 소두코교회, 랄라라 교회는 축구선수들의 컨퍼런스 홀을 빌려 예배드리며 성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방혜숙선교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에서 파송 받아 사역하는 김상봉, 이필귀 부부선교사와 파송교단이 다르지만 선교지에서는 서로를 귀한 동역자로 여기며 오랫동안 아름답게 동역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교육과 교회개척을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

    

2) 한국 부인선교사

(1) 이름: 임옥희24)(1차 1957년-1990 대만, 2차1995-2000년 호주 개척교회 봉사)

· 파송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고신), 사역형태: 교육, 제자훈련

   임옥희선교사는 1932년 그의 나이 12세 때에 보이열(Boyer E.T, 1893-1976)선교사에게 전도를 받은 후 세례를 받았다. 1940년 12월 김영진과 결혼하였으며, 1957년 9월 17일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에서 대만으로 파송 받았다. 그들은 1958년 5월 14일 부산을 출항하여 5월 16일 대만에 도착하였다.

   임옥희선교사 부부는 33년간의 대만에서 신죽 남문교회 설립, 방송전도, 청소년 선교와 수양회 인도, 여전도회 지도와 장애인 선교, 선교관 건립, 신학연구반 운영하였다. 19

63년-1969년까지, 죽동교회설립, 산지인교회 재건축, 타 선교부와 협력으로 신죽에 칼빈연합신학교를 설립하였다. 1960년 1월 3일-9월18일 동안 시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김영진선교사는 성경을 강의하였고, 임옥희선교사는 오르간을 치며 찬송을 지도하였다. 그의 음악적 재능과 깊은 신앙심은 남편 김영진선교사의 사역에 누구보다도 큰 도움을 주었다. 1966년 신죽에 개교한 칼빈연합신학교에서 임옥희선교사는 교수로서 교회 음악을 가르쳤으며, 1967년에 찬송가 ‘신천시가’를 편찬할 때 현지 교회를 도왔다. 1970년-1975년까지 대북에 충효교회와 중역에 교회를 설립했다.

   1976년-1982년까지 기독교 개혁신학교를 설립했다. 찬송가를 편찬해 현지인들의 정서에 맞는 신앙교육에 힘썼으며, 교회 헌법을 제정하고 도원교회를 설립했다. 1976년 화원교회 교인들은 임옥희선교사의 지도를 받아 특별 노래선교단을 조직하여 한국 교회를 방문하였다. 1990년 9월 19일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 제 40회에서 제 1호 김영진 선교사가 은퇴함으로 33년간의 대만선교를 마치고 고신 해외선교부에서 초대 총무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임옥희선교사 부부는 대만에서 13개의 교회를 직접 개척하였으며 노회 조직 및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후 임옥희 선교사 부부는 1995-2000년 중국 선교사로 떠난 딸 김란의 자녀들을 돌보기 위하여 호주로 이주하여 개척교회에서 봉사하였다. 2001-2007년 임옥희선교사는고신 전국여전도회회관 내의 ‘안나의 집’에서 생활하였고, 그는 2007년 2월 88세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임옥희선교사는 자신의 은사를 활용하여 남편의 선교사역을 풍성하도록 하였다.


(2) 이름: 김복향25)(페루 1987년-2010년 현재) 

· 파송교단 및 단체: 1차SIM (Serving Inland Mission) 2차 대한장로회총회(GMS), 사역형태: 교회개척

   김복향 선교사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초등학교 2학년부터 교회에 갔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전라남도 진도의 오래된 교회에서 8년간 단독목회를 하였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전 세계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비전을 갖게 되었다.

   1987년 김복향선교사는 SIM선교회 선교사로서 39세에 독신으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는 4년간 혼자서 선교센터를 세우고 기틀을 다져나갔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선교센터의 일을 돕기 위해 김병균 선교사가 왔으며, 한국 파송교회의 중매로 그들은 결혼하였다.

   김복향 선교사 부부는 교회개척, 탁아소와 직업훈련소 운영 등의 사역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어린이와 인근 주민, 선교센터에서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아침과 점심을 제공하고 있으며 직업훈련센터를 개소하였다. 이 훈련센터는 페루 문교부의 위탁교육기관으로 운영하며 컴퓨터, 용접, 편물, 봉제, 미용 등을 가르친다. 사라 식당은  극빈층을 위해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며 아레키파의 달동네와 행려병자수용소를 방문하여 휠체어를 고쳐주기도 한다. 아레키파시의 산동네 헌터시에는 큰 빈민촌으로 물과 전기, 의료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곳이지만 시립 탁아소가 18개 있다. 이들 부부는 18개 탁아소를 순회 방문하여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상담도 한다.

   해발 4,500m의 비라코 인디오마을은 의료 혜택이 전혀 없는 지역이므로 김복향선교사 부부는 직접 약품 상자를 들고 다니며 인디오들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있다. 그들에 의해 세워진 비라코교회에는 인디오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활동 시설을 갖추고 있어 선교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NGO단체를 설립하여 2005년 7월 '이동 교회' 버스를 제작하여 볼리비아, 파라과이까지 방문하였다. 2007년도 기독교 음악학교를 위해 교실 3동을 기술학교를 증축하였으며, 초교파적 연합전도사역으로 찬양사역을 하고 있다.

   김복향선교사 부부는 통전적 선교사역으로 현지인들을 섬기고 있다.


(3) 이름: 하천사(본명: ㅊ ㅁㅎ)26)(파키스탄 1991년 9월-2010년 현재)

· 파송 단체: SIM(Serving Inland Mission)선교회, 사역 형태: 제자훈련,

   하천사선교사는 중학교 2~3학년 때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그리고 1990년 2월 독신선교사로 파송되어 91년~94년까지 파키스탄에서 사역하였으며 1995년 안식년에 한국에 들어와 그 해 6월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1995년 7월, 남편과 함께 파송을 받아 현재 파키스탄에서 사역하고 있다. 그는 1991년 처음 파키스탄을 밟았을 때 보여 주셨던 하나님의 구원의 큰 그림(이사야 49)을 따라 사역하고 있다.

   하천선선교사가 사역하는 파키스탄의 북쪽은 2005년 지진 이후 하나님이 문을 여셔서 NGO와 협력하여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무슬림 여성들을 대상으로 기술학교를 열어 현지 교회와 협력 사역을 하며, 세미나와 상담을 통하여 접촉하고 있다. 무슬림 여성들은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불화, 자녀 교육, 결혼에 관한 고민 등을 하천사선교사에게 털어놓고 있다. 그는 교회 사역에서도 말씀을 삶과 연결해서 나눌 때에 성령께서 교사들과 아이들을 만지시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2007년 11월에 새로 이전한 교육센타에는 어린이 9명과 여성 45명이 등록하여 컴퓨터, 영어, 문맹퇴치교육을 받고 있다. 12월 중순에는 교육생들이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 발표회를 하였다. 지금도 하천사선교사 부부와 1남 1녀의 자녀들과 함께 사역하고 있다.


(4) 이름: 김영이27) (남태평양 피지 1992년 2월-2010년 현재)

· 파송교단: 기독교한국침례회해외선교회, 사역 형태: 간호사 사역, 교회개척

   김영이선교사는 시골 교회의 주일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늦게 소명을 받은 김영이 선교사는 40세가 넘어서 먼저 선교지에 간 남편을 따라 선교지에 갔다. 남편이 떠난 지 2년 반 후 시어머니를 홀로 한국에 남겨 두고 김영이선교사는 피지를 향하여 떠났다. 그는 피지에 도착하여 피지의 수도 수바의 제일 큰 종합 병원에서 의료 선교사로서 임상병리기사로 3년 6개월 동안 사역했다. 그리고 그는 병원사역으로 바쁘지만, 틈틈이 남편의 전도와 성경 공부에 동참하며 찬양을 인도했다. 때때로 집에 신학생들을 초대하여 음식대접, 이발, 환자치료, 그리고 필요시 차량 운전과 주일날 신학생이 개척한 교회에서 예배와 찬양 사역을 돕고 있다.

   김영이선교사 부부는 신학교 사역과 더불어 전도를 하며 교회개척을 하였다. 그들은 1994년 5월 인도인을 대상으로 인도인 집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그리고 1994년 11월 당시 목회자가 없는 한인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섬겼다. 주일 오전에는 한인교회 예배 인도, 오후에는 인도인 교회, 신학교 사역, 그리고 2년 반 동안 남태평양에서 참치 잡이를 하는 한국선원들을 위한 무선 통신예배를 인도하였다. 그 후 새로운 목회자가 한인 교회에 부임하였고, 이에 선원예배도 그만 두었다.

   매 주일 현지인 교회 예배 후, 김영이선교사 부부는 100명의 교인들에게 14년째 급식사역을 하고 있다. 교회가 빈민 지역에 있기 때문에 식사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매년 12월 성탄절 전에 가난한 이웃 50가정을 초청하여 성탄 선물과 식사를 제공하며 말씀과 찬양 등으로 위로하고 있다. 또한 인도인들 중 결손 가정 학생들을 돌보며 결혼시켜 자립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인도인 교회와 신학교에서 가르쳤던 신학생들을 훈련시켜 통가, 사모아, 뉴질랜드에 보내서 그들이 목회를 하도록 하였다. 2005년부터는 김영이선교사는 선교 유치원에서 3-5세의 어린 생명들을 돌보고 있으며, 늦게 소명을 받은 남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5) 이름: 장캐롤(본명:이ㅇㅁ)28)( 중동 2001년 1월-2010년 현재)

· 파송 단체: 웩(WEC)국제선교회, 사역 형태: 의료사역 

   장캐롤선교사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어머니께서는 신앙생활을 하셨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인 12살 때 장래 희망으로 의료선교사가 되고자 하나님께 서원하였으며, 후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는 선교지에서 국민보건 및 의료를 통해 중동 복음화 할 뿐 아니라, 현지인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NGO로서 00정부와 협력하면서 1차 보건 및 의료사역을 하고 있다. 또한 여러 나라에서 온 무보수 의료진들(의사, 조산사, 간호사, 실험실 기사 등)과 함께 중동의 여성과 어린이들, 가정의 건강을 위한 1차 보건의료사역을 담당하며 진료와 건강교육, 현지인 의료종사자를 훈련시킨다.

   장캐롤선교사는 진료를 통하여 가족단위로 접근해서 가족 전체, 특히 가장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지면, 복음화에 더 효과적이라 기대한다. 특히 그는 의료를 통한 신뢰를 구축하고, 일대일 개인 전도를 통한 예수님을 전하여 구원의 확신을 갖도록 돕는 전략으로 사역하고 있다. 그의 첫째 사역은 사역지가 이슬람 국가이므로 매일의 새벽기도, 일요 기도회, 화요 기도회를 통하여 기도사역을 하는 것이다. 방문사역으로 이웃, 친구, 환자, 여자 교도소를 방문하고 있으며, 특히 현지 문화 중 하나인 오후 티타임 시간에 이웃을 방문하여 구원에 대해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지려고 한다.

   장캐롤선교사의 남편선교사는 선교지에 나가기 위하여 간호학원을 다녔고, 간호사 자격증을 갖고서 같은 병원에서 사역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남녀 구분이 확연하기 때문에 남자간호사가 필요하고 이에 효과적으로 사역하고 있다.


         IV. 한국 여성선교사들의 사역 평가 및 한국교회에 제안


   앞서 살핀 대로, 한국교회의 선교가 짧은 기간 동안 발전하는데 있어서 한국여성선교사의 순종과 헌신이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교회의 선교가 지속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여성선교사를 위하여 제도적이며 체계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으로 실행되어야 만 한다.


1. 한국 여성선교사의 사역에 대한 평가

   남성만이 할 수 있는 몇 분야의 일을 제외하고는 여성선교사들은 남성들과 대등하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한명의 여성선교사가 사역지에서 한 가지 사역에만 참여하는 경우 보다는 대부분이 2-3개의 사역을 중복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명의 여성선교사가 교회개척과 함께 교육에 참여하기도 한다.


1) 긍정적적인 면

   첫째, 다양한 교육이다. 한국 여성선교사들의 사역은 대개 신학교, 교회, 중고등학교 종교시간에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운영하여 어려서부터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인 사역자로서 비자받기가 어려운 나라에는 성경 외에 컴퓨터, 영어교사 및 음악교사 등으로 사역하고 있다. 현지여성들을 도와서 여성교육기관, 여성의료기관, 파손가정을 위한 여성난민 피난처 등을 세워서 여성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며 인터넷 웹 디자인을 현지인 남성들에게도 가르치고 있다.

   둘째, 건강관리 및 건강보조이다. 의사와 간호사, 조산원등으로 사역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성선교사가 의료전문인이 아니어도 한국에서 의사나 간호사를 단기간 초청하여 현지인들에게 봉사하게 하며, 또한 현지인 인사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그리스도인 의사들과 교제를 통하여 의술을 배우고 참관하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 무슬림 여성을 위한 사역이다. 이슬람권 사회에서 성차별이 심한 지역에서는 여성선교사가 아니면 여성들과의 교제와 만남은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다. 아무리 능력과 은사가 많은 남성선교사들이라 할지라도 무슬림 여성을 만날 수는 없으며 따라서 복음을 전할 수도 없다.29) 한국여성선교사들이 무슬림 여성들을 위하여 다양한 지역에서 NGO와 의료 사역을 통하여 교제를 구축하여 복음을 직간접으로 전하고 있다.

   넷째, 상담자로 사역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사람이 있는 곳에는 문제가 있고 사람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때로는 누군가와 그 문제를 나누며 올바른 인도를 받기 원한다. 한국 여성선교사들은 헌신적인 사랑으로 현지인 여성과 아이들을 상담하며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다섯째, 행정사역이다. 독신 여성선교사나 부인선교사가 선교지의 사무실에서 팀사역자의 일원으로 행정을 담당한다. 여성선교사가 행정 사역에 필요한 훈련이 되어있으면 그들 고유의 세심함과 따뜻함으로 행정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여섯째, 사회 체육 강사, 탁구, 배드민턴 등의 스포츠 선교사로 그 국가의 스포츠 분야에 기여하므로 선교사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일곱째, 교회개척, 사회사업 및 구제사역 등이다. 한국 여성선교사들의 선교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은 복음 전도와 교회개척, 성경번역, 고아원이나 길거리의 어린이를 위한 사회 후생제도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그들은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영적인 교육과 함께 사회적인 면에서 그들의 삶을 변화 시키고자 사회적 교육을 통한 선교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 여성 선교사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 교회와 교육기관들이 설립되었고, 이를 통하여 여성이나 아이들 뿐 만아니라 그들의 남편과 친척들도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 문제점

   한국여성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사역에 헌신과 열정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다음의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첫째, 글로벌 시대의 선교는 한국선교사들끼리만 사역을 잘 한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선교사의 사역에 대한 평가는 현지인이 한다. 따라서 선교사는 현지교회의 지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다른 나라에서 온 선교사들과도 네트워크를 잘 형성하여야 한다.

   둘째, 선교회들과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팀 사역을 권장하며 선교사들 간에 동역 관계를 형성하여야 한국 선교는 선진화될 것이다. 선교지에서 선교사의 인간적인 야심과 파송단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교사들 간에 지나친 경쟁심에 노출되고 이로 인해 관계가 불편해지며 불협화음이 있는 모습은 선교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다. 선교사들은 공동의 비전을 수행하기 위하여 팀 사역을 하고 한 지역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선교사 각자가 갖고 있는 은사를 활용하여 인력낭비와 재정의 중복투자를 막아야 한다.

   셋째, 여성선교사들도 선교철학을 가지고 사역적 책무와 재정적 책무에 투명하여야 한다. 책무를 통하여 선교를 지원하는 교회나 개인들이 선교사를 더욱 신뢰하게 되므로 결국에는 장기적으로 선교사역에 더 힘을 얻을 수 있다.

   넷째, 한국여성선교사들 중에는 본국에서의 사역 경험과 훈련부족으로 인하여 선교지에서 사역의 추진력이 약하다. 또한 평신도 선교사는 선교지로 파송되기 전에 전문인사역자로서 사역훈련이나 신학훈련을 받지 않은 경우가 있다. 장기선교사는 안식년동안 전문 훈련이나 신학 또는 선교학을 공부하여 현지인을 양육하는데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어져야 한다.

2. 한국교회의 인식전환 필요

   한국교회의 패러다임 전환은 필연적인 과제이며, 여성선교사의 성에 따른 인식격차가 너무 많아 제도적 장치보다 인식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첫째, 세계선교 상황에 선교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므로, 여성 선교사가 더 필요하며 중요함을 한국교회가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여성선교사를 선교 인재로 가치를 인식하여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선교사에 대한 불평등이 여성선교사의 중도 탈락과 선교후보생 지원 감소 현상을 가져오고 있다. 한국교회가 선교지 사역에서 있어서 남성선교사 중심으로 후원하는 등 불평등 요소가 많이 존재하고 있다.

   둘째, 여성선교사의 사역의 효율성이다. 21세기 세계인구  68억의 1/4이 되는 무슬림들을 무시할 수 없으며, 그중 23%인 약 8억 무슬림 여성을 우리가 세계복음화를 고려할 때에 간과 할 수 없다.

   셋째, 해외선교의 주요 동력이 되는 여성선교사의 숫자 증가가 답보상태에 있다. 오늘날 가정에서는 한두 명의 자녀를 가진다. 남성들이 외아들인 경우에 부모님의 간청으로 선교지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선교사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채 울 수 있다.  

   넷째, 한국 선교의 발전을 위해서 교회들은 선교사에 대한 기대 수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또한 선교사 연장교육 등을 통해 선교사들이 글로벌한 지도력을 갖추어 가도록 배려해야 한다. 선교사 연장교육 지도력개발 프로그램 등에 대한 비용은 선교사들의 고정 선교비에서 부담하는 것이 부담이 되므로 특별히 파송 교회에서 해당 선교사들의 발전을 위해 추가적인 재정 지원을 필요가 있다.

   다섯째, 한국 교회들이 여성선교사들의 생활뿐 만아니라 현지복음화를 위한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선교지 연구와 선교사들 간에 네트워크 다른 나라에서 온 선교사들과의 네트워크 사역을 지원함으로써 선교의 전문화를 이루어야 한다

   여섯째, 한국교회들은 선교사들 보호에 방임만 할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관리로 전환하여야 한다. 한국여성선교사들은 언어 습득, 직접 사역, 현지인과의 관계 등이 강점이다. 그러나 약점으로는 목회적 돌봄, 현지체제, 후원교회 및 본국 선교부와의 관계 등이다.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사역체계가 필요하다.


3. 한국교회의 제도적인 면

   한국교회의 제도적인 면에서 여성 선교사들의 생활과 효과적인 사역을 위하여 인사정책, 의사 결정, 지도체제와 관리정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1) 인사 정책

   첫째,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에 여성선교사들이 크게 기여함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여성선교사는 남성의 사역자의 협력자나 보조자가 아니라 팀 사역과 동료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사역에 참여하도록 격려하여야 한다.

   둘째, 독신 여성선교사에 대하여 가족 선교사의 경우처럼 돌봄과 관심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부인선교사에게도 자녀(MK)교육을 포함하여 그의 문제와 필요가 무엇인지 개인적인 관심을 표현해야 한다.

   셋째, 선교지에서 독신 여성선교사나 부부선교사가 동등한 위치를 갖도록 행정적인 체계와 공동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한다.

2) 의사결정에 관한 정책  

   선교본부는 의사 결정 과정에 여성선교사를 포함시켜 그들의 의견이 전달됨을 문서 또는 인터넷을 통하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위하여 교단 선교부와 선교단체는 여성부의 직제를 신설하여 총체적 의견 수렴과 정책들이 결정되도록 한다.

3) 지도체제에 관한 정책

   능력과 은사가 있는 여성선교사의 리더십을 인정하여, 여성선교사를 선교회의 이사나 리더십 위치(대표나 부서 팀장 등)에 임명해야 한다.

4) 선교사 관리정책

  첫째, 한국 선교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서는 여성 선교사를 다방면으로 돌보고 후원하여야 한다.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을 파송해놓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인 관심과 돌봄으로 선교지 선교사들이 계속해서 선교에 매진할 수 있도록 격려하여야 한다.

  둘째, 노후 보장과 은퇴 후 대책이 현실적이어야 한다. 선교지에서 20년 이상 사역한 여성 선교사들에게 국내 주택과 생활비를 확실하게 보장하여야 주어야 한다.

  셋째, 여성선교사가 안식년이나 일시 귀국한 경우 머무를 수 있는 장소, 재충전, 건강진단의 기회를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안식년 기간에 영적 재충전을 위하여 선교사가 소속된 교단이나 단체가 아닌 다양한 수련회나 세미나에 참석하도록 권장한다.

  넷째, 여성선교사들의 사역을 자료로 기록하여야하며,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 서적, 상담자나 멘토와의 만남 주선, 뉴스 레터를 발행하여 여성선교사들의 사역을 의미 있게 만들고 향상 하도록 도와야 한다.

   다섯째, 선교지에서 남녀선교사들이 팀으로 사역하는 경우 선교사들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업무 분장과 보고 체계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선교사들 사이에 현지에서 경쟁심보다는 팀사역과 협력 지향적으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체계적 재정후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여성선교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선교사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남성중심의 사역과 남성우선 지원을 탈피하여야 한다.

   일곱째, 여성선교사들은 자기의 은사와 선교지의 필요에 따라 사역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적극적인 후원이 있어야 한다. 21세기 선교는 특별히 기독교선교사들이 환경악화, 에너지 자원의 감소화, 민족적 갈등, 여성과 소녀에게 가해지는 억압, 세계화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반응을 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30) 이와 같은 상황에 전문성을 갖추어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 개척 외에 다양한 형태의 선교 사역을 인정해야 한다.


4. 여성선교사 활성화를 위한 제안

   첫째, 정기적인 상담과 세미나를 통하여 여성선교사들의 정체성과 자존감 회복을 돕는다.

   둘째, NCOWE, 선교대회와 세미나에서 여성선교사들이나 여성선교지도자들을 강사와 발표자로 세워 그들의 사역보고 및 발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적극 제공하여야 한다.

   셋째, 여성과 사역에 관한 성경적 이해를 위한 교육과정, 인격개발, 사역개발과 전략개발을 위한 세미나와 포럼 등을 개최하여야 한다. 21세기 한국교회의 선교정책과 전략을 개발하기 위하여 초교파적인 두뇌집단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성공한 기업체에는 연구 개발부서가 있다. 연구개발이 없이는 장기적인 발전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교단선교부나 선교단체가 세계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이런 인식과 자각이 모자라다.

   넷째, 부부선교사는 남편 중심의 사역보고 보다는 부인선교사들에게 기도서신의 일부분이나 본국 방문 시 사역보고에서도 보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부인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가족과 가사에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선교사역에서 부인 선교사들의 업적은 간과되거나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여성선교사들만의 모임을 전문성을 갖추어 정례화 한다. 남성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매해 개최되는 노회나 선교사회에 참석코자 1-2년에 한번 고국을 방문하여 파송교회나 후원자, 가족과 친척들을 만날 기회를 짧은 기간이라도 가진다. 그러나 부인선교사들은 안식년이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교단이나 파송교회의 눈치를 봐야한다. 독신이든 부인이든 여성선교사를 위한 대회나 세미나 개최를 매2년 마다 정례화 하여 여성선교사들 간에 서로 도전과 위로가 될 것이다.

   여섯째, 여성 선교사가 개인적으로 대형 프로젝트를 실행하면 재정 부담이 크지만 선교사들이 합동으로 하면 더 효율적이다. 이러한 부분에 큰 선교단체나 대형교회들이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한국 선교가 보다 균형 있게 발전할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일곱째, 여성선교사들의 사역이 발전하는 데에 한국 교회들의 역할이 주도적이어야 한다. 교회가 선교의 주역이며 인적 물적 자원을 공급하는고이므로 한국 교회의 선교 이해와 헌신의 정도가 한국 선교의 수준과 질을 결정하게 것이다. 한국 교회가 개교회주의 선교운동보다는 여러 교회가 협력하며 힘을 모아 여성선교사를 지지하여야 한다.

      

                             V. 나가는 말


   21세기의 세계복음화는 여성선교사의 사역과 역할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여성 선교사의 사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선교의 사명을 주셨으며, 사역에 차이점을 두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남녀를 동일하게 사용하신다. 선교현장에서 남녀가 결혼의 유무와 관계없이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계복음화를 위하여 경쟁자가 아닌 동역자로 서로 먼저 존중하며 상호 협력하여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세계 선교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데에는 여성선교사들의 교회개척. 교육, 어린이사역, NGO와 의료사역 등 다양한 영역에 헌신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여성선교사들에게는 시대적, 신학적, 문화적 제한점이 분명하게 있었지만  선교지의 영혼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위하여 통전적인 선교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국 선교가 일시적인 선교운동이 아닌 21세기 세계선교를 주도하기 위하여서는 현재 한국선교가 당면한 발전 과제들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여성선교사들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이 될 뿐만 아니라 연구결과를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에 보고되고 이에 대하여 정기적인 토론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여성선교사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시정하는 일은 여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활발한 선교사역을 위해 필수 과제이다. 여성선교사들의 사역을 인정하는 여론이 교회와 선교단체 내에서 일어나며, 여성 선교사의 사역의 기회와 영역을 제한하는 문화적, 제도적 문제를 시급하게 개혁하여야 한다. 한국교회가 여성들을 선교의 자원으로 총동원함으로써 주님의 지상명령인 세계복음화가 가속화되기를 기대한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은 세계 여러 곳에서 다양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들의 명단은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이며, 그곳에 한국 여성선교사들도 속하여 있으며 그들의 사역은 현재 진행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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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orean Missionaries Carring Word to Hard -to-Sway Places,” New York Times, 2004. 11. 1. (인터넷 판)  

2) KWMA, 『한국선교 KMQ』(계간, Vol.9, No.3, 2010 봄호, 통권 33호), 84  

3)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4) C. F. Keil & Delitzsch, The Pentateuch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0), 103.  

5) 김영제,『‘되돌아보는 한국 기독교』(수원: 합신대학원 출판부,2008), 270.  

6) 메리 에반스,『성경적 여성관』정옥배 역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92), 45.  

7) Alvera Mickelsen. ed, Women, Authority & The Bible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86), 71.  

8) Aida Besancon Spencer, Beyond The Curse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95), 61-62.  

9) L. E. Maxwell, Women in Ministry (Pennsylvania: Christian Publications, 1999), 134.  

10) 이덕주,『개화와 선교의 요람 정동이야기』 (서울: 대한기독교서회,2002), 88-89.  

11) Sang Gyoo Lee, To Love With Korea (Melbourne: Presbyterian Church Of Victoria, 2009) 50, 56,59.  

12) 이상규, 『부산지방 기독교전래사』(부산: 도서출판글마당, 2001), 249-251.  

13) 조지 톰슨 브라운, 『Mission to Korea 한국선교이야기: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역사(1892-1962)』 천사무엘, 김균태, 오승재 옮김 (서울: 도서출판 동연, 2010), 169-171  

14) http://www.christianherald.com/WZ_NP/section/view.asp?tbcode=Sec09&cseq=1&seq=449(2010년 4월 3일 접속)

15) 김갑수, 한국침례교인물사』 (서울: 요단출판사, 2007), 304-305.  

16) UBF역사자료 동영상 ‘Sarah Barry선교사님 일대기’  

17) www.ubf.or.kr/intro/missionary_status.php/2010년 4월21일 접속

18) 이정순,『세계선교와 한국여성선교사들』(서울: CLC, 2009), 91-96  

19) Ibid. 104-107.  

20) Ibid. 107-111.  

21) Ibid. 111-115.  

22) Ibid. 122-127  

23) Ibid. 145-148. 

24) Ibid. 232-237. 

25) Ibid. 262-266. 

26) Ibid, 271-275. 

27) Ibid., 272-279. 

28) Ibid., 321-324.  

29) 이정순, “21세기 이슬람 사회속의 기독교 선교에 대한 이론 정립,”『제8차 한국서교지도자포럼집』(서울: GMS, 2008), 126.  

30) Susan E. Smith, Women in Mission (New York: Oribs Books, 2007),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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