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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10-07-06
 제목  선교사 윤리(발제)
 주제어  [선교] [선교전략회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선교대회] [NCOWE V] [세계선교전략회의] [분야별2]
 자료출처  신방현  성경본문  
 내용

NCOWE V 2010

선교사 윤리

신방현  선교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세계선교부 총무

(전 인도네시아 선교사)


  한국선교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다. 선교 100년의 길지 않은 역사에서 오늘의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요 선배선교사들의 수고와 노력의 산물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선교를 감당하는 모습은 참 아릅답다. 한국교회가 숫자적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다보니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식으로 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복음으로 인하여 축복받은 민족이 된 우리는 이제 세계선교 제2강대국이 되었다.

 

  해외선교 제2강대국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양적이나 외형적인 모습은 갖추었고 2030 전략을 통해 세계선교 1등국으로서의 목표를 향해 뛰고 있는 한국교회 선교가 과연 세계선교를 리드해 나갈 수 있는지를 다시한번 점검해 보아야 할 때이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국선교의 모습은 어떻게 비춰질까?

서구 선교계가 바라보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가 바라보는 선교사와 선교에 대한 이미지만을 이야기해도,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와 있음을 공감하게 한다. 선교사를 떠올리면 리빙스턴, 그리고 고귀한 헌신으로 연상작용이 일어나던 시절에서, 선교가 보편 타당화 되면서 ‘몇 마리의 미꾸라지들’에 의해 동반 가치하락을 경험하고 있다.[1]


  오늘날 선교사의 양적성장과 함께 많은 수의 비도덕적인 일들이 선교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심심찮게 발생하는 선교사의 윤리문제는 사소한 문제 일지라도 선교계에 미치는 영향은 쓰나미 피해와 같다.


  오늘 우리의 수준은 선교사의 윤리강령을 만들고 논의 해야만 하는 수준에 와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핵심에 우리가 서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도 역시 우리자신이다. 이번 NCOWE V에서 ‘선교사 윤리’를 다루어야만 하는 과제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한다.


  본 소고에서는 ‘왜 선교사의 윤리문제가 일어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원인을 생각해보고, 그 해결책의 일환으로 본질적인 방법을 제시하고자한다.



1. 선교윤리


  문학이나 예술이 한 사회와 문화의 표현이라면, 윤리는 한 사회공동체 요원들의 삶의 모습이고 삶의 방향을 안내하는 길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윤리란 인간의 “삶”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 - 내적인 인격과 외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교사의 윤리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의 모습과 선교현장에서의 행위 전체를 의미한다.


  윤리는 기본적으로 한 개인과 공동체의 목표와 행동지침과 관련되어 있다. 스탠리 하우어워즈(Stanley Hauerwas)는 “어떤 인식과 판단, 그리고 행동이 한 공동체에 마땅한 것이며, 그로써 그 공동체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 있는 실천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묻는 일”을 윤리의 과제로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어떤 선택과 그에 따른 실천이 그 공동체의 존재 의의와 목적에 부합될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간단히 말해서 윤리란 ‘선’과 ‘옳음’에 관한 것이고, 결단하여 행하는 것이다.

결국 선교윤리란 복음전파를 위하여 결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선하고 올바른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2. 왜, 선교사의 윤리 문제가 일어나는가 ?


1) 첫째로 선교사의 윤리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선교사의 정체성의 혼란에서 오는 문제이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윤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곧 “내가 누구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해야 된다” 혹은 “이런 일을 하면 옳지 않다”는 등의 바람직한 선택과 행위의 태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아상(self-image)을 파악하고 자기인식을 통해서 행동양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선교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거기에 걸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선교사의 진정한 정체성이 아닐까 ?


  선교사 정체성의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한국교회의 목회자 수급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 목회지의 수요 공급원칙이 불균형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해외 선교쪽으로 목회자의 이동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교의 개념이나 원리 없이 목회지로 생각하고 떠나가는, 선교를 위한 헌신보다는 직업의식으로서의 참여가 문제를 가져온다.


  어느 교단의 비파송 해외 거주 사역자들을 특별한 단기절차를 거쳐 선교사로 영입하였으나, 이후 많은 선교윤리적 문제들의 대부분이 이 그룹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2) 정체성이 흔들리는 다른 요인은 자신의 영적관리를 소홀히 하는데서 오기도 한다. 선교현장은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보니 자기자신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영적인 타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선교사는 가지 않아도 되는데 가는 사람이다.

선교사는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데 사서 고생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다.

선교사는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분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닮아가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라고 정의 할 수 있다.


  기독자의 영성은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생활이다. 이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며 신앙적 일상생활로써 기독자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체를 포함하고 있다. 즉 영성은 기독자의 생활 스타일, 또는 기독자의 프락시스(Praxis)다.[2]


  빌립보서 2:6-8절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적 영성이며, 선교사가 체득해야 할 본래적 영성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3) 또한 선교사의 윤리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자기관리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1) 첫째로 선교사는 시간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선교사역을 해오면서 절절히 느끼는 것은 선교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시간관리가 영적관리를 가져오고, 영적관리가 사역의 결과물로 나타나고 결국에는 주님 앞에서의 마지막 계산서가 되기에 선교사역에 있어서의 시간관리는 가장 중요한 요수 중의 하나이다. 인생의 낭비를 통제하기 위한 열쇠는 시간 관리다. 매일 자신의 일과를 설계하기 위해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하면, 24시간을 알뜰히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선교사역이 건강함을 위하여 시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2) 둘째로는 재정관리에 철저한 것이 건강한 선교를 만든다.


  선교를위하여 돈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잘못관리하면 우리를 송두리째 삼켜 버리고 만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유혹 중 하나는 우리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린 엄청난 물질만능주의이다. 우리는 성공이 우리의 물질적인 부의 풍부에 의해 평가된다고 생각하게끔 세뇌되어 있다. 그래서 재정이 많으면 선교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정으로 인한 많은 일탈들이 발생하면서 재정은 선교사의 아킬레스 건으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다.

  재정관리는 선교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 인자가 된다.

이세상에서 뭐니 뭐니(머니 머니)해도 머니(Money)가 가장 좋다고 한다. 돈에 초점을 맞춰서 살아가는 오늘의 시대는 돈 때문에 울고 웃는, 돈(豚)의 속성에 머리가 돈(Crazy / Mad / Insane) 세상인 듯싶다.

선교현장 선교사들의 일탈은 재정사용의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문제되는 선교사들의 선교재정 관리는 투명성이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이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돈으로 인해 선교사가 탈선하고, 선교현장이 쑥대밭이 되는 현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4) 둘째로 선교사의 윤리문제가 발생하는 다른 원인은 존재론적인 의미보다 업적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선교관의 문제이다.


  하나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야 조금 탈선해도 가능하다는 생각들, 세상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접근하는 방식들이 사용되는 한 윤리문제는 계속 발생케 된다.


  선교는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는 선교의 효과는 더욱 역동적이고 파급되는 효과는 더 오래 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3. 윤리문제를 부추기는 다른 요소들


1) 선교사의 윤리문제가 비단 선교현장에서 문제화 되지 않았을 지라도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 이는 검토해야만 한다.


  그중의 하나가 선교사들의 대도시 집중화 현상이다. 대도시 선교의 중요성이 있지만 한구선교사의 70-80 %가 대도시에 거주한다는 사실은 대도시 선교의 중요성 이외에 다른 요인이 작용함을 의미한다. 솔직히 우리의 사역지 결정은 선교의 목적보다도 자녀의 교육과 직결되어 결정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어에 한이 맺힌(?) 부모들의 열성과 남에게 뒤지기 싫어하는 한국사람의 비합리적인 사고가 대도시 집중화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고 비효율적인 선교배치와 만족하지 못하는 선교결과를 창출하고 있다.


2) 노후문제의 불확실성


  한국교회 선교가 아직은 선교사의 노후 문제를 보장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선교윤리의 문제는 깊이 연구해야 할 사안이다. 특별히 재산권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함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고 미래의 대안이 부족하기에 일어나는 일임을 깊이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을 함에도 불구하고 선교현장의 사역을 위하여 일구웠던 센터가 개인의 은퇴와 함께 사유화 되는 것은 윤리상 합리화 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즈음 심심찮게 발생하여 한국교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된 재산권 관리의 문제는 향후 우리의 선교를 가름하는 잣대가 될것이다.


  선교사가 일군 재산은 선교를 위한 선교헌금이고, 이것은 훗날 현지교회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재산임을 다시한번 기억해야 한다.


3) 외유성 모임들

선교사들의 수 많은 모임과 이에 따르는 선교지를 비우는 현상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각 모임마다 의미가 있고 필요해서 구성되었겠지만 친교성의 프로그램 이상의 의미를 갖는 참석자들은 별로 많지 못하다. 일상적인 프로그램과 참석이후에도 거의 변화가 없는 토의 내용들이나 반복되는 주제들은 모임자체의 의미를 퇴색하게 한다.


4) 기타유혹들


명예심과 관련된 것들

도를 넘는 운동들로 인한 문제 (예 : 골프 등)

선교보고서



4. 우리의 자세


1) 그리스도를 닮은 선교사 상을 갖자.


어느날 스탠리 죤스는 간디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마하트마 간디, 나는 인도에서 기독교가 생활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기독교가 더 이상 외국사람 또는 외국정부와 동일시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빨리 기독교가 인도인의 삶의 일부가 되고, 인도의 정신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인도를 구원하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자 간디는 아주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로 대답하였습니다.


  첫째 “우선 당신네 기독교인들과 선교사들을 포함한 모든 서양인들이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만약 당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영혼으로 우리에게 온다면, 우리는 당신들을 거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당신들은 반드시 당신의 종교의 가르침대로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지 말고 타협을 하지 말 것을 제안합니다.”


  “세 번째로, 나는 당신들이 사랑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야말로 기독교 정신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네번째로 내가 당신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당신들이 비기독교 종교와 문화를 좀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당신들은 비기독교 종교와 문화 속에 있는 장점들을 찾아 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들이 그들에게 접근할 때 보다 호소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3]


  우리는 간디의 말을 깊이 생각 할 필요가 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자신을 최대한 낮추어 선교지의 영혼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2) 우리의 정체성 회복을 위하여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고, 회개 운동을 실시해야 한다. 우리 지도자들이 회개를 시작하고 전 세계에서 사역하는 우리선교사들 모두가 동참하고, 나아가서 이 운동이 한국교회 전체로 확산되어야 한다.


3) 시간과 물질의 청지기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하여 노력하자. 집안에서 업무를 보는 구조가 아니라 선교사들로 중심이된 사무실을 운영하며 함께 동역함을 배우고, 서로 의지하며 도와주는 선교의 장을 만들어 가자.


4) 현지교회들과 대립하는 구조나 군림하는 선교가 아니라, 그들을 섬겨 그들로 하여금 선교하게하는 섬김의 선교를 실천하자.

현지인을 참으로 존중해야 한다. 그들을 세워야 한다. 그들을 키워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선교 방향은 철저히 현지인을 앞세워 선교를 수행해야 한다.


  과거에는 선교사들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며 거의 혼자 힘으로 신앙의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면서 신앙의 영웅들로 존대를 받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세계 대부분의 곳에 이미 신앙공동체가 있다. 이제는 선교사가 현지 교회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될 수 있는 타이어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는 곧 교회간 사역을 위한 협력자로 간주되며,[4]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선교 자세는 바로 에큐메니칼 선교 정신이다. 에큐메니칼 선교란 곧 동역의 선교이다. 이것은 강자가 약자를 돕는 것이 아니라 같은 위치에서 함께 힘을 합하는 것이다. 만약 선교사가 계속 힘을 쥐고 있다면 그것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가 될 뿐이다. 따라서 선교사는 혼자 권위를 잡으려는 온정주의(친권주의, Paternalism)를 하루 속히 극복하고, 현지인에게 모든 권한을 이양해 주어야 한다.


  테오 순더마이더 (Theo Sundermeier)는 서구선교의 병폐를 “도움만을 주려고 하는 병”[5] (Helferssyndrom)에 걸린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병으로 인해 서구교회는 처음부터 복음을 전하는 1세계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제 3세계 교회를 차별하여 교만한 마음과 우월주의로부터 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로 그리고 서구의 진화론적 사고에 근거하여 ‘선교하는 선진 문명의 제 1세계’와 ‘미개한 제 3세계 선교대상국’ 으로 그 둘을 영원히 나누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히 제 3세계의 반발을 가져오게 되고, 여기에서 협력은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오만한 정신을 청산해야 하는 것이다.[6]


  한걸음 더 나아가서 에큐메니칼 선교는 선교사가 무슨 사역을 할 것인지 현지교회가 정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즉 선교사들은 현지 지도자들과 함께 일할 뿐 아니라 현지인들의 지도를 받아가면서 일해야 한다. 즉 선교사들이 현지 교회의 종이 되어야 한다.[7]


  선교사들은 흔히 자신이 어느 곳에서 일하든 그 기관의 책임자가 되어야 하고, 자신의 말은 현지인의 말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8] 그래서 현지인의 지도를 받으면서 일하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5) 돈으로 하는 한국선교의 오명을 벗기 위하여 우리가 배운 자립선교의 모델을 실천하여 나가자.


  선교현장은 생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선을 낚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는 네비우스 정책에 따라 자립, 자치, 자전하며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는 선교현장에서 돈으로 선교하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선교현장의 자생력을 키워 그들로 하여금 선교하도록 만드는 일이 우리 선교사들의 일일진대 다시한번 우리를 돌아볼 때다.


  선교사는 선교를 시작할 때부터 최단시일 내에 선교현장이 자립할 수 있도록 자립의 계획을 세우고 자립의 목표를 향하여 추진해 나가야 한다.  자립을 위한 일단계로 현지인 지도자의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모든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6) 우리 스스로 점검 받는 선교사가 되자.[9]

   “선교사들은 서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가진다. 특별히 장기적으로 독립된 사역지에서 일할수록 더 심하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서로를 점검하고 책임지우는 일을 게을리 할 때 타락은 불가피한 것이다. 지나치게 독립되고 사적이며 비밀스런 삶 가운데 있을때 선교사들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재정적으로 반드시 타락의 길을 가게 된다.

스스로 전혀 눈치 채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정당화 하는 가운데.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 선교사는 정기적으로 책임 있는 상부 기관이나 선교후원단체에게 점검받고 설명하는 기회를 가집니까? 그 선교사는 주변의 몇몇 사람들과 만나서 자신의 계획을 점검하고 고침 받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까?“


  결국 문제가 터져서 주저앉았던 선교사들의 경우에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러한 과정을 무시한 선교사들이었다.


  해외 선교사역은 다른 어떤 사역보다 이러한 점에서 위험한 일이다. 선교사처럼 많은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드물고, 선교사는 특별한 근무시간이 없으며, 선교사에게는 뚜렷한 상관이 있지 않다. 물론 선교사의 길은 외로운 길이며 때론 혼자 가야 하는 길이다.


  그러나 독수리처럼 홀로 비상하는 것과, 모든 것을 너무도 독립적으로 하기에 아무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쏘크라테스는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인가?” 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 또한 그 질문의 대답을 찾으려고 탐구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야 할 주제이다.

  선교사로서의 거룩한 삶을 통해 주님 앞에, 교회 앞에, 그리고 나자신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을 위해 다시한번 일어서자.



시편 67 편 (선교사의 노래)


1.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2.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3.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4.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

5.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6.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7.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1] 참고자료 : 국민일보 2010/6/1일자 미션라이프에서

     한 명의 훌륭한 선교사로 인해 한국 선교계는 물론 기독교계가 칭찬을 받는다. 그동안 이름 없이, 빛없이 복음을 전한 무수한 선교사들로 인해 '선교 한국'은 가능했다. 그러나 반대로 한 명의 선교사가 한국 선교계 전체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는 속담과 같이 윤리적으로 그릇된 처신을 한 선교사로 인한 파장은 크다. 지금 한국 선교계에는 이같은 '미꾸라지 유형'의 선교사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서울 동작경찰서는 10여 년간 여성 신도들을 성폭행한 한 선교단체 S목사에 대해 준강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서울 동작구에서 단체를 결성한 후 그동안 6명의 20대 여성 신자들을 수십 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문인 선교사역의 전문가로 알려진 S목사의 사건으로 인해 한국 선교계는 적지않은 피해를 보았다.

     올 1월 일본 이바라키현경 수사 1과와 츠쿠바 중앙경찰서는 한 종교법인 대표인 P목사를 준강간 용의자로 체포했다. 한 교회의 책임자이자 선교사였던 용의자는 3년 전 이바라키현 츠쿠바 시내의 교단 시설에서 당시 신자였던 20대의 여성을 추행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P목사 사건은 지금 일본 내에서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그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운 일본 목회자들의 허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한인선교사는 P 목사 사건으로 인해 일본내 한인 선교사들의 신뢰도에도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2] 서정운, 교회와 선교, 도서출판 두란노, (서울, 1995), p.77

[3] E. Stanley Jones,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 김상근 역 (서울 : 평단문화사, 2005), p.215-218

[4] 데이비드 보쉬, 변화하고 있는 선교, 김병길 장훈태 역 (서울: 기독교 문서선교회, 2000), p. 543.

[5] Theo Sundermeier, Konvivenz und Differenz. hrsg. von Volker Kuster, Erlangen, 1995, 53. 한국선교신학회, 선교학개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p. 52 재인용.

[6] 한국선교신학회, 선교학개론, p. 52.

[7] Emerito P. Nacpil, "Mission but not Missionaries,"p. 361.

[8] 폴 히버트, 선교와 문화 인류학, p. 154.

[9] 남정우, 선교란 무엇인가?  쉐키나 출판사, (서울, 2010) p.189-190



 
>> 목차고리 : [발제] 선교사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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