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15
 제목  조상문(1898. 5.14~1950. 8.23) 목사
 주제어  [한국인 목사] [대한민국] [감리교] [목사]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898년 5월 14일 경기도 강화에서 출생했으며, 1925년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인천화도교회와 수원읍교회를 거쳐 1949년 서울 북아현교회목사로 부임하였다. 1950년 8월 23일 공산군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온수리 보통학교 졸업
피어선 성경학교 졸업
1925년 협성신학교 졸업
화도교회. 수원읍교회. 북아현교회
원주지역 가리사역임
총리원 재단이사 역임

 

아현감리교회 제3대 목사로 부임한 조상문은 1898. 5월 14일 경기도 강화에서 출생하였으며 감리교가 왕성하던 강화읍에 태어나 부모의 신앙을 이어 교회출석을 하였다. 온수리의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피어선 성경학교를 마친뒤 감리교 협성신학교로 진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11회로 졸업한 그는 1926년부터 인천 화도교회로 시작하여 덕적 부평 부천구역을 담당하는 전도사로 열심을 다하는 중 1928년 미감리회 조선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후 홍천 서구역, 단양, 횡성, 충주구역, 1937년 원주구역과 원주지방감리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가 돌보는 교회와 구역은 언제나 평안하여 부흥하였다.

 

1939년에 수원구역으로 옮겨 감리사를 역임하는 동안 그의 공정한 행정은 목사들에게 환영과 존경을 받았다. 춘천, 단양을 거쳐 원하던 고향으로 와 강화읍교회를 섬기는 동안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교단분열은 모두에게 충격이었을 때 그는 재건파에 속해 강화읍과 인천 지방연회를 돌보기에 분주하였다. 평신도로 시작된 통합운동에 지도자들이 각성하여 마침내 1949년 교단통합이 이루어져 기독교감리회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이때 아현교회 담임목사 김유순이 초대감독이 되면서 그 후임으로 재건파 중심인물인 조상문을 아현교회로 파송하였다. 또 총리원 재단이사로 선임된 그는 일제의 잔재였던 해방 후의 교회재산을 정리하여 갔다. 행정에 뛰어난 그는 심방과 개인전도에 대한 열심도 대단하여 부임 1년이 못되어 의자를 새로 구입하여야 했다. 성장하는 교회로 소문이 자자하던 때 6.25전쟁이 일어났다. 가족을 피난시켰지만 자신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 남았다. 교단을 지키려는 김유순 감독과 함께 교회를 지키는 그의 모습은 감리교회사의 미담이었다. 공산군이 패퇴하면서 교회 지도자들을 검거할 때 1950년 8월 23일 아침8시 북아현교회 담임목사 사택에서 퇴각하던 공산당 정치보위부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정치보위부원이 연행하여 간 후 그를 본 사람은 없었다. 하나님만이 아실 순교의 길을 걸었으리라!.


자필경력기록, 노트한권이 있다. 유족으로는 그의 처 전혜숙과 그의 장남 조병의(曺秉懿)이다.

 

 

>> 목차고리 : 세계 > 아시아 > 동아시아 > 대한민국 > 순교자

>> 연결고리 : 대한민국, 한국전쟁감리교, 목사, 순교자

 



   


A-Z




  인기검색어
kcm  438503
설교  220377
교회  172937
아시아  138699
선교  122707
예수  107374
세계  106827
선교회  94110
사랑  89739
바울  89235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