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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4-15
 제목  이현속(1896.12.12~1945. 5.23) 장로
 주제어  [대한민국] [장로] [순교자] [일제강점기]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이현속 장로는 1896년 12월 12일 경상남도 함안군 신일면 부봉리 705번지에서 부친 이수목과 모친 하구류의 아들로 출생했다. 진주배돈교회 전도사로 시무중 신사참배 반대로 1940년 8월 19일 체포되어 사천 및 부산 북부경찰서를 전전하며 형언할 수 없는 모진 고문을 당하였으며 계속되는 회유와 악형에도 신앙절개 굳게 지켜 1945년 5월 평양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서당에서 한문 논어를 좋아함
진수성경학교 졸업
영산교회. 문산교회. 하동교회. 화계. 악양.적양.북천.덕산. 상촌교회전도사

 

이현속은 1911년에 기독교에 귀의하고 입교10년 만에 부봉교회 영수가 되었고 4년 후 장로로 장립되었다.장로가 된 이현속은 교회지도자로 성서에 무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해 진주성경학교 별과에 입학하여 1년 후에 졸업하였다.
성경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역의 길로 들어섰다. 1920년대의 한국교회의 교세는 20만을 넘지 못하였다 신학생이 드물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전도사로서 일선 교역을 담당했다. 이현속은 성경학교를 졸업하면서 영산교회에서 1년을 봉직하고 이듬해 4월에 전양 문산교회로 부임해 4년동안 봉직했다.

 

1930년대 들어 하동교회로 옮긴 그는 그곳에서 무려 7개 교회를 아울러 섬겼다. 여러교회를 순회전도하는 그는 굶기를 밥먹듯하면서 미숫가루를 양식으로 삼았고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많았다. 그 나라 건설을 위해 충성을 했다.
1933년 산청에 덕산교회를 개척하고 부임하고 1935년 그의 나이 40세에 평양신학교에 입학 공부하는 중 1938년 덕산교회를 떠나 상촌교회를 개척했다. 1938년 9월 신사참배를 결의함으로 신학교가 폐교되었고 그는 신사참배 결의에 슬퍼하며 울었다.


1940년 2월 호주선교사 커닝햄선교사의 주선으로 진주 배돈병원 원목으로 부임하여 병자들을 돌보는 중 신사참배 반대로 8월에 유치장으로 끌려가 물고문, 손톱및 찌르기, 손가락 주리틀기, 공중 매달기 등 걸음조차 제대로 못걸을 정도로 고문당하고 3일만에 나왔다.
그 후 몇차레 재판없이 옥고를 치루고 계속 저항하자 12월 부산북부경찰서로 압송하고 1941년 평평양형무소로 압송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루는 동안 그의 아내 홍여사는 하루에 한숨밖에 자지않고 겨울에도 이불을 펴고 누운 적이 없었다. 교회가 일본에 징발당하자 방을 기도실로삼고 기도와 독경 생활을 하던 중 병을 얻어 1943년에 아버지 나라로 옮겨갔다.


이현속전도사는 아내의 소식을 듣고 1주일 금식하며 거룩한 사랑을 체험했다. 결국 1945년 5월 23일에 해방 3개월을 앞두고 평양감옥에서 순교했다.그의 시신은 돌박산 기독교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유족으로 이성호집사와 세 손자, 여섯 증손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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