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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10-03-26
 제목  김용구(1896. 7.11(음)~1950. 9.20) 영수
 주제어  [대한민국] [영수] [순교자] [한국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896년 7월 11일 황해도 수안에서 출생했으며, 조부와 부친의 신앙을 계승하여 일제하의 박해를 이겨냈다.


해방 후 평원교회 영수로 있으면서 6·25를 당했으며, 1950년 9월 20일 강대에서 기도하다가 공산당에 의하여 뒷산으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김용구 는 1896년 7월 11일(음)황해도 수안군 대오면 상조양리 능꼴에서 부친 김상목의 아들 용구, 봉구,정구 중 맞아들로 출생하였다. 부친 김상목은 북장로교 선교사를 통해 예수를 믿은 초대교회 성도로서 자녀들에게 열심있는 성도가 되도록 가정에서 신앙지도를 게울리 하지 않았다.
김용구는 어려서부터 한문을 읽어 공자의 유교윤리가 몸에 배었고 일인통치를 보면서 애국심을 배웠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에 매달릴 무렵 오윤선전도사가 능골교회를 1년에 3-4차례씩 방문해 신앙지도를 철저하게 했고 임재준(총회장을 역임한 청량리중앙교회 임택진목사의 부친) 조사도 월 1회씩 능골교회를 찾아와 강론하므로 그의 신앙사상을 키웠다."왜 술먹고 추한 꼴을 자식에게 노출시킨 노아가 의인이냐고 질문하는 김용구에게 임재준 전도사는 히브리원어 챠디크를 설명해줌으로 이해시킨 일화는 김용구 를 지극히 인간적이고 대범한 사람을 만들었다.


그는 6남매의 자녀교육을 위해서 고향교회를 떠나 평원리 학교근처로 이거하여 평원교회 영수로 봉직하며 만물상을 운영하여 기업가가 되었고 '많이 버는 자가 많이 내어 살림을 해야한다'가 김영수의 교회경영의 지론이었다
신사참배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산골 동리를 떠나지 않았던 김용구 영수는 해방후 기독교도연맹에 가입을 주선하는 목사를 향하여 항의하며 공산주의는 1세기가 가기 전에 실패한 이데오로기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여 정치보위부의 요시찰인물로 점찍히게 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민족상잔의 동란이 터져 피란을 권고받았으나 '공중에 나는 참새 한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떨어지는 법이 업다고 하며 고향 교회를 지키며 예배를 드리다가 1950년 9월 20일 공산당에 투항하지 않을 요인들 일제 제거령에 의해 체포당하고 온갖 고문으로 회유했으나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1950년 9월 20일 칠흑같은 밤 내무서에서 같이 체포당한 이창현 영수와 함께 고문으로 절뚝거리며 시체처럼 된채 짐승처럼 끌려나와 평원교회 옆 골짜기에서 총살로 순교했으니 김용구 영수의 나이 65세였다.


김용구 영수의 유족으로는 동두천 동성교회 원로장로 장남 김재호 장로가 있고 둘째아들 김재선과 딸 김재운이 있으며 손자 김봉석, 문석, 진석, 인석이 있고 손녀는 근숙 진숙 손녀사위 황금성 목사는 제주성안교회 시무하고 있고 딸 김재운도 박기화, 기제, 기경 기창이 있는데 김기창은 부흥사이다. 김영수의 처남은 순교자 기주복목사이며 기목사의 아들 기현두목사는 시온교회 담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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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고리 : 대한민국, 한국전쟁영수,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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