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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9-12-19
 제목  위그노 전쟁(Huguenots Wars)
 주제어  [프랑스] [종교전쟁]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1562부터 1598년까지 30여년간 계속된 프랑스의 종교내란을 말한다. 위그노(Huguenot)란 프랑스 칼빈파와 프로테스탄트(신교도)의 별칭으로, 스위스어로 동맹이라는 뜻의 에이게노센(Eidgenossen)에서 비롯된 말이다. 15세기 말 시작된 지리상의 발견은 서유럽의 경제생활에 큰 변동을 가지고 왔으며, 봉건영주제가 무너지자 소농민(小農民)·소생산자(小生産者)층에서도 독립 기운이 감돌았다. 여기에 칼빈교의(敎義)가 구체제(舊體制)에 대한 변혁을 고취시켰다.

 

칼빈은 개인의 구원이 신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있다는 예정설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구원이 예정되어 있으며 구원되기로 예정된 신도들은 신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자신의 소명(직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주의의 실천적 성격은 일부의 프랑스 중산계급에 의해 받아들여지면서 초기 자본주의 아래 대두한 자영농민·수공업자·소상인 등이 그 지지가반이 되었다. 이들은 주로 프랑스 남부에 위치하였고, 이들의 수장이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나바르 왕국의 부르봉 왕가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자신의 조카딸을 프랑소와 2세(1559~60)의 왕비로 보내 외척으로서 영향력을 발취하며 권력을 장악한 프랑소와 드 기즈(Francois de Guise)와 기즈집안 출신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칼빈파의 교의는 프랑스 경우 서민에서 궁정·귀족에게까지 퍼져 갔다. 따라서 기즈공(公)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파에 대하여, 프로테스탄트도 부르봉과 콩데공(公) 등을 지도자로 무장봉기하여, 30여 년 동안 내란이 전개되었다. 앙리 2세의 왕비이며 샤를 9세의 섭정인 카트린드메디시스가 왕권을 보전하고 신구(新舊) 양파의 세력균형을 꾀하기 위하여, 프로테스탄트에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것이 내전(內戰)을 더욱 격화시켰다.

 

앙리 3세 의해 기즈공이 암살되고 앙리 3세 또한 1589년 8월 수도사 J.클레망의 칼에 찔려 죽고, 14세기 이래의 발루아왕조는 멸망하였다.  결국 프로테스탄트 출신으로 프랑스의 왕위에 오른 앙리 4세의 정치력에 의해 '낭트칙령(勅令)'으로 수습되었다.


 

>> 목차고리 : 세계 > 유럽 > 프랑스

>> 연결고리 : 프랑스, 종교전쟁,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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