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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단체  작성일  2009-07-02
 제목  독립협회(獨立協會)
 주제어  서재필 독립신문 [대한민국] [한국사]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독립협회 임원들1896년 7월 2일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정치단체인 독립협회가 창설되었다.

 

정부의 외세의존정책에 반대하는 개화 지식층이 한국의 자주독립과 내정개혁을 표방하고 활동하였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미국으로 도망갔었던 서재필(徐載弼)이 1895년 12월경에 귀국하고 1896년 4월 7일《독립신문》을 발간하여 민중계몽에 나섰다. 그리고  7월 2일 서재필을 중심으로 이상재(李商在)·이승만(李承晩)·윤치호(尹致昊) 등이 적극 참여하였으며, 협회 발족 당시에는 이완용(李完用)·안경수(安壽) 등 정부 요인들도 다수 참가하였다.

 

창립 주도세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갑오개혁 당시의 집권관료 세력들로 서재필을 귀국시켜 〈독립신문〉의 창간을 지원해준 건양협회(建陽協會) 세력, 둘째, 외국 외교관이나 선교사들과 교제를 가진 외교계 관료세력으로 윤치호(尹致昊)·이상재(李商在)·이완용(李完用)·서재필 등 정동구락부(貞洞俱樂部) 세력, 셋째, 개별적으로 서구근대사상에 접하면서 개화정책을 추진하던 중견실무관료층 등이었다.

 

1898년 종로 광장에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개최하여 시국에 대한 ‘6개조 개혁안’을 결의하고 그 실행을 고종에게 주청하였다. 고종은 처음에 6개조의 실행을 약속하였으나 정부 대신들이 이권에만 눈이 어두워 약속한 지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실행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협회에서는 정부탄핵의 외침이 점점 드높아 갔고, 정부 수뇌급은 불안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이에 정부 수뇌급은 “독립협회가 황제를 폐하고 공화제를 실시하려 한다”고 무고(誣告)함으로써 이상재 이하 17명의 독립협회 간부를 체포하게 하였다. 독립협회는 회원을 총동원하여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정부는 어용단체인 황국협회(皇國協會)를 시켜 보부상(褓負商) 수천 명을 서울에 불러들여 독립협회 회원들에게 테러를 가하게 하여 유혈사태를 빚었다. 이에 흥분한 민중은 고관의 집을 습격하는 등 소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11월 고종은 부득이 내각을 개편하고 양 협회 대표자에게 그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것을 약속하고 해산을 명하였다. 이로써 협회는 해산되었으나, 그 후 만민공동회라는 이름으로 존속하다가 1899년 초 해산하였고, 그 후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와 대한협회(大韓協會)로 그 정신이 이어졌다.

 

1897년에는 서대문구에 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해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다.

독립협회는 대한제국 성립에 크게 기여했으며, 자본주의 열강의 한반도 침략을 반대하고 민권운동을 벌이는 등 자주적인 군주주권국가를 지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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