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지식사전  작성일  2007-06-26
 제목  갑신정변(甲申政變)
 주제어  개화정권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갑신정변(甲申政變)은 1884년 12월 4일(음력 10월 17일) 김옥균·박영효·홍영식 등이 청나라에 의존하려는 척촉 중심의 수구당을 몰아내고 개화정권을 수립하려한 정변이다.

1882년의 제물포조약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던 박영효등의 일행은 친일성향을 가지고 귀국하여 일본의 힘을 빌려 개화와 정치개혁을 단행하고자 하였다.

 

김옥균·박영효·홍영식은 주(駐)조선 일본 공사 다케조에 이치로(竹添進一郞)와 밀의한 끝에 일본군 주둔 병력을 빌려 정변을 일으키고 혁신정부를 세우기로 기도하고 1884년 음력 10월 17일 홍영식이 총판으로 있는 우정국 개국축하 만찬회를 이용하여 정변을 일으켰다.

 

이들 개화파들은 연회가 열릴 즈음 이웃집에 불을 질러 혼란을 일으킨 다음 사대당 요인들을 모조리 암살할 계획을 세웠지만 겨우 민영익에게 중상을 입혔을 뿐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김옥균·박영효 등은 창덕궁으로 달려가 고종에게 사대당과 청국군이 변을 일으켰다고 거짓으로 보고하고 왕을 경우궁으로 옮긴 후 일본군으로 하여금 궁을 호위케 한 다음, 민영목·민태호·조영하 등의 사대당 일파를 차례로 죽였다.

 

12월 5일 개화파들은 각국의 공사·영사들에게 신정부의 수립을 통고하는 한편, 새정부를 구성하고 혁신정강으로 문벌폐지와 인민평등권 확립, 관제의 개혁, 지조법(地租法)의 개혁과 재정의 일원화 등 14개 항목을 내세웠다. 그러나 미처 공포도 하기 전에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청국군이 출동하여 창덕궁을 공격하는 바람에 집권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김옥균·박영효 등은 인천을 거쳐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로써 사대당 정부는 더욱 보수적이 되었고 조선에서 청의 세력이 강대해진 가운데 청·일 두나라의 조선쟁탈전은 더욱 격화되었으며, 일본의 조선침략이 본격화하기에 이르렀다.

 

갑신정변을 주도한 이들은 14개조의 개혁요강을 내세우는 등 개화·개혁의 순수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는 철저하게 일본의 힘을 빌려 집권하고자 한 친일 사대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일본으로 하여금 조선에 대해 내정간섭을 하게 한 구실을 만들었다.

 

출처 : 김삼웅, 《친일정치100년사》(동풍, 1995년) 42~43쪽.

 

사진 : 서울시융희 2년(1908) 장충단에서 거행되었다. 가운데 좌우로 서있는 사람은 조희연(趙羲淵)과 김윤식(金允植). 1908 갑신정변 을미사변 관련 희생자 추도회

 

>> 연결고리 : 한국사

 



   


A-Z




  인기검색어
kcm  334277
설교  170454
교회  123877
아시아  98518
선교  94760
세계  84997
예수  82204
선교회  72955
사랑  69439
바울  68469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