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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11-04
 제목  라빈(Yitzhak Rabin, 1922. 3. 1~1955.11. 4)
 주제어  [이스라엘] 이츠하크 라빈 [총리] 텔아비브 중동평화회담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라빈은 6일전쟁(1967년 6월)에서 이스라엘군의 참모총장을 지냈으며, 두 번에 걸쳐(1974~77, 1992~95) 이스라엘의 총리를 엮임했다(1974~77, 1992~95).

 

크파르타보르에 있는 카두리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유대인의 방위군 특공대 조직인 팔마츠에 입대했다. 1953년 영국 참모대학을 졸업하고, 1964년 1월 참모장이 되었다. 속전속결 전략으로 6일전쟁을 승리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1968년 퇴역하고 주미 대사로 파견되어 미국에 있을 때 닉슨 행정부를 비판했으며, 중동 평화를 위해 아랍 영토로부터 이스라엘이 철수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그의 주장으로 이스라엘의 강경론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1973년 노동당원으로 의회에 진출했고 1974년 노동부장관이 되었다. 1974년 4월 메이어 총리가 사임하자, 그해 6월 이스라엘 본토 태생으로는 최초로 이스라엘의 제5대 총리가 되었다. 1975년 이집트 대통령과 협정을 맺음으로써 이스라엘은 시나이 유전과 전략거점에서 철수했고, 그 대신 이스라엘 상품은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1994년 10월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여 중동 평화에 대한 공로로 Y. 아라파트, 이스라엘의 외무장관 S. 페레스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95년 11월 4일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텔아비브에서 중동평화회담 지지 연설 후 극우 유대인 청년에게 저격당했다.


[이스라엘] 라빈 암살범 “지금도 후회 안해”

중동평화의 선구자인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를 암살한 극우주의 유대인 청년 이갈 아미르는 6일 자신은 지금도 라빈전 총리를 암살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미르는 오히려 라빈 전총리 암살 5주년을 맞은 지금 왜 진작 라빈을 죽이지 않았는가 후회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995년 11월 4일 텔아비브의 한 평화집회에서 라빈 전 총리를 암살한 아미르는 이날 이스라엘 남부 도시 베에르셰바의 한 법정에 출두, 자신의 감방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제거해줄 것을 요구하기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아미르는 "라빈 전 총리 암살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 내가 왜 진작 그를 죽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오슬로Ⅱ 이전에 그를 죽였어야 했다"고 밝혔다. 오슬로Ⅱ협정은 라빈 전총리가 요르단강 서안 점령지를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로 넘겨주기로 하고 1995년 9월 워싱턴에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체결한 것으로 중동평화과정의 중대한 진전으로 평가돼왔다. 아미르는 "라빈 전 총리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다"며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그를 살해한 것은 아니며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추진 시도를 막기 위해 그를 암살했다고 주장했다. 아미르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카이로/연합뉴스).

 

 

>> 목차고리 : 세계 > 중동 >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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