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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8-02-22
 제목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독일어: Georg Friedrich Händel, 영어: George Friedric Handel 조지 프리드릭 핸델, 1685.2.23~1759.4.14)
 주제어  [음악가] [작곡가]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독일: Georg Friedrich Händel, 영어: George Friedric Handel 조지 프리드릭 핸델, 1685년 2월 23일 ~ 1759년 4월 14일)은 동부 독일의 할레에서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다. ‘음악의 어머니’로 불린다. 독실한 루터교 신자인 헨델의 대표적인 교회음악은 주로 성탄절때 공연되는 《메시아》로서 영문성서중 하나인 킹 제임스 성경의 구절에 곡을 붙인 오라토리오이다.

 

공작의 이발사겸 외과의사였고, 어머니는 목사의 딸로서 신앙이 두터운 분이었다. 바흐와 달리 헨델의 집안에는 대대로 음악가가 나지는 않았으나, 헨델은 소년 시절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다. 7세가 되던 해에 바이센펠스 궁정에서 오르간을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때 그의 음악을 들은 바이센펠스 공작은 크게 감동을 받고, 헨델의 아버지에게 음악공부를 시키라고 권유하였다. 헨델의 아버지는 원래 헨델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성모 마리아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이며 작곡가인 차하우(F. W. Zachau)에게 보내어 음악공부를 시켰다. 이후 헨델은 오르간과 하프시코드의 뛰어난 연주자가 되었으며 바이올린과 오보에 등 여러 악기를 배우고, 화성학과 대위법의 기초를 쌓는가 하면, 당시의 통상적인 학습 방법대로 유명한 작곡가들의 악보를 사보하면서 공부하였다.

 

   확실치는 않으나, 헨델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1702년에 할레대학에 입학해서 일년 남짓 법학을 공부하였다. 이 기간 중에도 헨델은 칼뱅파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면서 음악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1703년, 헨델은 오페라 작곡가의 꿈을 가지고 할레대학을 떠나 단시 오페라의 중심지인 함부르크(Hamburg)로 갔다. 이 곳에서 처음에는 오페라 극장의 바이올린 주자로 일하다가 후에는 오르가니스트로 일하게 된다. 이 즈음에 헨델이 사귀었던 음악가들은 마테존(Johann Mattheson)과 당시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 감독이었던 카이저(Reinhard Keiser)였는데 이들은 음악 동료로서 헨델의 작품 활동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함부르크에 있으면서 헨델은 <알미라(Almira)>와 <네로(Nero)>, 한 편의 오페라를 둘로 나눈 작품 <행복한 플로린도(Der beglückte Florindo)>와 <변신한 다프네(Die verwandelte Daphne)>를 작곡하였는데, 이 중 <알미라>만이 성공을 거두었다. 오페라 이외에도 건반악기 작품을 포함한 많은 기악곡이 이 기간에 작곡되었다. 1706년 헨델은 함부르크에서 알게 된 이탈리아 메디치가(Medici家)의 페르디난도(Ferdinando) 왕자의 초청으로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갔다. 이탈리아에 3년간 체류하면서 베네치아, 나폴리 등 여러 도시를 방문하고 많은 귀족들과 유명한 작곡가들을 만났으며, 로마에서는 그가 체류하던 루스폴리(Francesco Ruspoli)공작을 위하여 약 150여 곡의 세속 칸타타를 작곡하였다. 1708년에는 오라토리오 <부활(La resurrezione)>가 코렐리의 오케스트라 반주로 루스폴리의 궁정에서 공연되었다.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3개의 대규모 라틴 모테트와 2편의 오라토리오 <아치스(Acis)>, <갈라테아와 폴리페모(Galatea and Polifemo)>, 오페라 <아그리피나(Agrippina)>를 작곡했는데 특히 <아그리피나>는 27번이나 공연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헨델은 이곳에서 만난 A.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 D.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가스파리니(Gasparini)로부터 오페라, 오라토리오, 실내 칸타타, 협주곡, 독주 소나타, 트리오 소나타의 작곡기법을 배웠다. 1710년에 다시 독일로 돌아와 하노버(Hanover) 궁정의 음악감독이 되었으나 곧 휴가를 얻어 영국을 방문하였다. 이곳에서 1711년에 오페라 <리날도(Rinaldo)>를 작곡하였다. 이 작품은 대성공을 거두어 헨델은 영국에서도 오페라 작곡가로 큰 명성을 얻었다. 하노버로 다시 돌아온 헨델은 궁정을 위해서 실내악과 관현악을 작곡하였고, 1712년에는 하노버 선거후(選擧候)의 허락을 받고 다시 런던을 방문하였다. 영국에서 헨델은 게이(Gay), 페푸쉬(Pepush) 등의 영국 작곡가와 친분을 가지면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작곡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헨델은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영국에 체류하면서 선거후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1717년 영국을 통치하던 앤(Anne) 여왕이 서거하자 공교롭게도 왕위 계승법에 명시된 혈통에 따라 하노버 선거후가 조지(George) 1세로 영국의 왕이 되었다. 난처해진 헨델은 얼마동안 궁정에 나타날 수가 없었다. 선거후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모음곡을 작곡하였는데 이 음악이 1740년에 <수상음악>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확실한 근거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헨델은 샨도스(Chandos) 공작의 궁전과 예배당의 음악감독으로 일하면서 계속 영국에 머물렀다.

 

   샨도스 공작을 위하여 11곡의 앤섬, 1곡의 테데움, 영어로 된 2곡의 마스크, 오페라 <아치스와 갈라테아(Acis and Galatea)>, 오라토리오 <에스터(Esther)> 등을 작곡하였다. 1718년부터는 왕실음악원(Royal Academy)의 음악감독으로 일하면서 오페라의 작곡 뿐만 아니라 행정적인 일도 맡아 보았다. <이집트의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 in Egypt)>, <타멜란도(Tamerlando)>, <로델린다(Rodelinda)>, <아드메토(Admeto)> 등이 이 때에 나온 오페라들이다. 왕실음악원은 1728년까지 운영되다가 유명 가수들의 초빙이 어려워지고 작곡가들의 경쟁이 과다하며, 영국인들으 민족주의 오페라가 등장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페푸쉬(Pepush)와 게이(Gay)가 쓴 는 대중적인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로서 61번이나 재공연될 만큼 성공을 거두었고 결과적으로 헨델의 오페라가 자리를 잃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1726년, 헨델은 귀화하여 영국의 시민권을 얻었다. 1726년에 마스크를 개작한 오라토리오 <에스터(Esther)>를 공연하였는데 이 공연은 런던에서 열린 최초의 오라토리오 공연이었다.

   당시의 또다른 오페라 회사였던 '귀족 오페라(Opera of the nobility)'와는 경쟁관계가 심하여 서로가 관중을 모으지 못하였다. 1734년에 헨델은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으로 자리를 옮겨서 몇 편의 오라토리오를 공연하였는데 헨델은 오라토리오의 막 사이에 오르간 협주곡을 작곡하여 스스로 연주하기도 했다. 1738~1741년까지 헨델은 몇 편의 오페라를 더 작곡하였다. 마지막 성공작은 <알치나(Alcina)>였고 뒤에 쓴 <세르세(Serse)>와 < <데이다미아(Deidamia)>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1736년에 작곡한 <알렉산더의 향연(Alexander's Feast)>은 영국의 서정시에 곡을 붙인 작품으로 오라토리오로 분류하나 성격은 오페라적이다. 이어서 <사울(saul)>과 후일 <이집트의 이스라엘인(Israel in Egypt)>으로 제목이 바뀐 오라토리오 <엑소더스(Exodus)>를 1739년에 발표하였다.

 

   헨델은 자선 단체를 위하여 1741년, 찰스 제넨스(Charles Jennens)의 대본에 곡을 붙인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를 작곡하였다. 메시아는 초연에는 성공하였으나 1743년의 런던 공연에서는 극장에서 종교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경건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런던 시민의 외면으로 실패하였다. 1743년에 오라토리오 <세멜레(Semele)>를, 1745년에는 음악극 <헤라클레스(Heracules)>, 1746년에는 오라토리오 <유다스 마카베우스(Judas Maccabeus)>, 1749년에는 모음곡 <왕궁의 불꽃놀이>, 1751년에는 오라토리오 <예프타(Jephta)>를 작곡하였다. 말년에 헨델은 영국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받았으며 조지 1세에 이어 조지 2세 때에도 계속적인 후원을 받아 풍요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1751년에는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3회에 걸친 수술을 받았으나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1759년, 코벤트 가든의 정기적인 연주회에서는 그의 후기 오라토리오 공연을 개최하였는데 이 시즌의 마지막 작품인 <메시아> 연주에 참석한 헨델은 연주 도중에 졸도하여 집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1759년 4월 14일 오전 8시에 운명하였다. 헨델의 유해는 유서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다.
 

 성악음악  오페라

 

   헨델은 <메시아>의 대성공으로 인해 오라토리오 작곡가로 알려지고 있으나 명성을 얻은 것은 오페라 때문에었다. 40여 편 이상의 오페라들은 당시에 최고의 오페라로 인정받았다. 1720년대 중반에 작곡한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 <로델린다(Rodelinda)>, <타메를라노(Tamerlano)> 등은 걸작으로 손꼽힌다. 헨델의 오페라 주제는 다양하다. <줄리어스 시저>는 역사적인 내용이고, <아드메토(Admeto)>는 신화적, <오를란도(Orlando)>는 낭만적인 내용이다. 그밖에도 마법이나 요술 등 초자연적인 내용을 다룬 오페라도 있다.

   오페라의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는 다른 작곡가들의 배열과 다르다. 헨델의 오페라에서는 레치타티보가 항상 아리아 앞에 나오지는 않는다. 두 개의 아리아가 연속해서 나올 때도 있고, 두 개의 아리아가 2중창으로 결합되기도 한다. 때로는 하나의 아리아 중간에 다른 아리아가 삽입되어 처음 아리아가 중단되기도 한다. 다 카포(da capo)는 항상 사용되지는 않으며 다 카포 없이 카바티나(cavatina)가 끝에 연결되기도 한다. 헨델의 오페라는 진지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나 <아그리피나(Agrippina)>와 <세르세(Serse)>에서는 희극적인 내용이 삽입되기도 한다 <아드메토(Admeto)>와 같은 몇 개의 오페라에서는 특정한 인물에 항상 같은 조성을 사용하여 바그너(Wagner)의 시도동기(leitmotiv)를 연상하게 한다. 함부르크 시절의 카이저(Keiser)와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만난 A. 스카를라티(Allesandro Scarlatti), 칼다라(Caldara) 등은 헨델의 오페라에 큰 영향을 미친 작곡가들이다.

 오라토리오

   헨델은 오라토리오를 음악극(music drama)이라고 부를 정도로 오라토리오에서도 오페라와 같은 극음악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헨델은 오페라 제작이 실패하자 자구책으로 오라토리오 창작에 몰두하였다. 오라토리오는 공연을 위한 제작비가 적게 들고 독창보다 합창을 중요시하므로 가수의 캐스팅에 따른 문제점이 없어서 당시의 상황에서는 오페라보다 적합한 창작대상이 될 수 있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성서의 종교성을 강조한 내용보다도 영웅적인 인물 묘사나 역사적 사실을 다룬 내용들이 더욱 많다. 예를 들면 고대 신화를 내용으로 하는 <헤라클레스>와 <세멜레>는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의 성격을 모두 지니고 있는 작품이고, <삼손(Samson)>, <솔로몬(Solomon)>과 같은 작품은 구약성서를 소재로 하지만 인물의 영웅성을 부각시킨 작품이며, <아치스와 갈라테아>, <알렉산더의 향연>은 작은 규모의 영국 서정시를 바탕으로 한 감각적인 작품이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음악 구성면에서 오페라보다 합창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합창은 언제나 극의 내용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초기의 합창은 독일적인 특징이 강하지만 후기의 합창은 영국적인 합창기법이 사용되었다. 합창은 개인적인 표현보다 회중의 표현을 강조하여 집합적인 성격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예프타>에서는 합창이 회중의 소리를 대변하여 주고, <유다스 마카베우스>에서는 줄거리의 진행에 한 역할을 담당하며, <솔로몬>에서는 우주적 장면을 묘사하고 있고, <이집트의 이스라엘인>에서는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헨델의 합창은 바흐의 합창처럼 푸가풍의 스타일이 많으나 그밖의 다른 형식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독창의 아리아를 갖는 합창, 합창을 이용한 레치타티보, 합창과 기악의 조합 등이 그러하다. 헨델의 합창기법은 하이든과 베토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의 작곡가들에게도 끊임없는 연구과제가 되어 오고 있다. 오라토리오 이외의 교회음악으로는 로마에서 작곡한 150곡의 칸타타와 카톨릭 교회에서 사용하기 위한 라틴어 시편송, 영국 성공회에서 사용되는 앤섬 등이 있다. 헨델 자신은 루터파 개신교인이었지만 바흐와는 달리 그의 교회음악에는 코랄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오페라와 교회음악 이외의 성악작품으로는 40곡 이상의 가곡이 남아 있다. 헨델의 가곡이라고 기억될 만한 작품은 많지 않으나 헨델의 오라토리오와 오페라에서 발췌된 많은 아리아들이 오늘날에는 가곡으로 분류되어 애창되고 있다.
 

기악음악  관현악 작품

 

   헨델의 기악음악은 성악음악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몇몇 작품은 오늘날에도 상당히 자주 연주되고 있다. 3개의 모음곡으로 구성된 <수상음악>과 37개의 목관악기, 18개의 금관악기, 3개의 팀파니로 구성된 대규모 작품인 <왕궁의 불꽃놀이(Music for the royal fireworks)>를 비롯하여 <6개의 합주 협주곡(Concerti Grossi op.3)>, <12개의 Grand Concertos op.6> 등은 헨델의 대표적인 관현악 작품들이다. 헨델의 관현악 작품들 중에는 무대 작품과 연관된 것이 많다. 헨델의 오르간 협주곡은 오라토리오의 막 사이에서 작품의 내용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오르간 협주곡에는 '자유롭게 연주하라(ad libtium)'는 지시가 자주 붙어 있어서 즉흥연주적인 기법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헨델의 협주곡은 코렐리의 교회 소나타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때때로 무곡풍의 악장을 한 두 개 추가하기도 한다. 헨델의 협주곡에는 콘체르티노와 투티의 강한 대조적 기능을 찾아볼 수는 없다. 드물게 독주 부분에 장식을 붙여서 투티와 구분을 두기는 하지만 대체로 콘체르티노와 투티는 합주 형태를 이룬다.

 

 실내악과 건반악기

 

   실내악 작품으로는 콘티누오, 플루트, 리코더, 바이올린 또는 오보에를 위한 12개의 소나타와 콘티누오와 2개의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을 위한 6개의 트리오 소나타 그리고 콘티누오와 플루트를 위한 3개의 소나타, 콘티누오와 바이올린 또는 플루트를 위한 7개의 트리오 소나타 등이 있다. 이들 소나타들은 실내 소나타(sonata da camera) 형식으로 되어 있다. 바이올린과 콘티누오를 위한 소나타 제13번 D장조는 그의 독주 소나타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건반악기 작품들로는 2권의 건반악기 모음곡집이 있는데 각권에는 8개의 모음곡이 들어 있다. 2권 중 첫번째 모음곡에서 Bb장조의 아리아는 브람스에 의해서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23>의 주제로 사용되었다.
 

 

>> 연결고리 : 음악가, 작곡가

>> 바깥고리 : 할레의 헨델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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