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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인명사전  작성일  2007-07-17
 제목  오리겐(Origen, 185~254 )
 주제어  [교회사]
 자료출처  간추린 교회사  성경본문  
 내용

오리겐오리겐(185~254)은 그때까지 교회가 알고있던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난 교사와 저술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순교자의 아들이며 훌륭한 영적 분위기에서 자란 그는 18세에 교리문답학교의 교장이 되었고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 학교의 이름을 최고로 높여 놓았다. 그는 성경을 사랑했고 또한 성경해석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보여 주었다. 그는 상당히 극단적인 금욕주의-금식, 금주, 맛있는 음식의 거절 및 맨바닥에서 잠자기-로 나갔다.

그는 쉴 새 없이 힘써 일했으며 제롬의 말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한평생 읽어도 못 다 읽을 만큼 많은 책을 저술했다. " 어떤 사람은 편지와 논설 등을 포함하여 그의 저술이 6000여 편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헥사플라, 열 권의 주석, 제 1원리(조직 신학에 관한 최초의 저술) , 및 가장 유명한 변증서인 켈수스 논박 등이다.

그는 성경의 신적 영감을 강하게 믿으면서도 알렉산드리아에서 매우 전형적었던 풍유적 해석이라는 올무에 빠졌다. 그는 현대의 유니테리안파와 비슷한 여러 이단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를 강조했다. 그는 논란되고 있던 교리적 문제들, 즉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에 관한 문제들을 매우 중요시했다. 초대 교회는 그리스도를 의심할 나위없이 주님과 하나님으로 여겼다. 그리스도는 단순하게 경배를 받았으며, 성도들은 그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에 대하서 사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2세기 말에 이르러 새 이론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단일신론이었다. 헬라 신학자들에게 있어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신성에는 오직 한 위격만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 이 한 위격에 적용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해서는 다음 두 가지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1.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 예수에게 임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이 일을 하도록 했다고 믿었다. 이것을 역동적 단일신론이라고 일컫는데, 이 말은 힘을 뜻하는 헬라어 두나미스에서 비롯되었다. 이 견해는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부인한 알로기는 말할 것도 없고 테오도투스, 아르테몬, 및 사모타바의 바울 등에 의해 지지되었다.

2. 다른 사람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충만함이 그리스도 안에 거했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양태의 표현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이 주장을 양태론적 단일신론이라고 일컫는다.

하나님은 어떤 때는 성부로, 어떤 대는 성자로, 혹은 성령으로 나타나지만 즉, 비록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항상 같은 위격이라는 것이다. 프락세아스, 노에투스, 베릴루스 및 사벨리우스 등이 이 견해를 지지했다. 사벨리우스는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래서 사벨리우스와 이 이단 교리의 다른 대표자들 사이에 다소의 견해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이 단일신론은 영원하신 성부께서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셨다는 의미를 내포하기에 심한 비난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이 이론의 지지자들은 성부수난론자들이라고 일컬어졌다.

일반 교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며 동시에 그는 성부와 성령과는 구별되는 인격을 가졌으나 그들과 하나라는 것이다.

오리겐은 이 위대한 신앙의 조항을 강력하고도 명확하게 수호함에 있어서 말할 수 없이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성자의 영원 출생에 대한 그의 해설은 325년에 열린 성자의 신성에 관한 니케아 회의의 결정은 말할 것도 없고 4 세기의 교회 공으ㅢ회의 선언들에 대해서도 길을 열어 놓았다.

사변적인 면에 있어서 오리겐의 상상은 자유분방하였다. 그는 교회에 의하여 공인된 신앙의 규칙에 충실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수납된 신조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들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행사하였다. 그의 대담하고 개척자적인 정신 때문에 그는 여러 면에서 이단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 인간영혼의 연속적 화육에 대한 그의 이론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그가 얼마나 자유롭게 사색했던가를 보여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계속되는 창조행위는 하나님의 속성 그 자체이다. 일련의 피조된 세계가 있었으며 영혼들도 태초부터 창조되었음이 분명하다. 인간, 천사 및 마귀 사이의 동등하지 않은 상태는 그들이 거주했던 서로 다른 세계에서의 그들의 경험에 연유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정하시므로 처음에는 모두가 동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은 항상 위로 올라 가거나 아래로 내려간다. 그들은 각각의 연속적인 존재 상태에서의 행동에 대한 상급이나 벌로서 위로 올라 가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심지어 마귀까지도 아직은 더 높은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 오리겐에 의하면, 형벌은 순전히 치료적이며, 결국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는 모든 영혼이 거룩하신 아버지의 품에 안기게 되는 것이다.

19세기에 "더 큰 희망"의 교리를 가르친 사람들은 오리겐의 뒤를 비틀거리며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리겐(185-254)은 카이사랴의 유세비우스(Eusebius)와 제롬(Jerome) 등을 포함하여 후기 편집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성경과 그외 저서들을 만들었다. 오리겐은 '성경적 비평과 주해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약 6000여권의 책들과, 소책자, 설교집, 편지 등등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AD426-430년에 그는 헥사플라(Hexapla-6개 국어 대역성경)를 만들었는데, 이는 여러 단으로 구성된 구약의 6개 교정본을 포함한 다역 성경이다. 다섯 번째 단이 오리겐에 의해 편집된 구약의 헬라어 번역본이다. (모든 전체 헥사플라 사본들은 6세기이후 언젠가 분실되었다). 비록 그가 몇몇 이교도들로부터 성경을 보호하려 했다해도, 그는 그 자신이 일단 믿음으로부터 돌아서 성인들로 옮겨가 많은 이교적 가르침들을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소개하였다.


비록 그가 매우 성공적으로 그의 반대자들의 근본적인 오류들과 싸웠다해도 그들의 논거, 특히 플라톤의 공론들로서 뒤받침되었던 그들의 논거들은 부활 이후의 그리스도의 몸, 그리고 인간의 외형의 그것에대한 구성들과 관련한 매우 특별한 개념들을 신봉하게할 정도로 그의 의견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보인다. 이 개념들중 일부는 그 자신이 영향을 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던 타티안의 이상한 사상들로부터 인용한 것들이며, 또한 그는 확실히 그로부터 그가 수많은 곳에서 고백했던 독신주의에대한 각별한 접근을 흡수했다.
오리겐은 골로세서 2:16-23절의 사도 바울의 증거를 부인했고 금욕주의자로서 생활하였다. 그는 가이사랴, 팔레스틴에 학교를 열어 인간의 철학과 기독교를 혼합시킨 기괴한 자신의 사상을 가르쳤다. 오리겐은 침례의 부활을 가르쳤다. 루이스 버코프에 의하면, 오리겐은 확실히 믿음에의한 칭의라는 바울의 교리에 명확한 개념을 갖고있지 않았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인데, 왜냐하면 오리겐이 가르친 복음이 거짓 복음이며,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갈라디아서 1장)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리겐은 연옥을 믿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죽음 이후에 죄의 연옥을 통하여 마침내 개심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하심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마귀들과 사단이 결국은 회복된다고(버코프) 가르쳤다. 오리겐은 인간의 선재(先在)를 가르쳤다. 그는 성령이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에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창조물이라고 믿었다.
오리겐은 알레고라이징이라고 알려진 성경 해석 방법을 옹호했다. 그에 따르면 성구의 문자적 의미는 해석자에의해 발견된 '보다 깊은 의미'로인해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한 방법으로 인하여 성경의 평범한 의미들보다 선생들의 사고가 보다 권위있게 여겨졌다; 왜냐하면 만일 성구의 평범한 의미가 진정한 의미가 아니라면, 정확하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각 사람의 생각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오리겐의 수많은 주석들은 성경의 이교적 개정본들과 출처가 불분명한 기록들까지 사용된 풍부한 상상력의 해석들을 포함하고 있다.

오리겐의 원문연구 노력에 대하여, 놀란은 다음과 같이 중요한 요약을 하였다: "...그는 신약의 표준판 본문의 권위를 약화시키는데 기여하였다. 그의 주석작업에 있어서, 그는 교회법규집(캐논 canon)의 전반부는 아퀼라와 심마쿠스와 데오도티온의 버전들을 이용하였으며, 그 후반부는 발렌티누스와 헤라클레온의 권위에 호소하였다. 그가 이교도들에의해서 만들어진 그 개정본들에 신용을 높여주었던 반면, 그는 정교회에의해 표준된 그 본문의 권위로부터 떨어졌다. 복음주의자들 안에서 푸는데 실패했던 몇몇 난점들을 그는 그 본문의 심오함에 자신의 의심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해서 그 난제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일례로, 그는 감히 구약에대한 신약의 독법을 비난했으며, 또 다른 증거들에 대한 하나의 복음의 사본들을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의 상상력이 쏠리는대로 쫓아 다분히 야성적인 추측에 따르다 보니 그는 확실히 구약에서 뿐만아니라 신약에서도 불가리아 혹은 일반 교정본의 신용을 떨어뜨렸다."(놀란, 헬라어 벌게이트본의 보존에 관한 연구, 432-434)

오리겐에 관한 이 증언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뒤이은 성경 본문 편집가들, 유세비우스와 제롬이 오리겐의 작품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놀란은 오리겐의 이교적 사고들이 이집트에 넓게 보급되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런 환경에서, 이집트 교회들은 점진적으로 오리겐의 비평원리에 발맞춘 개정판을 용인할 태세를 갖추어갔다."(놀란, 440쪽)

오리겐은 사도들의 손에서 전수된 순수한 성경의 원문에서 벗어났고 그의 뒤를 이은 편집자들 역시 이 방향을 고수했다. 우리가 오리겐, 유세비우스, 제롬의 영적 조건들을 고려할 때, 그들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인정할 필요성에대한 통찰력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약간 의아하다. 그들의 이교적 교리들은 그들이 이 세상의 신에 의해 조정되었음을 우리에게 경고해주고 있다. (딤전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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