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site   게시판   메일   M1000선교사홈   Mission Magazine
 

 

  사전등록   히,헬 폰트받기
 현재위치 : HOME > 문서보기


 작성자  관리자  첨부파일    
 자료구분  성경사전  작성일  2007-05-28
 제목  창포(Acorus Calamus)
 주제어  성서의 식물
 자료출처    성경본문  
 내용

창포과의 다년생 풀 못가나습한 땅에 남(출 30:23).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 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 오십 세겔과(출 30:23)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아 4:14)
워단과 야완은 길쌈하는 실로 네 물품을 무역하였음이여 백철과 육계와 창포가 네 상품 중에 있었도다(겔 27:19)


애굽기 30장의 창포는 갈대이다. 몰약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원뜻은 흐른다는 것을 의미하고 창포의 원 뜻은 일어선다는 것을 뜻한다. 창포는 늪이나 진흙땅에서 자란다. 그러나 그것은 늪에서 자라지만 공중으로 일어설 수 있다. 향품의 배열에 따르면, 이 창포는 죽음의 곳에서부터 일어나신 주 예수님을 의미한다. 주님은 늪, 즉 죽음의 상황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셨으나, 부활 안에서 일어나셨다. 그러므로 창포는 그리스도의 귀중한 부활을 의미한다.

출애굽기 30장 23절은 향기로운 창포에 관해서 말한다. 이 창포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부활을 의미한다(벧전 1:3, 엡 2:6, 골 3:1). 그리스도의 죽음의 달콤함과 효능을 체험한 후, 우리는 부활 안으로 인도된다. 예를 들어, 한 자매가 쇼핑할 때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능을 적용하는 체험을 적용한다 하자. 그녀는 동시에 부활 안에 있는 체험을 할 것이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부활을 체험할 것이다.


생명의 능력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부활이시라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생명의 능력임을 의미한다. 부활은 생명-능력이다. 생명에는 생명-본질, 생명-모양, 생명-능력이 있다. 우리는 먼저 생명-본질을 갖고, 그 다음에 생명-능력을 갖는다. 이어서 우리는 생명-모양, 생명-형태를 갖는다. 부활은 우리에게 생명-능력이 되시는 그리스도이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문제이다.

1936 년에 나는 중국의 주요 대학들 중 한 곳을 방문했다. 학생들 중 한 명이
부활을 믿기가 어렵다고 내게 말했다. 그는 현대의 과학적 지식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내게 말했다. 그에게는 부활이 과학적 진리를 거스르는 것이었다. 우리가 모인 방 밖에는 밀밭이 있었다. 그의 시선을 밭에서 자라고 있는 밀들에게로 돌리게 하면서 나는 흙 속에 묻힌 약간의 곡식 씨앗들에 의해서 그 밀들이 산출된다는 것을 지적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어떤 의미에서 그 씨들은 죽었지만, 지금은 부활 안에서 밀로 솟아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죽음과 부활의 그 예를 통해서 그 젊은이는 구원받았다. 지금 그는 대북에서 인도하는 동역자들 중의 한 명이다. 이 예는 부활이 생명-능력임을 보여 준다.


부활의 기능들


1. 소극적인 것들을 정복함

이 생명-능력은 몇 가지 기능들을 갖고 있다. 첫 번째 기능은 정복하는 기능이다.
부활은 능히 사망을 포함한 소극적인 모든 것들을 정복할 수 있다. 하나님 외에 우주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것은 사망이다. 사망이 어떤 사람을 방문할 때마다, 그 사람은 그에게 대항할 수 없으며, 반드시 그 능력에 굴복해야 한다. 사망이 그렇게 강력하지만, 부활은 훨씬 더 강력하다. 사망은 부활을 억제할 수 없다(행 2:24). 반대로 부활은 사망을 정복하고 이긴다.

고린도전서 15장 26절에서 바울은,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 말한다. 그런 강한 대적은 오직 부활에 의해서만 패배당한다. 그러므로 부활 곧 생명-능력의 첫 번째 기능은 소극적인 것들 특히, 사망을 정복하는 것이다. 부활은 사망의 상황 안에 두어지면 두어질수록, 더욱더 사망을 정복하기 위해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2. 사망을 삼켜버림

생명-능력의 두 번째 기능은 사망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부활은 사망을 정복하고 이길 뿐만 아니라 먹어치운다. 민수기 14장 9절에서 갈렙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대적들이 그들의 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최후의, 가장 큰 원수인 사망은 부활을 위한 밥이다. 때로는 대적이 정복되지만, 또 여전히 현존한다. 생명의 능력의 기능을 통해 사망은 정복될 뿐만 아니라 사라지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삼켜져 버린다. 생명-능력이 사망을 삼킬 때, 사망은 사라진다.

3. 성장과 변화를 산출하고 형태를 이룸

정복하고 삼키는 기능들은 소극적인 기능들이다. 그러나
부활은 적극적인 많은 기능들을 또한 갖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성장과 변화를 산출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자라면 자랄수록 그것은 더욱더 바뀌고 변화된다. 카네이션 꽃의 성장은 또다시 이것을 설명한다. 카네이션은 조그만 씨 하나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 씨가 흙 속에 심겨진 뒤에는 자라기 시작하여 처음에는 부드러운 싹이 되고, 결국에는 완전히 자라서 카네이션 꽃이 핀다. 카네이션이 아직 싹일 때에는 그것을 다른 종류의 식물과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자라면 자랄수록 더욱더 바뀌어지고 변화된다. 그것은 성장에 의해 변화된다.

원칙적으로 같은 류의 변화가 어린아이들에게도 발생한다. 어린아이가 자람에 따라 그 아이의 몸은 어떤 형태를 취한다. 생명-능력이 변화시킴에 따라서 또한 형태를 이룬다. 그러므로
부활은 성장과 변화와 형태를 이룸의 원인이 된다.

4. 적극적인 것들을 해방함

또한
부활은 적극적인 것들을 해방시킨다. 열매 맺는 것은 부활의 기능이 가져 오는 해방의 한 종류이다. 열매 맺음 안에는 나무 속으로부터의 생명 본질의 해방이 있다. 이것은 열매 맺음을 통해서 그 나무 속에 있는 생명의 풍성이 해방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생명-능력의 해방시키는 기능을 통해서 씨 속의 모든 것들-뿌리, 줄기, 가지들, 잎사귀들, 꽃, 열매-이 해방된다. 씨가 부활될 때 그 안에 있는 적극적인 모든 것들이 해방된다.

우리는 자주
그리스도의 풍성에 관해 말한다. 모든 풍성을 가진 그리스도는 하나의 씨로 우리 속으로 심겨졌다. 우리는 이것을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볼 수 있다. 이 비유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을 생명의 씨로 우리 속에 심으셨다. 이 씨는 모든 종류의 적극적인 것들-사랑, 거룩함, 의로움, 겸손, 인내, 오래 견딤 등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씨 안에는 신성한 속성들과 사람의 미덕들이 다 있다. 필요한 단 한 가지는 해방이다. 부활은 그 씨 속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의 본질을 해방시킨다.

5. 일어서는 능력

또한
부활에는 일어서는 능력이 있다. 출애굽기 30장에서 관유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창포처럼 부활은 「진흙탕 같은」 상황 위로 일어선다. 이 창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어서는 능력의 그림이다.



우리의 부활 체험

믿는이들인 우리는 속에
부활이신 그리스도를 갖고 있는데, 이 부활은 우리의 생명 능력이다. 날마다 이 생명은 사망을 정복하기 위해 기능을 발휘한다. 사망은 많은 측면들-약함, 미움, 어둠, 교만, 비난, 헛소문들-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투덜대거나 작은 한담에 끼어들기만 해도 사망을 접촉할 것이다. 소극적인 모든 것들이 사망의 내용 안에 내포되어 있다. 우리 속의 부활은 모든 형태의 사망을 정복하고 삼켜버린다. 그것은 우리의 교만, 비난, 거짓된 겸손등을 삼켜버린다. 더 나아가 이 생명 능력은 성장, 변화, 형태 갖춤을 생기게 한다. 또한 그것은 적극적인 것들을 해방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진흙탕 같은」 상황 위로 일어서게 한다.

비록 우리는 이 생명 능력이 우리 속에 있다는 인식을 갖지 못하더라도 이 능력의 실제는 갖는다. 만일 우리가 지난 수년 동안의 주님과의 체험을 회상해 본다면, 우리 속에 있는
부활이 사망을 정복해 왔고 소극적인 것들을 삼켜 왔음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체험은 또한 이 생명 능력이 우리로 자라게 하고, 변화받게 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약간 형태를 갖추게 했음을 간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체험은 그 생명 능력이 수많은 적극적인 것들을 우리 속으로부터 해방시켰음을 밝혀 준다. 부활이 해방함에 따라 또한 그것은 우리 속에서 일어선다.

사탄은 늘 우리를 억누르려고 힘을 다하고 있다. 그는 우리를 억압하고, 눌러 내리고, 압박을 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그러나 우리 속의 일어서는 창포를 인해 주님을 찬양하자! 주님은 때때로 대적이 우리를 「진흙탕 같은」 상황 속으로 내던지는 것을 허락하시는데, 이는 바로
부활로 하여금 우리를 그 상황보다 훨씬 위로 일으켜 세움으로써 기능을 발휘할 기회를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주관적인 부활이 로마서에서 말한 부활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것은 바로 이 부활 안에서이다. 그러한 부활을 수단으로 하여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과정 안에 있다.



부활의 실제인 그 영

로마서 8장 11절은,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거주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 너희 안에 거주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너희의 죽을 몸에도 생명을 주시리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는 부활이 그 영에 연결된다. 그 영은 부활의 실제이시다.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부활의 실제로서 우리 안에 거주하신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령을 갖지 않았다면, 그는 부활을 가질 수 없다. 우리가 체험하는 부활은 사실상 성령 자신이다. 만일 우리가 로마서 8장 없이 6장만 갖고 있다면, 우리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부활이신 그리스도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로마서 8장에서 우리는 부활의 실제를 갖는다. 즉 우리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갖는다. 우리는 결코 부활을 그 영으로부터 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인정됨의 과정

우리는
부활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되고 있다. 매일 우리는 인정됨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이 인정은 부활에 의해서 된다. 우리 모두는 주님이 오늘날 우리 속에서 행하고 계시는 것이 인정(認定)의 문제라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카네이션 씨의 예화를 계속하고 싶다. 카네이션 씨는 표(딱지)를 붙임으로써가 아니라 땅 속에 심겨지고 또 점차 성숙하여 꽃피는 카네이션으로 성장함으로써 인정된다. 그 씨는 자람에 따라 인정된다. 그것이 자라면 자랄수록 더욱더 인정된다. 그 씨가 만개(滿開)에 이를 때에 완전하게 인정될 것이다. 이것은 카네이션 꽃이 활짝 피는 것이 그것의 완전한 인정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성장하여 변화되면 될수록 더욱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된다.


영에 따라

육신대로는 우리 모두가 교회에게나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문젯거리이다. 남편들은 아내들을 괴롭히고, 아내들은 남편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대로 우리의 존재를 가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영을 따라 존재할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다. 형제 자매들이 그 영에 따라 그들의 존재를 가질 때 그들은 놀랍고 영광스럽다. 당신의 존재를 육신대로 가질 것인가 아니면 그 영을 따라 가질 것인가는 당신의 선택에 의존된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의 의지로 당신의 존재를 육신을 따라 가질 것인가, 혹은 그 영을 따라서 가질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주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어 우리가 그 영을 따라 살기를 택하게 되기 바란다. 우리에게는 그 영을 따라 행하는 길을 배우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육신을 따라 행한다면, 교회 생활은 가장 불유쾌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영을 따라 행한다면 교회 생활은 하늘 안에 있게 될 것이다.

아들의 명분은
부활에 의해, 그 영 안에서 실제화된다.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그 영은 일어서는 영이요, 인정하는 영이다. 날마다 이 영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인정하고 계신다.

만일 우리가 바울처럼 그분의 아들에 관한 복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반드시 아들의 명분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알아야 한다. 바울이 이 서신을 로마인들에게 썼다는 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리자! 이 책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구원받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로 아들의 명분을 체험할 수 있게 도와야 함을 계시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들을 도와 성화, 변화, 본받음, 영화롭게 됨을 포함하여
부활에 의한 인정됨의 문제를 보게 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

우주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고대하고 있다(8:19). 이 나타남은 갑자기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정됨의 과정의 완성으로 올 것이다. 그것은 마치 카네이션 꽃이 성장과 변화의 긴 과정의 완성으로 꽃피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는 자라면 자랄수록 더욱더
부활에 의해 인정된다. 어느 날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때에, 우리는 완전히 꽃필 것이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안에 있는 이른바 시대들에 관한 객관적인 가르침에 온 주의를 쏟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분배(dis-pensation)라는 단어는 시대를 나타내지 않고 분배하는 행위를 나타낸다. 신약의 계시는 우리에게 매우 주관적이어야 한다. 나는 주님의 임재 밖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림 받게 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주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려지는 것은 성화, 변화, 본받음, 영화롭게 됨의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주관적인 성화

그리스도 안의 어떤 믿는이도 결코 갑자기 성화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구원받았을 때 성화 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본질적으로 성화되기 위해서 성화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성경에서 「성화」, 「거룩한」, 「거룩함」이란 단어들은 분별을 언급한다. 그러므로 성화되는 것은 분별되는 것, 즉 통속적인 것과는 다르게 되는 것이다.

카네이션이 연한 싹일 때에는 다른 식물의 싹과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네이션이 성장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더 다른 식물들과 분별되고 다르게 된다. 그것이 꽃필 때는 다른 모든 꽃들과 온전히 분별되며 절대적으로 다르게 된다. 이것은 주관적인 성화, 본질적인 성화에 대한 예이다.

변화의 완성

로마서에서의 성화는 단지 위치의 바뀜이 아닌 본질의 바뀜을 언급한다. 그것은 생명 안에서의 내적 바뀜의 결과인 형태의 바뀜을 내포한다. 이것은 형태의 바뀜인 본받음이 성장과 변화에 관련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카네이션이 또한 이것을 예증(例證)한다. 카네이션은 자라고 변화됨에 따라 어떤 특정한 모양으로 형태를 이룬다. 성장에 의해서 그것은 한 모양에서 다른 모양으로 바뀐다. 이 바뀜은 그 식물이 꽃필 때까지 계속된다. 꽃핌은 변화의 완성이다.

생명 형태로 형성됨

변화된다는 것은 생명 본질을 가진 생명 능력에 의해서 생명 형태로 형성되는 것이다. 가령 당신의 정원에 두 종류의 식물-카네이션과 백합-이 자라고 있다 하자. 이 꽃들이 성장함에 따라 카네이션은 한 모양을 취할 것이고, 백합은 다른 모양을 취할 것이다. 각기 그 속의 생명 본질을 가진 생명 능력에 의해서 형태를 이룬다.

각 생명마다 각자의 모양을 가졌다. 예를 들어, 개는 한 모양을 가지고 있고, 닭은 또 다른 모양을 갖고 있다. 어떤 생명의 성숙은 그 생명의 완전한 모양을 가져 온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지만, 아직 하나님의 아들들의 완전한 모양, 완전한 형태를 갖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장과 변화에 의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완전히 본받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생명 본질을 가진 생명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완전한 생명 형태를 소유할 것이다. 카네이션, 닭, 개 등은 모두 그들의 생명 본질에 따른 상이한 생명 모양을 갖고 있다. 카네이션은 카네이션의 생명 본질을 가졌기 때문에 카네이션의 모양을 갖는다. 카네이션 본질은 카네이션 속에 있는 생명 능력을 수단으로 카네이션 모양으로 발전된다. 우리 속에 생명 본질과 생명 능력이 있음을 인해 주님을 찬양하자! 이 생명 능력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으로 형성시킨다. 생명 능력의 이 형성 기능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히 본받게 될 것이다.


인정하는 영을 누림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단지 객관적인 가르침들 대신 속에 인정하는 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부활이신, 인정하는 그리스도를 속에 갖고 있다. 당신 자신을 개선하려 하거나 자신을 죄 없는 온전한 자로 만들려고 노력하지 말라. 그보다는 인정하는 영을 누리고 체험하라. 만일 우리가 그 영에 의해 몸의 행실들을 죽게 한다면 우리는 살게 될 것이다(8:13). 우리는 영을 따라 행하고, 우리 생각을 영에 두고, 그로써 몸의 행실들을 죽여야 한다. 우리가 매일 그 영을 따라 행한다면 부활에 의한 인정됨의 과정 안에 완전히 있게 될 것이다. 부활 능력에 의해 우리는 변화되고, 본받게 되고, 결국에는 영화롭게 될 것이다.


그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주님을 접촉하면 할수록 더욱더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감지하게 되고, 더욱더 우리는 속에서 그분의 기름 부음을 느끼게 된다.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는 적셔지게 되고, 신선하게 되며, 성화되며, 만족케 되며, 강건케 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분의 오심을 준비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종류의 가르침들은 예언이나 시대들에 관한 객관적인 가르침들이 아니요, 생명 능력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고 체험함으로써 우리가 인정되는 길에 관한 것들이다. 만일 우리가 이런 류의 가르침을 가졌다면, 우리는 자신들 안에서는 소망이 없고 어찌해 볼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더 이상 우리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주님을 접촉하기 위해 우리의 영을 사용함으로 그분의 기름 부음을 누리고 부활
에 의한 인정됨의 과정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 연결고리 : 성서의 식물

 



   


A-Z




  인기검색어
kcm  381698
설교  193037
교회  141339
아시아  113948
선교  101896
세계  91818
예수  88307
선교회  80379
사랑  76414
바울  75885


[배너등록]
 

 


홈페이지 | 메일 | 디렉토리페이지 | 인기검색어 | 추천사이트 | 인기사이트 | KCM 위젯모음 | 등록 및 조회

KCM 찾아오시는 길 M1000선교사홈 미션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