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종교개혁자. 1502년 바젤대학에서 신학공부. 1506-18년 교회봉직. 종교개혁 운동에 대한 소명감을 갖고 교회개혁에 진력했다. 1523년 츄리히시에 67논제를 제출하여 이겼다. 이로써 츄리히시는 개신교 도시로 발족했다. 1531년 10월에 천주교측의 급습을 받고 카펠 전투에서 전사했다.
즈빙글리는 인문주의적 경향을 다분히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성서를 개인의 행위와 국가의 윤리, 그리고 교회실천을 통제하는 신적 율법으로 보았다. 그는 교회와 국가의 통일을 옹호했다. 그는 찰스 5세를 폐위시키고 헤세의 필립을 독일 황제로 등극시키려고 했다. 그는 에라스무스의 개혁사상에서 출발했다. 즈빙글리는 종교개혁에 있어서 루터나 칼빈처럼 영도적 입장에 서진 못했지만 그 다음가는 개혁자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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